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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輪迴)

나는 누굴까[십이연기로의 연결](윤회의 진실 170209)

0 610 2017.08.31 10:05
▣ 나는 누굴까[십이연기로의 연결](윤회의 진실 170209)
   [동영상] https://youtu.be/4BLZGpEi7do

존재의 규정 즉 '나는 누굴까?'에 대한 바른 앎이 필요합니다. 바르게 알면 윤회 없음의 유물론적 단견(斷見)도 실체적 윤회의 상견(常見)도 모두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마음과 몸[식(識)-명색(名色)]이 함께해야 비로소 내가 되고,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매 순간 변화하다가[무아(無我)], 죽으면 그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태어나[윤회(輪廻)] 무아적 삶을 되풀이 하는 것이 식(識)과 명색(名色)인 나이고 나의 삶입니다. 이것이 삶에 대한 두 가지 오해 즉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극복하고 완전한 깨달음을 통해 부처님이 알려주신 '나는 누굴까?'에 대한 바른 앎입니다.

이때, 나 즉 존재를 지칭하는 용어[유(有)]의 인도말은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브라만교에서는 형이상학적 본질[태어나지 않은 존재-원래 있는 존재]인 sat가 사용되고, 불교에서는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매 순간 변화하는 식(識)과 명색(名色)이 함께한 것으로의 오취온(五取蘊)-유신(有身)을 말하는 bhava가 사용됩니다. 존재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른 것인데, 역시 sat는 사실이 아니고 bhava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아(我)]'를 지칭하는 용어[산스끄리뜨-atman, 빠알리-attan]도 의미의 차이가 있습니다. 브라만교에서는 atman으로 sat인 존재를 지칭하지만, 불교에서는 attan으로 브라만의 sat를 말하기도 하고[무아(無我)-anattan → sat인 atman없음], bhava[오취온(五取蘊)-유신(有身)]인 나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이때, 무아(無我)는 '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는 bhava이기 때문에 sat로 오해한 atman으로의 내가 아니고, 그러므로 atman인 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문맥에 따라 잘 구분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설명되는 나와 나의 삶을 말하는 불교교리가 있는데, 십이연기(十二緣起)입니다. 그리고 근본경전연구회가 구명하는 삶의 메커니즘이 바로 십이연기의 해석입니다. 그래서 윤회의 진실 수업은 '나는 누굴까?'에 대한 부처님의 설명을 확인하기 위해 삶의 메커니즘으로 접근하는 십이연기를 공부하는 것으로 연결되었습니다.

한편, 죽고 태어남의 과정에 대한 해피스님의 견해를 묻는 질문에 중유(中有)와 재생연결식이라는 경전에 나타나지 않는 용어들에 의지해 삶을 설명하지 않아야 한다고 답변하였습니다. 경전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고(苦)와 고멸(苦滅)을 설명하는 가르침의 범위 안에서, 삶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삶의 바른 설명을 위한 구체적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에 포함되지 않는 개념을 동원해서 삶을 설명할 때 삶은 사실을 벗어나 허구가 되어버리고, 고멸(苦滅)을 위한 실제적 방법[팔정도(八正道]는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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