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26 - 식 확장12)심의식의 이해4[두 가지 意 & 작의](근본경전연구회 190424)
[동영상] https://youtu.be/KY7r_A_DiG0
의(意-mano)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는 육내입처(六內入處)의 의처(意處)이고, 다른 하나는 식(識) 또는 심(心)이 몸과 함께한 상태의 지칭입니다.
이때, 식(識)이 몸과 함께한 상태의 의(意)의 용례는 (SN 48.42-운나바 바라문 경)과 (SN 22.47-관찰 경)의 두 개를 발견할 수 있는데, 모두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 다섯 기능들을 총괄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 식(識) 또는 처(處)와의 관계에서 의(意)를 말하지 않고 몸의 다섯 기능과의 관계에서 의(意)를 제시함.
식(識)이 몸과 함께한 상태의 의(意)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과 의근(意根)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안근(眼根)-색(色)의 대응에는 안식(眼識)이, 내지 신근(身根)-촉(觸)의 대응에는 신식(身識)이 각각 역할을 하고, 법(法)에 대해서는 의식(意識)이 의근(意根)의 역할을 함께해서 인식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의(意)가 안근(眼根) 내지 신근(身根)의 개별적 접점 관계를 총괄하여 인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개별적 인식에는 각각의 식(識)이 작용하지만 그 식(識)들은 모두 의(意)의 일부이므로 식(識)들의 개별적 인식의 종합이라는 개념은 식(識)들의 종합된 무더기로의 의(意)의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음.
그러나 의(意)가 이런 의미, 이런 구성관계로 설명되지 않으면서 다섯 기능을 총괄한다는 일면의 이해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근(根)을 접점으로 인식하는 주관으로서의 식(識)의 역할이 설명되지 않고 또한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도 그 역할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의(意)가 그 역할을 총괄한다고만 하면, 그 구성이 설명되지 않는 의(意)는 무언가 특별함을 부여받게 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식(識)들의 뒤에 있는 어떤 특별한 존재 즉 아뜨만[아(我)]화 될 소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 의(意)에 대한 이런 이해는 경에서 많은 용례로서 발견되는데, 작의(作意-manasikāra)입니다. 여리작의(如理作意-yonisomanasikāra) 또는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ayonisomanasikāra)로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런 이해가 적용되어 앞에 소개한 (SN 48.42-운나바 바라문 경)과 (SN 22.47-관찰 경)은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manasikāra의 동사적 표현은 manasi karoti입니다. karoti는 does; acts; makes; builds. (kar + o)여서 ‘의(意)가 행위/작용하다’의 의미를 가져서 행위의 영역에서는 의업(意業), 인식의 영역에서는 작의(作意)에 대한 동사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작의(作意-manasikāra)는 의(意)의 작용입니다. 의(意) 즉 식(識)이 몸과 함께한 상태[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근(意根)]가 근(根)을 접점으로 대상에 주목하여 감각해 들이는 작용인 것입니다. 만약 작의(作意)를 의처(意處)의 작용이라고 해석하면 앞의 경우와 같은 문재 상황이 야기되므로 이렇게 의(意)의 의미를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