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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3 - 세상2)(근본경전연구회 180912)

0 783 2018.09.13 14:43

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3 - 세상2)(근본경전연구회 180912)

[동영상] https://youtu.be/FjdAh09ngVI

 

1. 지난 수업을 보충하여 확장된 세상의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ㅡ 「세상 마라 중생 괴로움

 

부서지고, 흩어지고, () 또는 아()에 속한 것에 의해 공()한 이 세상은 이렇게 마라의 영역이고, 중생의 영역이고, 괴로움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벗어날 때 마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고, 중생이라는 불완전한 존재 상태를 마감하는 것이고, 괴로움이 소멸한 완전한 행복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확장된 세상의 의미.png

 

2. 일어나고 사라지는 세상 ㅡ 「일어남-사라짐의 개념

 

이렇게 마라와 중생 그리고 괴로움과 동일시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는 일어남이라는 개념과 사라짐이라는 개념이 설해집니다. 나의 삶이 마라의 영역, 중생의 영역, 괴로움의 영역에 속해있으면 내 삶의 토대로서의 세상은 일어납니다. 반면에, 나의 삶이 마라로부터 해방되고, 중생이라는 불완전한 존재 상태를 마감하고, 괴로움이 소멸한 완전한 행복이 실현되면 나에게 세상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3. 세상의 끝 (AN 9.38-허무주의자 경)

 

초선(初禪)~상수멸(想受滅)의 삼매를 성취하여 머묾이 바로 세상의 끝입니다.

 

1) 초선~비상비비상처를 성취하여 머문다는 것은 세상의 끝에 오기는 했지만 아직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이고,

 

2) 상수멸을 성취하여 머묾은 세상의 끝에 와서 세상에 대한 집착을 건너기는 했지만 아직 세상의 끝에 머무는 상태

 

라는 정의입니다.

 

이 정의에 의하면, 상수멸은 세상에 대한 집착을 건넌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비상비비상처를 넘어 상수멸을 증득하는 과정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건너는 과정에 대응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과정이 있습니다. 아직은 세상의 끝에 머문다고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을 만나는 것으로의 삶의 이야기의 측면에서 이해하자면, 세상을 만나는 삶의 주관으로의 나에 대한 집착[()-자기화]를 아직 건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절반의 벗어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써 보아 번뇌를 다하게 한다는 것은 남아있는 절반 즉 나에 대한 집착을 건너는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세상의 끝을 넘어섬 즉 세상으로부터의 완전한 벗어남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AN 4.23-세상 경)이 말하는 부처님처럼 세상은 여래에 의해서 깨달아졌다. 세상으로부터 여래는 벗어났다.라고 선언되지 못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즉 나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는 만큼은 아직 세상의 끝에 머무는 중이어서 깨달음을 성취하지는 못한 상태라고 설명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끝.png

 

아공(我空) < 법공(法空) vs. 세상에 대한 집착 < 나에 대한 집착

 

4. 삼계(三界) ㅡ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공무변처에 대한 이런 이해는 세상을 세 개의 영역으로 분류하게 합니다. ‘나의 것즉 소유의 경향[욕상(慾想)]을 넘어서 몸과 마음이 함께한 상태를 라고 집착하는 경향이 작용하는 영역을 가운데 두고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욕상(慾想)을 넘어서지 못한 즉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들에 대해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경향의 영역을 욕계(慾界)[kāmadhātu]라고 하고, 가운데의 영역을 색계(色界)[rūpadhātu]라고 하며, 공무변처 이후 즉 색상(色想)이 초월된 영역을 무색계(無色界)[arūpadhātu]라고 합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무색계(無色界)를 색()의 초월 즉 색()이 없는 영역으로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SN 12.19-우현(愚賢) )무명이 버려지지 않고 갈애가 부수어지지 않은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가게 된다.고 하는데, 무명(無明)과 갈애가 남아있으면 그 정도에 따라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로 구분되는 중생인 것이고, 죽은 뒤에 다시 몸과 함께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색상(色想)의 초월로써 무색계(無色界)를 정의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무색계(無色界)도 몸이 있는 존재 상태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몸을 받음(우현경).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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