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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정의

염오(厭惡)[nibbidā]의 정의 & 심해탈(心解脫)[cetovimutti]의 개념

 대념처경 - 법념처9)염오의 정의[심해탈의 개념](부산 수행 171018)

[동영상] https://youtu.be/UwdgQQpFmB0

 

갈애의 형성과정[takka]을 제어하여 고멸(苦滅)을 실현하는 과정은 「염오(厭惡)→이탐(離貪)→소멸(消滅)」로 제시됩니다. 이때 이탐(離貪)은 사마타 수행에 의해 심(心)의 가라앉음 즉 들뜸을 가라앉혀 탐(貪)을 제거하는 과정이고 소멸(消滅)은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나는 과정입니다. 그러면 염오(厭惡)는 무엇입니까? 갈애를 형성하는 내면의 영역에서 문제 해소의 출발점인 염오는 수행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열반[애멸-이탐-소멸].png

 

이번 수업에서는 염오를 설명하는 경전들의 용례를 활용하여 염오를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해탈(心解脫)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 염오(厭惡)[nibbidā] ㅡ 「nābhinandati nābhivadati nājjhosāya tiṭṭhati 

                        ㅡ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


• 심해탈(心解脫)[cetovimutta] ㅡ 「nandirāgakkhayā cittaṃ vimuttaṃ suvimuttanti vuccatī

                ㅡ 난디와 탐(貪)의 부숨으로부터 결과 되는 심(心)의 해탈(解脫)을 좋은 해탈이라고 한다.」


1. 염오(厭惡)[nibbidā]


염오(厭惡)[nibbidā]는 난디[nandi-즐김]과 연계해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난디의 소멸을 설명하는 경전들은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을 때 난디가 생긴다.」고 하고,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을 때 난디가 소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섯 개의 <즐김의 멸진 경>은 「무상(無常)을 바르게 보면 염오(厭惡)한다. 난디의 부숨으로부터 탐(貪)의 부숨이 있다. 탐(貪)의 부숨으로부터 난디의 부숨이 있다. 난디와 탐(貪)의 부숨으로부터 결과 되는 심(心)의 해탈(解脫)을 좋은 해탈이라고 한다.」라고 합니다. 「무상(無常)을 바르게 봄[여실지견(如實知見)] → 염오(厭惡) → 난디의 부숨 ⇄ 탐(貪)의 부숨 → 심해탈(心解脫)」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염오(厭惡)하는 것이 곧 난디를 부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난디가 부서지는 다른 과정의 설명 없이 염오에 이어 난디의 부숨이 서술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오(厭惡)[nibbidā]가 난디를 부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난디는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을 때 생기고,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을 때 소멸합니다. 번뇌의 영향을 받는 유위(有爲)-중생의 삶의 과정에서는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음을 통해 난디가 생겨나지만[애(愛)의 형성],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난 무위(無爲)-해탈된 삶의 과정에서는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을 통해 난디가 소멸합니다[애(愛)의 소멸].


번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삶의 실현과정이 수행(修行)입니다. 선행하는 과정에 의해 여실지견(如實知見)하면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 즉 염오(厭惡)함으로써 난디를 소멸하고 이탐(離貪)-소멸(消滅)의 과정으로 나아가 번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삶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즉 깨달음입니다.


염오(厭惡)[nibbidā]의 정의를 위해 설명한 경전들을 두 개의 묶음으로 구분하여 첨부하였습니다.


[첨부1] 즐김[nandi]의 소멸을 설명하는 경전들

[첨부2] 여섯 개의 <즐김의 멸진 경>


2. 심해탈(心解脫)[cetovimutti]


심(心)은 상(想)-수(受)의 과정을 통해 생겨납니다. 그리고 생겨난 심(心)은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음의 과정을 통해 난디를 만들어서 갈애[애(愛)]가 됩니다. 그래서 갈애는 심(心)이 난디와 함께한 상태입니다. 또한, 심(心)의 형성과정이 식(識)이 탐(貪)으로 부풀린 것이기 때문에 식(識)이 난디와 탐(貪)과 함께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心)의 해탈은 함께하는 난디와 탐(貪)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생겨난 심(心)의 행위과정을 제어하여 난디를 부수고, 심(心)의 형성과정을 제어하여 탐(貪)을 부수는 두 가지 제어를 통해 난디와 탐(貪)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위과정과 형성과정은 모두 삶의 메커니즘입니다. 삶이 진행되는 틀인 것입니다. 그래서 난디를 부수고 탐(貪)을 부수는 것이 과정 자체를 부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행위과정을 통해 난디아님을 만들고[anandi], 형성과정을 통해 무탐(無貪)[arāga]을 만드어 난디아님과 함께한 심(心) 또는 난디아님 그리고 무탐(無貪)과 함께한 식(識)의 상태가 되는 것인데 애멸(愛滅)입니다. 또한, 심(心)의 해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형성과정에서 탐(貪)의 조건인 무명(無明)을 제어해야 하는데,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 염오(厭惡)[nibbidā] :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

                       → 난디아님[anandi] → 애멸(愛滅)


• 이탐(離貪)[virāga] : 심(心)의 가라앉음[들뜸의 가라앉힘] 

                       → 탐(貪)아님[무탐(無貪)-arāga] → 애멸(愛滅)의 유지 → 심해탈(心解脫)


• 소멸(消滅)[nirodha] :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無明)명(明)[avijjā]이 버려짐

                       → 명(明)[vijjā] → 혜해탈(慧解脫) →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심해탈의 개념.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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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압부또 2017.10.27 00:51
법문을 듣고 애매한 곳울 임시로 묶어서 후일 다시 볼 때 참고하고자 합니다

- 여실지견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형태의 수행으로 언급되고 있을까 ?
- 있는 그대로 알게되면, nandi를 할 이유가 스러지고 anandi 상태 ?
- 여실지견으로 nandi를 anandi로 방향을 돌리는 정점이  '염오' ?
-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이지 않는다면 '탐'의 대상이 부존재
- 염오는 대상을 갖는 유위적 상황, 무탐으로 향함은 대상을 갖지 않는 무위적 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