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교리공부 > 기본기

기본기

차례4[탄생이야기 ㅡ 보살-삼십이상-법의 위빳사나](기본기법회 180129)

0 613 2018.01.30 10:13

차례4[탄생이야기 보살-삼십이상-법의 위빳사나](기본기법회 180129)

[동영상] https://youtu.be/PRZdbjIvec0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에 이어 acchariyābbhutasuttaṃ (MN 123)[놀라움과 신기함의 경]이 말하는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를 알아보았습니다.

 

1. 보살(菩薩)은 부처님의 깨달음 이전의 과정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직전 생에 도솔천에 태어날 때부터 이번 생에 깨달음을 성취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용어입니다.

 

2. 서른두 가지 대인상[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추고 태어나면 전륜성왕이 되거나 출가하여 부처를 이룬다는 이야기는 보통 아시타 선인의 예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숫따니빠따의 날라까 경(KN5.37)에서 아시따 선인은 오직 출가하여 부처를 이루는 한 가지 경우만을 말합니다. 그러나 암밧타 경(DN3), 대전기경(DN14), 삼십이상경(DN30), 브라흐마유 경(MN91), 셀라 경(MN92), 셀라 경(KN5.33) 등에는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춘 대인(大人)에게는 두 가지나아감이 있고 다른 것은 없다[mahāpurisassa dveva gatiyo bhavanti anaññā]’라고 나타나는데, 전륜성왕과 아라한-정등각입니다.

 

3. 한편, acchariyābbhutasuttaṃ에서 부처님은 탄생과 관련한 놀랍고 신기함 외에 한 가지를 더 제시합니다.

 

“tasmātiha tvaṃ, ānanda, idampi tathāgatassa acchariyaṃ abbhutadhammaṃ dhārehi. idhānanda, tathāgatassa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viditā saññ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viditā vitakk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idampi kho, tvaṃ, ānanda, tathāgatassa acchariyaṃ abbhutadhammaṃ dhārehī”ti.

 

그렇다면 아난다여, 그대는 이것도 여래의 놀랍고 신기한 법으로 받아들여라. 아난다여, 여기 여래에게 수()들은 자각 가운데 생겨나고 자각 가운데 유지되고 자각 가운데 없어진다. ()들은 자각 가운데 생겨나고 자각 가운데 유지되고 자각 가운데 없어진다. 위딱까들은 자각 가운데 생겨나고 자각 가운데 유지되고 자각 가운데 없어진다. 아난다여, 그대는 이것도 여래의 놀랍고 신기한 법으로 받아들여라.

 

그런데 이 내용은 법의 위빳사나[dhammavopassanā]입니다. 삼매의 토대 위에서 드러나는 법을 이런 방법으로 잘 관찰하여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연결되면 염오(厭惡)-이탐(離貪)-소멸(消滅)을 통해 성취되는 깨달음의 과정을 구성하는 수행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삼매를 토대로 드러나는 법으로부터 염오-이탐-소멸의 깨달음의 과정을 연결하는 법의 위빳사나야말로 이전의 누구에 의해서도 개척되지 않은 부처님만의 놀라움이고 신기함이라고 소개하는 것인데, 이것을 깨달음 과정의 중심으로 여긴다는 의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 그런데 그간의 해석에서는 위빳사나와 법의 위빳사나를 동의어로 간주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삼매의 심화과정을 의미하는 내적인 마음의 사마타도 사마타와 동의어라고 간주합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 의하면 내적인 마음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는 삼매 위에서 드러나는 법의 관찰을 통해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연결하는 중간의 과정이고,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이탐(離貪)과 소멸(消滅)에 해당하는 최후의 수행 즉 심()의 형성과정의 문제를 해소하는 마지막 과정입니다. 이 두 가지 쌍을 각각의 동의어로 간주하는 것은 삶의 심오한 영역[takka 갈애의 형성 또는 자기화 과정]에 대한 부처님의 설명을 배제하는 것이어서 십이연기(十二緣起)에 의한 삶의 이해와 팔정도(八正道)에 의한 깨달음의 양면을 모두 훼손하는 잘못입니다.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 시작은 심행(心行)에 대한 붓다고사 스님의 오해로부터 비롯됩니다. 근본경전연구회가 이 내용을 바로잡고 부처님에게로 되돌리려는 시도의 타당성이 여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