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신견 & 두 가지 관찰[나의 것-나-나의 자아](해피스님의 경전 해설 190320)
[동영상] https://youtu.be/XoCv1JXwNtg
오온(五蘊)에 대한 관찰의 잘-잘못을 설명하는 표현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SN 22.7-집착에 의한 동요 경)과 (SN 22.8-집착에 의한 동요 경2)는 이 두 가지 관찰을 연이어 제시하는데, 오온(五蘊)에 대한 관찰의 전형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 (SN 22.7-집착에 의한 동요 경) ㅡ 「배우지 못한 범부는 아(我)로부터 색(色)을 관찰한다. 색(色)을 가진 자로서의 아(我)를 관찰하거나, 아(我)에서 색(色)을 관찰하거나, 색(色)에서 아(我)를 관찰한다.(오온(五蘊)에 반복)~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아(我)로부터 색(色)을 관찰하지 않는다. 색(色)을 가진 자로서의 아(我)를 관찰하거나, 아(我)에서 색(色)을 관찰하거나, 색(色)에서 아(我)를 관찰하지 않는다.(오온(五蘊)에 반복)」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01&wr_id=52&sca=nakulapitu
• (SN 22.8-집착에 의한 동요 경2) ㅡ 「배우지 못한 범부는 색(色)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한다.(오온(五蘊)에 반복)~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색(色)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오온(五蘊)에 반복)」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01&wr_id=70&sca=nakulapitu
이때, (SN 22.7-집착에 의한 동요 경)이 말하는 첫 번째 관찰은, 지난 수업에서 보았듯이, 오온(五蘊) 각각에 대한 4가지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온(五蘊) 각각에 대한 아(我)의 설정이라는 토대 위에서의 3가지 경우입니다. 또한, (SN 22.8-집착에 의한 동요 경2)이 말하는 두 번째 관찰은 오온(五蘊) 각각에 대한 3가지 형태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관찰은 의미를 감안할 때 대등한 관계로 연결되어 중생의 3단계 질적 구분인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대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색(色)을 가진 자로서의 아(我)를 관찰 ↔ 이것은 나의 것이다. → 욕계(慾界)
② 아(我)에서 색(色)을 관찰 ↔ 이것은 나다. → 색계(色界)
③ 색(色)에서 아(我)를 관찰 ↔ 이것은 나의 아(我)다 → 무색계(無色界)
이런 이해 위에서 오온(五蘊)에 대한 관찰의 잘-잘못은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를 구분합니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잘못된 관찰에 의해 괴로움을 만들고,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잘된 관찰에 의해 괴로움을 만들지 않습니다. 관찰의 방법과 관계없이 오온(五蘊)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실상을 가지기 때문에 잘못된 관찰은 사실과 다른 삶이어서 괴로움을 만들고, 잘된 관찰은 사실과 같은 삶이어서 괴로움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게 설명됩니다. ㅡ
「사실에 괴리(乖離)된 삶은 괴로움을 만들고[고(苦)],
사실에 부합(符合)한 삶은 행복을 만듭니다[고멸(苦滅)].」
한편, 이런 관찰은 그 위치도 주목해야 합니다. 잘못된 관찰은 아(我)가 전제된 관찰이어서 유신견(有身見)입니다. 오온(五蘊) 각각에 대해 3가지 경우/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3×5=15 가지의 유신견(有身見)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중생으로의 삶이고, 그 단계적인 경우/형태에 의해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중생을 특징지어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잘된 관찰은 여실지견(如實知見)입니다. 그래서 관찰 자체로서 완성이 아니라 욕계(慾界)를 넘어서고, 색계(色界)를 넘어서고, 무색계(無色界)를 넘어서서 해탈된 삶이라는 완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SN 22.59-무아상(無我相) 경) 등 많은 경들은 이런 관찰 위에서 「염오(厭惡) → 이탐(離貪) → 해탈(解脫) → 해탈지견(解脫知見)」으로의 깨달음의 과정을 이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수업에서는 두 번째 관찰 방법에 대한 이런 이해를 위해 (SN 22.59-무아상(無我相) 경)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01&wr_id=9&sca=upa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