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적된 삶과 지금 삶의 연결[식-명색-육입-촉-수](깨달음 법회 180125)
[동영상] https://youtu.be/LKCzVbA9ZCs
외입처(外入處)와 경(境)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로 조건 되는 식(識)과 명색(名色)이 함께한 상태인 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①과거 삶의 누적으로의 오취온(五取蘊)과 ②촉(觸)과 작의(作意)에 의한 지금 삶을 포괄하는 것으로의 나에 대한 정의입니다. 즉 ①오취온(五取蘊)이라는 정적인 구성 상태에 의한 ②촉(觸)과 작의(作意)라는 동적 요소의 실행이 바로 ‘나[식(識)-명색(名色)]’이라는 이해입니다.
※ 명(名) = [수(受)-상(想)-사(思)]-[촉(觸)-작의(作意)] <분석경(S12:2)>
식(識)은 생겨나는 과정으로는 무명(無明)으로부터 출발하는 행(行)을 조건으로 하지만 존재 상태로는 명색(名色)과 서로 조건 됩니다. 즉 무명(無明)이라는 중생의 영역에서 상(想)과 수(受)에 의해 생겨난 심(心)의 오염된 행위의 결과로 머물고 쌓여있는 것인 식(識)이 명색(名色)과 함께 하나의 존재 상태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때, 식(識)과 명색(名色)이 함께한 존재 상태는 지난 삶의 누적으로의 오취온(五取蘊)이 작의(作意)와 촉(觸)에 의해 지금을 사는 것을 포괄합니다. 지난 삶의 누적인 오취온(五取蘊)이 작의(作意)로써 새로운 식(識)을 만들고 촉(觸)으로써 수(受)를 만드는 것입니다.
작의(作意)는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작용이라고 해야 합니다. 마음[식(識)]이 몸[근(根)]과 함께 대상[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만나는 것이데, 이런 만남을 위해 식(識)은 대상에 대응하여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으로 배분됩니다[육식(六識)].
몸 또한 대상에 대응하여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으로 배분되고, 물질 아닌 것인 법(法)에 대해서는 의식(意識)이 의근(意根)의 역할을 함께하여 여섯 기능의 배분을 확보합니다[육근(六根)].
이런 배분 위에서 식(識)은 근(根)과 함께 감각주관인 내가 되어 감각객관인 대상을 인식합니다. 이때, 식(識)과 근(根)이 함께한 감각주관인 나를 āyatana라고 하는데, 입(入) 또는 처(處) 또는 입처(入處)라고 한역되었습니다[육입(六入) 또는 육처(六處) 또는 육입처(六入處)].
한편, 감각주관을 설명하는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는 식(識)과 근(根)과 처(處)에 공통됩니다. 그래서 구체적 감각주관인 육처(六處)는 처(處)를 생략하고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식작용은 두 개의 토대[처(處)]를 필요로 합니다. 주관과 객관입니다. 그래서 주관은 육내입처(六內入處)가 되고 객관은 육외입처(六外入處)가 됩니다. 즉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는 육내입처(六內入處)가 되고,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은 육외입처(六外入處)가 되어 인식작용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인식작용은 동시에 여러 개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인식작용에 의해 새로운 마음 즉 식(識)이 생겨나 지금 순간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입처(內入處)와 외입처(外入處)는 지금 대응해 있는 주관과 객관을 지시하는 말입니다. 그것을 포괄적 삶에 적용하여 말할 때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육외입처(六外入處)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시작하면서 제시된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운나바 바라문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5_05&wr_id=2)은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가지는 다섯 가지 기능은 서로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는다[pañcimāni, bho gotama, indriyāni nānāvisayāni nānāgocarāni,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ṃ paccanubhonti].」고 하는데, 대상은 visaya 그리고 영역은 gocara의 번역입니다. 펼쳐져 있는 세상으로의 영역과 지금 작의(作意)된 대상의 차이입니다.
이때, 경(境)이 visaya와 gocara 중의 어떤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입처와 다른 어떤 것이라면 영역을 의미하는 gocara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 위에서 외입처(外入處)와 경(境)은 다른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한, 이 주제에서는 주목해야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삼사화합(三事和合) 촉(觸)을 근(根)-경(境)-식(識)의 화합으로 말하지만 경전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식(識)의 화합으로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근(根)-경(境)-식(識) 삼사화합(三事和合)의 촉(觸)은 없습니다.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