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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中)과 중도(中道)

공(空-suññatā)-가(假-paññatti)-중(中-majjhima)에 관한 소고(小考) ㅡ Ⅲ. 중(中-majjhima)

1 244 2025.08.07 00:38

Ⅲ. 중(中-majjhima)


중(中)으로 번역되는 용어는 중(中-majjha)과 중도(中道-majjhimā paṭipadā)의 두 가지입니다. 여기서 majjhimā는 adj, from majjha / majjha + ima인 majjhima의 수단격입니다.


• majjha 1 adj. middle of; mid- 

majjha 2 masc. middle 

majjha 3 masc. waist; lit. middle


• majjhima 1 adj. middle; middling; medium; medium-sized; moderate


majjha는 중(中) 즉 가운데 또는 가운데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이것과 저것의 중간/질적 차이의 중간/공간의 가운데/큰지 작은지 중간인지/장로-중진-신진 비구/너무 차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중간/밤의 초삼분-중삼분-후삼분/중간의 지역/중간 방위/욕계-색계(중간의 계)-무색계/비구 상가 가운데서/뿌리-중간-꼭대기/중간의 계(戒) 등으로 많은 경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몇 가지 경우에는 고멸(苦滅) 즉 깨달음과 연결된 차별적 의미를 가지고 나타나는데, ①majjhesuttaṃ (AN 6.61-중 경)과 ②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ṃ deseti) 그리고 ③중도(中道)(majjhimā paṭipadā)입니다. 용례를 통해서 세 가지 주제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


[1] majjhesuttaṃ (AN 6.61-중 경) : 중(中-majjha) = 고멸(苦滅)로 이끎/고멸의 실현 


경은 숫따니빠따 도피안품 멧떼이야의 질문에 속한 게송을 주제로 합니다.


“yo ubhonte viditvāna, majjhe mantā na lippati.

taṃ brūmi mahāpurisoti, sodha sibbini maccagā”ti.


지혜로운 자는 양 끝을 안 뒤에 중(中)에서 오염되지 않는다.

나는 그를 대인(大人)이라고 부른다. 그는 여기서 꿰매는 자를 넘어섰다.


여기에서 ‘무엇이 한끝이고, 무엇이 두 번째 끝입니까? 중(中)에 무엇이 있고, 누가 꿰매는 자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여러 비구의 이해 위에서 부처님은 


“phasso kho, bhikkhave, eko anto, phassasamudayo dutiyo anto, phassanirodho majjhe, taṇhā sibbinī; taṇhā hi naṃ sibbati tassa tasseva bhavassa abhinibbattiyā


촉이 한끝이고, 촉의 자라남이 두 번째 끝이고, 중에 촉의 멸이 있고, 애가 꿰매는 자이다. 참으로 애가 그런저런 존재들의 태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꿰맨다.


라고, 실답게 알고 완전히 아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합니다.


한끝은 촉(觸)이라는 현상이고[고(苦)], 두 번째 끝은 그 현상의 자라남 즉 괴로움이 생겨나 자라나는 현상이고[고집(苦集)], 중에 있는 것은 촉의 멸인데, 촉이라는 현상에서 생겨나는 자라남의 해소 즉 고멸로 이끎 또는 고멸의 실현[고멸(苦滅)]입니다. (고집인) 애는 촉의 현상을 꿰어서 자라나게 하는 것인데, 존재들의 태어남을 이끕니다. 그리고 실답게 알고 완전히 알아서 괴로움을 끝내는 과정은 고멸도(苦滅道)입니다.


◐ 토론 


; (오온의) 자라남의 의미 → (SN 22.5-삼매 경) : (오온을) 대상으로 괴로움이 생겨나서 자라나는 삶의 과정


; 네 가지 계열 → (SN 22.56-집착의 양상 경) : 고(苦) 등의 현상과 그 집(集)-멸(滅)-도(道)


한편, (SN 56.11-전법륜경)에 의하면, 중도(中道) 즉 팔정도의 실천은 사성제에서는 고멸도성제로 나타납니다. 


중도(majjhimā paṭipadā)와 고멸로 이끄는 실천(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이 한 가지 팔정도라고 정의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도는 팔정도의 실천이어서 고멸로 이끄는 실천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중(中)이라는 용어는 '고멸로 이끎/고멸의 실현'을 지시하는 용어입니다.


● majjhimā paṭipadā =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 majjhimā = dukkhanirodhagāminī


그런데 majjhimā는 majjha[중(中)]의 2차 의미를 가지는 단어 즉 ‘중(中)인 것’입니다. 그리고 dukkhanirodhagāminī는 dukkha[고(苦)]-nirodha[멸(滅)]-gāminī[이끎]입니다.


