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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17 - 식 확장3)육계[불교의 중심 - 연기된 식의 윤회와 중도](근본경전연구회 181226)

0 1,955 2018.12.27 15:15

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17 - 식 확장3)육계[불교의 중심 - 연기된 식의 윤회와 중도](근본경전연구회 181226)

[동영상] https://youtu.be/yKFD_NkwX3Y

 

사람 또는 존재라고 불리는 나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 중에 무엇이 삶의 중심이 됩니까?

 

삶의 중심을 몸에 치우친 시각으로 바라보면 윤회 없음 즉 단견(斷見)-단멸론(斷滅論)으로 이어집니다. 반면에, 마음에 치우친 시각으로 바라보면 자아[sat/atman/()]의 윤회 즉 상견(常見)-상주론(常住論)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견해는 사실입니까?

 

부처님 이전, 인류에게는 이런 두 가지의 치우친 견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육계(六界)의 교리를 통해 단견(斷見)이 사실 아님을 지적하고, 연기(緣起)의 교리를 통해 상견(常見)의 사실 아님을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이 두 가지 견해 외에 어떤 것으로 삶의 실상을 설명합니까?

 

부처님은 육계(六界)의 교리를 통해 몸이 죽어도 따라서 소멸하지 않는 식()을 설명하고, 이 식()[마음]과 명색(名色)[]의 서로 조건 됨과 생존 기간의 불균형에 따르는 식()의 윤회를 설명합니다. 또한, 연기(緣起)의 교리를 통해 윤회하는 것으로의 식()이 자아[sat/atman/()]가 아니라 연기(緣起)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단견(斷見)과 상견(常見) 모두의 사실 아님을 지적하고, 연기(緣起)된 식()의 윤회로써 삶의 실상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은 고멸(苦滅)을 위한 것입니다. 단견(斷見)이나 상견(常見)은 모두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견해에 토대해서는 고멸(苦滅)이 실현되지 않습니다. 오직 삶의 중심을 꿰뚫어 존재의 실상을 드러낼 때 고멸(苦滅)은 실현될 수 있고, 그런 꿰뚫음이 바로 연기(緣起) 연기(緣起)된 식()의 윤회인 것입니다. 경은 이것을 중()(majjha)이라고 부르는데, ‘고멸(苦滅)로 이끎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멸(苦滅)로 이끎을 위한 길과 실천이 있습니까?

 

경은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 즉 팔정도(八正道)가 바로 그 길이고, 그 실천이라고 알려줍니다. 특히,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은 중도(中道)(majjhimā paṭipadā)라고 정의됩니다. 그리고 이 길과 이 실천을 힘쓸 때 해탈(解脫)하게 되고, 열반(涅槃)을 실현하게 됩니다. 윤회에서의 벗어남이고, 고멸(苦滅)의 실현입니다.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15참조.

 

이것이 불교(佛敎)의 중심입니다! 두 장의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하였습니다.

 

불교의 중심1.png

 

불교의 중심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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