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교리공부 > 팔정도

팔정도

바라문[brāhmaṇā]의 정의

바라문[brāhmaṇā]의 정의
 
<세기 경(D27))>은 바라문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ㅡ 「와셋타여,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을 없앤다고 해서 '바라문, 바라문'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생겨났다. 
 
pāpake akusale dhamme vāhentīti kho, vāseṭṭha, ‘brāhmaṇā, brāhmaṇā’ tveva paṭhamaṃ akkharaṃ upanibbattaṃ.
 
그들은 숲 속에서 초막을 짓고 초막에서 참선을 하였다. 그들은 숯불을 피우지 않았고 연기를 내지 않았고 절굿공이를 내려놓았으며 저녁에는 저녁식사를 위하고 아침에는 아침식사를 위해서 마을과 읍과 수도로 내려가서 걸식을 하였다. 그들은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숲 속의 초막으로 가서 선()을 하였다. 사람들이 이런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이 중생들은 숲 속에서 초막을 짓고 초막에서 선()을 합니다. 그들은 숯불을 피우지 않았고 연기를 내지 않았고 절굿공이를 내려놓았으며 저녁에는 저녁식사를 위하고 아침에는 아침식사를 위해서 마을과 읍과 수도로 내려가서 걸식을 합니다. 그들은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숲 속의 초막으로 가서 선()을 합니다.'라고. 와셋타여, ()을 한다고 해서 '자야까, 자야까[‘jhāyakā, jhāyakā’]'라는 두 번째 단어가 생겨났다."
    → jhāyaka: one who meditates. (m.)
 
"와셋타여,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중생들은 숲 속의 초막에서 선()을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마을의 경계나 읍의 경계로 내려와서 책을 만들면서 정착을 하였다. 인간들은 이런 그들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이 중생들은 숲 속의 초막에서 선()을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마을의 경계나 읍의 경계로 내려와서 베다를 만들면서 정착을 하였다. 이들은 이제 선()을 하지 않는다.'라고. 와셋타여, 이제 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앗자야까, 앗자야까(베다를 공부하는 자)[‘ajjhāyakā ajjhāyakā’]'라는 세 번째 단어가 생겨났다. 와셋타여, 그 시절에는 이들이 저열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최상으로 간주된다.
    → ajjhāyaka: an instructor; teacher. (m.) 
 
와셋타여, 이와 같이 이러한 바라문의 일원이 이와 같은 태고적 세상의 기원과 관계된 단어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그들은 중생들로부터 생겨났으며 다른 것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자들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다른 자들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법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비법에 의해서가 아니다. 와셋타여, 왜냐하면 지금여기에서도 내세에서도 법이 이 세상에서 최상이기 때문이다." 
 
삼명경(D13)은 바라문과 삼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tevijjā brāhmaṇā]을 구분하여 설하고 있는데, 이 경전의 내용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삼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tevijjā brāhmaṇā]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ye dhammā 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pahāya vattamānā, ye dhammā a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samādāya vattamānā] 이렇게 말한다. '인드라를 소청(所請)하나이다. 소마를 소청하나이다. 와루라를 소청하나이다. 이사나를 소청하나이다. 빠자빠띠를 소청하나이다. 범천을 소청하나이다. 마힛디를 소청하나이다. 야마를 소청하나이다.'라고. 와셋타여, 삼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소청한다고 해서, 빈다고 해서, 원한다고 해서, 기뻐한다고 해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깟사빠 사자후 경(D8)>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원한 없음과 진에(瞋恚) 없음과 자()의 심()을 닦고, 번뇌들을 부수어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수승한 지혜로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깟사빠여,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라고도 바라문이라고도 불린다. 
 
yato kho, kassapa, bhikkhu averaṃ abyāpajjaṃ mettacittaṃ bhāveti, āsavānañca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ayaṃ vuccati, kassapa, bhikkhu samaṇo itipi brāhmaṇo itipi. 
 
라고 하여, 발전적인 정의를 제시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