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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27 - 식 확장13)식 - 육식 외에 없음 & 삶의 두 갈래길(근본경전연구회 190501)

0 649 2019.05.04 08:13

▣ 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27 - 식 확장13)식 - 육식 외에 없음 & 삶의 두 갈래길(근본경전연구회 190501)

   [동영상] https://youtu.be/RLPXJOnI6mA

 

오온(五蘊) 중 식(識)에 대한 확장된 이해의 마지막 수업입니다. (MN 38-갈애 멸진의 큰 경)은 「nanu mayā, moghapurisa, anekapariyāyena paṭiccasamuppannaṃ viññāṇaṃ vuttaṃ, aññatra paccayā natthi viññāṇassa sambhavoti? “어리석은 자여, 연기(緣起)된 식(識), 다른 곳의 조건으로부터의 식(識)의 생김은 없다는 것이 나에 의해 여러 가지 법문으로 설해지지 않았는가?」라고 말합니다. 식(識)은 연기(緣起)된 것이고, 연기(緣起)되는 곳 외에는 다른 어디에서도 식(識)은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경은 식(識)이 연기되는 곳으로 안(眼)과 색(色) ~ 의(意)와 법(法)의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육외입처(六外入處)의 자리를 제시합니다. 즉 안식(眼識) ~ 의식(意識)의 육식(六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기(緣起)된 것으로의 식(識)은 여섯 가지가 있고, 이 외에 다른 어떤 식(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건관계에서 생기는 이런 식(識)들의 이어지는 삶의 과정에서 고(苦)도 만들어지고 고멸(苦滅) 즉 락(樂)도 만들어집니다. 오직 여기가 삶의 현장인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여섯 가지 식(識) 외에 다른 곳 또는 다른 방법으로 생겨나는 식(識)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식(識)은 없기 때문입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생겨나지 않은 것, 원래 있는 것으로의 식(識)은 더더군다나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아(我)인데, 부처님은 있는 것은 모두 무아(無我)[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누가 그런 식(識)을 말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이 설명하는 내 삶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삶의 현실에 대한 통찰 위에서 선언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삶의 현실을 벗어난 형이상학적 주제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참고] (SN 22.82-보름달 경)/(MN 109-보름달 큰 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참으로, 색(色)은 무아(無我)다. 수(受)는 … 상(想)은 … 행(行)들은 … 식(識)은 무아다. 무아(無我)에 의해 지어진 업(業)들은 어떤 아(我)에게 닿을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비구에 대해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고 무명(無明)이 스민 어떤 쓸모없는 자가 갈애에 지배되어 심(心)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능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런 경우가 있다. ‘이렇게, 참으로, 색(色)은 무아(無我)다. 수(受)는 … 상(想)은 … 행(行)들은 … 식(識)은 무아다. 무아(無我)에 의해 지어진 업(業)들은 어떤 아(我)에게 닿을 것인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을 위해 여기저기서 거듭 그 법들에 대하여 질의응답으로 설명한 나의 가르침이 있다.」라고 하면서 오온(五蘊)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에 의해 있는 그대로 본 뒤에 염오(厭惡)-이탐(離貪)-해탈(解脫)로써 깨닫는 가르침을 설합니다. 


무아(無我)인 오온(五蘊)의 이면에 존재하는 아(我)를 설정하는 시도에 대해 부처님은 ‘알지 못하고 무명(無明)이 스민 쓸모없는 자의 갈애에 지배된 잘못된 생각’이라고 단호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01&wr_id=89

 

이렇게 식(識)은 오직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육식(六識)이 있을 뿐입니다.


한편, 불교(佛敎)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의 가르침입니다(SN 44.2-아누라다 경). 그리고 (SN 12.45-냐띠까 경)(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3&sca=gahapati)은 오직 이 조건관계 안에서 takka[갈애의 형성 또는 자기화 과정]의 가공에 따라 결과 되는 애(愛)와 애멸(愛滅)의 과정으로 고(苦)와 고멸(苦滅)을 함께 설명하는데, 식(識)이 생기는 여섯 자리 위에서 전개되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이것 외에 중생의 삶에 수반되는 고(苦)를 설명하고, 고멸(苦滅)을 실현하여 해탈하는 다른 자리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은, 특히, 이 법문이 범행(梵行)의 시작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시각으로 나와 세상을 보지 못하면 온전한 삶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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