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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메커니즘7[상(想)의 잠재와 식(識)의 머묾](깨달음 법회 180423)

0 814 2018.04.24 15:36

삶의 메커니즘7[()의 잠재와 식()의 머묾](깨달음 법회 180423)

[동영상] https://youtu.be/_fBcrAMtl24

 

삶의 메커니즘의 진행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요점을 짚어보고 상()의 잠재와 식()의 머묾이라는 업() 이후의 전개에 대해 경전을 소개하며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요점1. 난디와 위딱까의 연결 관계

 

딱까[인식의 가공과정]의 끝에 위치하는 난디가 몸과 함께하는 행위의 시작인 위딱까를 운영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줍니다. 삶을 몸 의 영역에 국한시켜 이해하는 뇌 과학 등 여러 물질이론을 극복하는 불교의 경쟁력이 여기에서 나온다는 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04&wr_id=21참조.

 

요점2. [갈애-자기화]와 의도의 연결 관계

 

()은 의도 이후의 행위 과정입니다. 난디에 의해 운영되는 위딱까로써 시작된 행위에 자기화 된 것으로의 갈애가 자기대로의 삶을 얹는 것이 의도라고 할 것입니다[내가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갈애[난디로 몸집을 부풀린 심()]에 의해 의도된 행위가 업()이고, ()에는 과()와 보()가 따르는 법칙성에 의해 자기 행위에 대한 고()-()의 경험이라는 책임을 자기가 져야하는 것입니다.

 

요점3.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음을 중심에 둔 삶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으면 난디가 생겨서 갈애[고집(苦集)]이 형성되고, 삶은 고()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으면 난디가 생기지 않아서 갈애가 형성되지 않고, 삶은 고멸(苦滅)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경은 낚시꾼의 비유를 통해 이 자리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11&wr_id=2

 

불교의 수행은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의 실현 과정인데, 염오(厭惡)입니다. 그리고 염오(厭惡)의 유지를 위해 이탐(離貪)과 소멸(消滅)의 과정이 이어지는 데, 사마타와 위빳사나입니다. 그래서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에 흔들림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이라고 불리는 깨달음입니다.

 

요점4. ()의 잠재와 식()의 머묾의 동시성

 

존재 경1~2(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8&wr_id=1)는 업()을 밭으로, ()을 씨앗으로, 갈애를 수분으로 하여 식()의 머묾이라는 열매를 맺는 비유를 설합니다. 반면에 의도 경(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6)ceteti(의도하다)pakappeti(사유하다)anuseti(잠재하다)의 세 가지 동사를 통해 식()의 머묾을 설명하는데, anuseti(잠재하다)의 유무가 그대로 식()의 머묾의 유무입니다. 그래서 잠재하면 식()이 머물고, 잠재하지 않으면 식()이 머물지 않습니다. 이때, anuseti(잠재하다)의 용례에 의하면, 잠재하는 것은 상()입니다. 그래서 업()은 상()의 잠재와 식()의 머묾이라는 두 가지 결과를 만드는데, 이 두 가지는 동시적입니다.

 

그런데 의도 경의 이런 설명은 존재 경의 비유와 대응합니다. ceteti(의도하다)pakappeti(사유하다)는 업()이어서 존재 경의 비유로는 밭에 해당합니다. 씨앗에 해당하는 것은 이 경에서는 언급이 없는 가운데 수분에 해당하는 것이 anuseti(잠재하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가공의 과정에서 갈애가 형성되는 경우가 anuseti(잠재하다)의 경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음에 의한 것입니다.

 

이런 결론은 경증을 가집니다. madhupiṇḍikasuttaṃ (MN 18)[꿀과자의 경]갈애에서 벗어난 바라문에게는 상()이 잠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갈애에서의 벗어남 즉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으면 상()은 잠재하지 않고 동시에 식() 또한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한편, 의도 경은 의업(意業)ceteti(의도하다)pakappeti(사유하다)의 두 영역으로 구분해서 나타냅니다. 의업(意業)의 전개를 단일함에 이어지는 확산으로 이해할 때, ceteti(의도하다)는 단일함의 과정으로, pakappeti(사유하다)는 확산의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이런 확산의 개념을 papañca[희론(戱論)-망상(妄想)]이라고 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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