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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輪迴)

윤회의 진실 - 수행[사념처의 새로운 이해](부산 윤회 161115)

0 443 2017.08.30 21:47

▣ 윤회의 진실 - 수행[사념처의 새로운 이해](부산 윤회 161115)

   [동영상] https://youtu.be/-ziawZFVgyI


1. 지난 주 수업을 요약하였습니다. http://cafe.naver.com/happydhamma/583


2. 윤회의 진실 세미나 준비과정의 마무리는 수행입니다. 존재로 이끄는 근원인 번뇌를 부수는 과정인데 팔정도이고, 사념처로 토대를 만든 위에서 사마타-위빳사나로 번뇌를 부수는 누진(漏盡)입니다. 누진명(漏盡明) 또는 누진통(漏盡通)이고 혜해탈자(慧解脫者)입니다.


사념처 수행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설명하였습니다. 초보수행자에게 선택적으로 가능한 신(身)-수(受)-심(心)-법(法)의 대상이 아니라 호흡수행의 준비과정 이후에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수행이면서 수행의 정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대상들입니다. 전반적으로 http://cafe.naver.com/happydhamma/597 의 정리를 반복하였는데 몇 가지 점을 보완하였습니다.


1) 기능-힘의 이해

사띠와 지혜의 기능-힘이 마음 밖의 제3자로서 마음을 도와준다기보다는 마음의 확장이어서 수행을 통해 생겨나는 것으로의 마음의 일부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마치 이상화 선수의 허벅지 근육이 연습을 통해 생겨나는 개별적인 것이지만 다리의 일부인 것과 같습니다. 근육으로 달린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근육으로 힘있어진 다리가 달리는 것이라는 이해입니다. 


(*) 식(識)과 혜(慧)가 결함된 것이라는 <교리문답의 큰 경(M43)>의 일부를 답글로 올렸습니다.

2) 이어 보는 자와 지혜[혜(慧)]의 이해

준비과정을 통해 의(意)는 신근(身根)과 함께 신(身)이 되어 촉(觸)을 놓치지 않고 작의(作意)합니다. 사띠와 함께 촉을 주목하여 감각하고 있는 것입니다[인식-vijānāti]. 그 상태에서 경은 촉을 분명하게 분별해 알 것[pajānāti] 인식의 결과로 생기는 앎[식(識)]을 분명히 알 것을 호흡수행의 본격적 과제로 제시합니다. 즉 지혜[paññā]와 함께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각주관인 의(意)는 이미 촉(觸)을 주목하여 보고 있습니다. 그렇디면 생겨나는 식(識)을 분명히 아는 일은 누가 합니까? 또한 지혜[paññā]는 어디에서 찾아와 그 일을 함께해 주는 것입니까?


보면 압니다. 내가 보면 내가 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보면 그 결과를 압니다. 보는 일과 아는 일은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지만 사실은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어서 촉(觸)을 주목하여 보는 것은 곧 그 결과로 생겨나는 식(識)[외입처의 앎]을 아는 것입니다. 다른 누가 그 일을 하느 것이 아니라 보는 자가 그대로 아는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념처[호흡수행]은 신(身)이 촉(觸)을 이어 보면서 촉의 앎[신식(身識)]을 아는 수행입니다.


한편, 수행의 중심 개념[장애-사념처-각지]에 의하면, 사념처는 지혜를 무력화시키는 마음의 오염원인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함으로써 지혜를 생겨나게 합니다. 그렇다면 준비과정을 통해 사띠를 생겨나게 하고 사띠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은 다섯 가지 장애를 밀어내면서 지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의 측면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이렇게 사띠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입처와 외입처의 인식작용에서는 또 하나의 결과가 생겨나는데, 수(受)입니다. 즉 신(身)과 촉(觸)의 인식에서 생겨나는 신촉생수(身觸生受)인 것입니다. 이때, 수념처(受念處)는 신촉생수(身觸生受)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나 신촉생수(身觸生受)를 이어 보라는 것은 아닙니다. 신(身)이 촉(觸)을 이어 보면서 신촉생수(身觸生受)를 아는 수행입니다.


※ 신념처와 수념처의 이런 이해는 감각기능의 단속과 연결하면 더 타당성을 보게 됩니다.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idha, mahārāja,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 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sotena saddaṃ sutvā ... pe ...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 pe ... jivhāya rasaṃ sāyitvā ... pe ...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 pe ...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ṃ mani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 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manindriyaṃ, mani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so iminā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ajjhattaṃ abyāsekasukhaṃ paṭisaṃvedeti. evaṃ kho, mahārāj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대왕이여, 어떻게 비구는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는가? 대왕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면서 ()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수()를 붙잡지 않는다. 만약 안근(眼根)을 제어하여 머물지 않으면 간탐(慳貪)과 불만(不滿)과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흘러들어 올 것이므로, 그는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고, 안근(眼根)을 보호하고, 안근(眼根)에서 단속한다.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혀로 맛을 보면서 몸으로 감촉을 촉감하면서 mano로 법을 인식하면서 상()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수()를 붙잡지 않는다. 만약 의근(意根)을 제어하여 머물지 않으면 간탐(慳貪)과 불만(不滿)과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흘러들어 올 것이므로, 그는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고, 의근(意根)을 보호하고, 의근(意根)에서 단속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기능의 단속을 갖추어 안으로 탐()이 뿌려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대왕이여, 이렇게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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