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13 - 오온7)상과 행의 연결된 이해[심오함의 끝](근본경전연구회 181128)
[동영상] https://youtu.be/75WPb7WmP7g
오온(五蘊)에서 상(想)과 행(行)은 연결 관계 위에서 함께 이해해야 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행(行)은 ‘유위(有爲)에서 형성하는 것’인데, 유위(有爲) 즉 탐(貪)-진(嗔)-치(癡)가 함께하는 중생의 삶이 상(想)에 의해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업에 이어 탐(貪)-진(嗔)-치(癡)와 유위(有爲)의 의미, 「심행(心行)=상(想)-수(受)」에 의한 심(心)의 형성, 심(心)이 ‘동의하고 맞이하고 묶여 머묾’에 의해 즐김을 만들어 갈애가 되는 과정을 포괄한 takka[갈애의 형성 및 자기화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삶의 심오함, 몸 안에 있지만 몸은 참여하지 않는 마음만의 작용영역[인식-행위]는 심오함의 끝에 닿은 부처님 깨달음의 본질이고, 거기에서 불교의 우수성이 드러난다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이 설명과정에 염오(厭惡)-이탐(離貪)-소멸(消滅)로의 깨달음, 사띠-삼매-지혜의 완성, 사념처-사마타-위빳사나 등을 간단히 소개하였는데,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5_05[수행지도(修行地圖)]의 자료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수행과정을 통해 takka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atakkāvacaro]으로 깨달음은 정의됩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1&wr_id=196참조.
이런 이해에 의하면, takka[갈애의 형성 및 자기화 과정]의 결과로 형성된 갈애[애(愛)]는 몸과 만나서 몸과 함께하는 표면의 삶의 영역에 해당하는 마음입니다. 즉 심(心)이 몸과 함께한 것으로의 의(意)[mano]인 것입니다. 몸과 함께하는 표면의 삶을 주관하는 갈애[사성제(四聖諦)의 고집성제(苦集聖諦)]와 그 갈애의 형성 과정이어서 갈애를 지배하는 것으로의 takka의 관계는 삶의 본질을 꿰는 내용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갈애 이후 즉 몸과 함께한 영역에서 견해-vitakka-의(意)의 행보[vicāra(?)]-[의도-기대-지향]-사유 등 행위 즉 업(業)의 영역을 간략히 설명하였는데, 추후 삶의 메커니즘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정리할 것입니다. 다만, 의(意)의 행보에 관해서는 (MN 140-요소의 분석 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4_10&wr_id=2
이렇게 상(想)과 행(行)은 연결 관계 위에서 설명해야 그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행(行)의 정의는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각각의 속성을 위해 유위(有爲)에서 형성한다고 상세히 말해집니다. 오온(五蘊) 각각이 유위(有爲)의 영역에서 가지는 속성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행(行) 즉 형성 작용은 중생으로의 삶을 유지시킵니다. 그리고 행(行)이 멈추면 중생 즉 유위(有爲)의 삶을 청산하고 해탈합니다. 중생으로의 속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바로 중생으로부터의 벗어남인 것입니다. ㅡ 「tadappatiṭṭhitaṃ viññāṇaṃ avirūḷhaṃ anabhisaṅkhaccavimuttaṃ. 식(識)이 머물지 않고 자라지 않는 그것이 형성하지 않음에 의한 해탈이다.」 (SN 22.54-씨앗 경)
이런 설명에 의하면, 깨달음은 지난 삶의 누적된 결과들을 부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현재의 삶에서 유위(有爲)적 형성 작용만 멈출 수 있으면 됩니다. 무명(無明)과 갈애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누진(漏盡)-번뇌의 부숨]이 불교 수행의 본질이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