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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의 전승된 가르침4)마간디야경 & 법의걸음경[dhammapada](기본기 서울 160930)

0 543 2017.08.26 13:36

▣ 이외의 전승된 가르침4)마간디야경 & 법의걸음경[dhammapada](기본기 서울 160930)

   [동영상] ☞ https://youtu.be/sV9Fp3wNUIA


1. <마간디야 경(M75)>의 게송


pubbakehesā, māgaṇḍiya, arahantehi sammāsambuddhehi gāthā bhāsitā —


‘ārogyaparamā lābhā, 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

aṭṭhaṅgiko ca maggānaṃ, khemaṃ amatagāminan’ti. 


마간디야여, 옛적의 아라한-정등각들이 이 게송을 읊으셨다.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팔정도(八正道)가 안온과 불사(不死)로 이끄네.”


팔정도(八正道)는 열반(涅槃) 즉 안온(安穩)과 불사(不死)로 이끄는 길입니다. 그래서 팔정도 바로 그 길을 걸어가서 열반에 닿는 과정을 중도(中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팔정도(八正道)라는 행위의 지음[kiriya]을 통해 최상의 행복인 열반[안온(安穩)과 불사(不死)]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불교(佛敎)입니다.


2. <법의 걸음 경(A4:29)[dhammapadasuttaṃ]>에 대한 두 가지 공부 거리


; 불교 수행의 큰 줄기는 「계행 → 네 가지 법의 걸음[보시→자비→사념처→바른 삼매] → 사마타-위빳사나」입니다. 이 줄기에 속하는 것은 어느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고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에 의해서 이렇게 커다란 찬탄을 받는 것입니다.


● 공부거리 1. dhammapada라는 용어의 쓰임


여기서 dhammapada는 법구경(法句經)으로 번역된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때, pada는

pada: foot; foot-step; a word; position; place; reason; cause; a line of stanza; the final rest. (nt.)


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어떤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지 잘 알기 어렵지만, anabhijjhā[간탐(慳貪)않음]-abyāpāda[진에(瞋恚)않음]-sammāsati[정념(正念)]-sammāsamādhi[정정(正定)]의 네 가지를 지목하는 데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anabhijjhā[간탐(慳貪)않음]-abyāpāda[진에(瞋恚)않음]은 십선업(十善業) 중 의업(意業)에 속하는 두 가지인데 보시(布施)와 자비(慈悲)를 의미하고, sammāsati[정념(正念)] -sammāsamādhi[정정(正定)]는 팔정도(八正道)의 중심이 되는 두 가지입니다. 정정(正定) 즉 바른 삼매는 필수품을 갖춘 삼매로 정의되는데, 필수품[업(業)의 제어 – 삼매의 성취]를 총괄하는 것으로 정념(正念)이 제시됩니다. 그리고 정념(正念)은 사념처(四念處)로 정의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사마타-위빳사나하여 삶을 완성하는 전체과정의 앞부분을 구성하므로 '법의 부분'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고, 또는, 사마타-위빳사나로 나아가는 중간 걸음[foot-step] 정도의 해석[=법의 걸음]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는 사마타-위빳사나를 포괄하는 삼매수행(三昧修行)으로 정정(正定)을 이해하면, 깨달음의 전체 과정의 실천 즉 중도(中道)[팔정도(八正道) 바로 그 길을 걸어감]이라는 입장에서의 법의 걸음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해로 볼 때 dhammapada를 법구(法句)라는 해석과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dhammapada는 합송경(D33), mahāsīhanādasuttaṃ(MN 12)[법구(法句)로 쓰임], sādhusuttaṃ(SN 1.33)[이 경과 같은 의미], piyaṅkarasuttaṃ(SN 10.6)[법구(法句)로 쓰임], paribbājakasuttaṃ(AN 4.30)[이 경과 같은 의미]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법구경에도 세 개의 게송[44-45-102번 게송 - 법구(法句)로 쓰임]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 공부거리 2. anabhijjhā[간탐하지 않음]-abyāpāda[진에하지 않음]-sammāsati[정념(正念)]-sammāsamādhi[정정(正定)]의 네 가지에 대한 특별한 의미 부여


- 「이것은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거부하면 안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 계보 → 부처님 등 성자들의 계보

(*)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 과거의 부처님에 의해서도 거부되지 않았고


aggaññaṃ rattaññaṃ vaṃsaññaṃ porāṇaṃ asaṃkiṇṇaṃ asaṃkiṇṇapubbaṃ, na saṃkīyati na saṃkīyissati, appaṭikuṭṭhaṃ samaṇehi brāhmaṇehi viññūhi.


⇒ 니까야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 찬사를 동원하여 네 가지 '법의 걸음[dhammapada]'을 설명하고 있는데, 의업(意業)에 속하는 두 가지의 제어[anabhijjhā-abyāpāda ⇒ 보시(布施)와 자비(慈悲)]에 이어 사념처에 의한 바른 삼매의 비중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는 전후 관계를 주목해야 합니다. 의업의 제어에 선행(先行)하는 것으로는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의 제어 즉 계행(戒行)이 있고, 사념처에 의한 바른 삼매는 사마타-위빳사나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사마타-위빳사나는 불교 수행의 완성입니다. 심해탈(心解脫)-혜해탈(慧解脫)하여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로 삶을 완성하는 최후의 수행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찬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마타-위빳사나로 연결해주는 법의 걸음인 이 네 가지가 이런 찬탄을 받는다면, 이 네 가지에 선행하는 계행은 어떻습니까? 이 네 가지처럼 찬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넘쳐흐름 경(A8:39)>은 이 질문에 답을 줍니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무엇이 여덟인가?”라는 주제로 설해진 이 경은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대한 귀의(歸依)에 이어 오계(五戒)를 지키는 삶이 이러한 삶이라고 알려줍니다.


특히, 오계(五戒)를 지키는 행위를 보시(布施)라고 하는데 오계를 지키는 행위의 적극적 의미가 무외시(無畏施)인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오계를 지키는 각각에 대해 다시 「이것은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거부하면 안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여 네 가지 '법의 걸음[dhammapada]'과 동일한 문구를 통해 찬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마타-위빳사나로 연결하는 네 가지 법의 걸음과, 이 네 가지 법의 걸음으로 연결하는 계행은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삶의 향상에 기여하고, 그로 인해 부처님으로부터 동등하게 찬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공부거리 2의 결론 : 불교 수행의 큰 줄기는 「계행 → 네 가지 법의 걸음[보시→자비→사념처→바른 삼매] → 사마타-위빳사나」입니다. 이 줄기에 속하는 것은 어느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고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에 의해서 이렇게 커다란 찬탄을 받는 것입니다.


 ※ 경은 게송을 통해 바른 삼매가 깨달음에 이르는 삼매수행임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경의 의도로는 「계행 → 네 가지 법의 걸음[보시→자비→사념처→바른 삼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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