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번역의 도구 > 용어정의

용어정의

[첨부1] 난디[nandi]의 소멸을 설명하는 경전들 - 1. puṇṇovādasuttaṃ (MN 145)

0 520 2017.10.20 14:29

[첨부1] 난디[nandi]의 소멸을 설명하는 경전들

 

1. puṇṇovādasuttaṃ (MN 145)

 

뿐나 존자 이야기 "뿐나여, 나의 이러한 간략한 교계를 받아서 그대는 어떤 지방에서 머물려고 하는가?" "세존이시여, 수나빠란따라는 지방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머물 것입니다." "뿐나여,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거칠다. 뿐나여,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험하다. 뿐나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그대에게 욕설을 하고 험담을 하면 거기서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저에게 욕설을 하고 험담을 하면 저는 이렇게 여길 것입니다. '이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친절하구나.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하구나. 이들은 나에게 손찌검을 하지는 않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선서시여,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뿐나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그대에게 손찌검을 하면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저에게 손찌검을 하면 저는 이렇게 여길 것입니다. '이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친절하구나.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하구나. 이들은 나를 흙덩이로 때리지는 않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선서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뿐나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그대를 흙덩이로 때리면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저를 흙덩이로 때리면 저는 이렇게 여길 것입니다. '이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친절하구나.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하구나. 이들은 나를 몽둥이로 때리지는 않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선서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뿐나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그대를 몽둥이로 때리면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저를 몽둥이로 때리면 저는 이렇게 여길 것입니다. '이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친절하구나.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하구나. 이들은 나를 칼로써 때리지는 않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선서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뿐나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그대를 칼로써 때리면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저를 칼로써 때리면 저는 이렇게 여길 것입니다. '이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친절하구나. 수나빠란따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하구나. 이들은 날카로운 칼로써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는 않는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선서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뿐나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날카로운 칼로써 그대의 목숨을 빼앗아 간다면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일 수나빠란따 사람들이 날카로운 칼로써 저의 목숨을 빼앗아 간다면 저는 이렇게 여길 것입니다. '세존의 제자들 가운데는 몸이나 생명에 대해서 모욕을 당하고 혐오하게 되면 칼을 사용해서 [자결하는 것을] 구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구하지 않았는데도 칼을 사용하는 것을 만났구나.'라고. 세존이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선서시여, 거기서 저는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장하구나, 뿐나여. 장하구나, 뿐나여. 그대는 이러한 자기 제어와 고요함을 구족하여 수나빠란따 지방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뿐나여, 그대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면 지금이 [가기에] 좋은 시간이구나."

 

“santi kho, puṇṇa,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taṃ ce bhikkhu 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tassa taṃ abhinandato abhivadato ajjhosāya tiṭṭhato uppajjati nandī. ‘nandīsamudayā dukkhasamudayo, puṇṇā’ti vadāmi.

 

뿐나여,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적 사유를 수반하며 매혹적인 안()으로 인식되는 색()들이 있다. 만약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다. 그에게 그것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을 때 난디가 생긴다. ‘뿐나여, 난디의 일어남으로부터 괴로움의 일어남이 있다.’라고 나는 말한다.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육외입처(六外入處)에 반복]

 

“santi ca kho, puṇṇa,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taṃ ce bhikkhu nābhinandati nābhivadati nājjhosāya tiṭṭhati. tassa taṃ anabhinandato anabhivadato anajjhosāya tiṭṭhato nandī nirujjhati. ‘nandīnirodhā dukkhanirodho, puṇṇā’ti vadāmi.

 

뿐나여,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적 사유를 수반하며 매혹적인 안()으로 인식되는 색()들이 있다. 만약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다. 그에게 그것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을 때 난디가 소멸한다. ‘뿐나여, 난디의 소멸로부터 괴로움의 소멸이 있다.’라고 나는 말한다.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육외입처(六外入處)에 반복]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