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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연기

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32 - 연기(緣起)의 용례경전 4)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고집(연기)+고멸(팔정도)](근본경전연구…

0 683 2019.06.13 22:47

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32 - 연기(緣起)의 용례경전 4)()에 의해 설해진 법[고집(연기)+고멸(팔정도)](근본경전연구회 190612)

[동영상] https://youtu.be/rWtSLEg4lso

 

(SN 12.1-연기 경)은 고집(苦集)의 과정으로의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연기(緣起)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고멸(苦滅)의 과정을 함께 설합니다. 그런데 고집(苦集)과 고멸(苦滅)의 과정을 묶어서 하나의 개념으로 지칭하는 경들이 있습니다. ‘여래는 중()에 의한 법을 설한다[()에 의해서 법을 설한다].’고 말하는 (SN 12.15-깟짜나곳따 경) 등 아홉 개의 경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에 의해 설한 법은 고집(苦集)과 고멸(苦滅)의 묶음입니다.

 

그런데 (SN 56.11-전법륜경)에 의하면, majjhimā paṭipadā[중도]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고멸도(苦滅道)]는 모두 팔정도(八正道)입니다. 이 대응관계를 빠알리어에 의해 환원하면 중(-majjha)고멸(苦滅)로 이끎이라고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중()에 의해 설한 법 즉 고집(苦集)과 고멸(苦滅)의 묶음고멸로 이끎에 의해 설한 법이 됩니다.

 

고집(苦集) 즉 연기=십이연기로 고()의 정체를 드러내면 팔정도(八正道)로 대응해서 고멸(苦滅)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에 의해 설한 법은 바로 연기=십이연기로 고()의 정체를 드러낸 뒤 팔정도로써 소멸하는 과정입니다.

 

()은 이렇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특히, 아홉 개의 경들에 나타나는 삶에 대한 다른 주장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다른 주장들의 가운데로서의 중()이 아닙니다. 삶의 중심(中心)을 꿰는 것[삶의 현실에 대한 통찰]로서의 중()은 옳은 것[사실]이고 다른 주장들은 틀린 것[거짓]입니다. ()은 고멸(苦滅)로 이끄는 것이고, 다른 주장들은 고멸(苦滅)로 이끌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은 분명히 이렇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수업말미에 2의 석가라 불리는 용수 스님의 가르침[팔불중도(八不中道)]’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ㅡ 「2의 석가라 불리는 용수 스님이나 제3의 석가라 불리는 원효 스님에 대해 우리가 신경 쓸 게 뭐 있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 우리 스승을 직접 만나는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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