※ majjha: the middle; the waist. (adj.), middle. (m.) 중(中)


; majjha + ima → majjhima 중(中)의, 중(中)인 것


→ abl.m/nt.s. nom/voc.m.pl nom.f.s. nom/voc/acc.f.pl. majjhimā


그러면 ‘중(中)인 것 = 고멸(苦滅)로 이끄는 것’이 되어서, 다시 환원하면 중(中)은 ‘고멸(苦滅)로 이끎’이라는 의미로 정의됩니다.


「중(中) = 고멸(苦滅)로 이끎」


※ (SN 7.9-순다리까 경)은 중에 의지하여 성스러움을 성취한다고 말하는데, 중(中)이 고멸로 이끎 즉 성스러움을 성취하는 길과 실천이라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mā brāhmaṇa dāru samādahāno, suddhiṃ amaññi bahiddhā hi etaṃ.

na hi tena suddhiṃ kusalā vadanti, yo bāhirena parisuddhimicche.


바라문이여, 나무에 불을 붙이는 자여서 밖으로 이런 청정을 생각하지 마시오.

밖에서 청정을 구하는 것 그런 청정은 없다고 능숙한 자들은 말합니다.


“hitvā ahaṃ brāhmaṇa dārudāhaṃ ajjhattamevujjalayāmi jotiṃ.

niccagginī niccasamāhitatto, arahaṃ ahaṃ brahmacariyaṃ carāmi.


바라문이여, 나는 나무에 불을 붙이는 일을 버리고서 오직 안의 빛으로 빛나게 합니다.

항상 빛나고 항상 삼매를 닦습니다. 나는 아라한이어서 범행을 실천합니다.


“māno hi te brāhmaṇa khāribhāro, kodho dhumo bhasmani mosavajjaṃ.

jivhā sujā hadayaṃ jotiṭhānaṃ, attā sudanto purisassa joti.


바라문이여, 자기화는 그대의 어깨 위로 짐을 나르는 것이고, 화는 연기고 거짓말은 재이며, 혀는 헌공 국자이고, 심장은 불피우는 제단, 잘 길든 자신은 인간의 빛입니다.


“dhammo rahado brāhmaṇa sīlatittho, anāvilo sabbhi sataṃ pasattho.

yattha have vedaguno sinātā, anallagattāva taranti pāraṃ.


바라문이여, 법은 계(戒)로 둘러싸인 호수이고, 장애가 없고 지혜롭고 평화로운 자에게 칭송받는 것, 참으로 거기서 목욕하여 높은 앎을 성취한 자들이, 몸을 말리듯이 저편으로 건너갑니다.


“saccaṃ dhammo saṃyamo brahmacariyaṃ, majjhe sitā brāhmaṇa brahmapatti. sa tujjubhūtesu namo karohi, tamahaṃ naraṃ dhammasārīti brūmī”ti.


진리와 법과 제어와 범행, 바라문이여, 중에 의지하여 성스러움을 성취합니다.

그 올곧음 위에서 절하십시오. 나는 그 사람을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부릅니다.”


[2]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ṃ deseti)


(SN 12.15-깟짜나곳따 경)은 있음과 없음의 쌍과 관련해서 「깟짜나여, ‘모든 것은 있다.’라는 것은 한끝이다. ‘모든 것은 없다.’라는 것은 두 번째 끝이다. 깟짜나여, 이런 두 끝으로 접근하지 않고 여래는 그대에게 중(中)에 의해서 법을 설한다.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行)들이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가 자라난다[고집(苦集)].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바래어 소멸할 때 행들이 소멸하고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가 소멸한다[고멸(苦滅)].’」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앞의 부분은 연기(緣起)여서 고집(苦集)이고, 뒷부분은 연멸(緣滅)인데 ‘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의 관점에서 ‘①존재라는 현상’으로의 한끝에 따르는 (존재라는 현상의 자라남인) ‘②연기’라는 두 번째 끝 그리고 ‘①존재라는 현상’에서 생겨나는 자라남(‘②연기’)의 해소 즉 연멸에 따른 고멸로 이끎/고멸의 실현이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中)은 연멸이고, 중에 의해 설해진 법은 연기의 전제에 이어지는 연멸의 쌍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연기를 철저히 사실에 들어맞게 사고함(paṭiccasamuppādaññeva sādhukaṃ yoniso manasi karoti)으로도 나타납니다.


◐ 중에 의해 설해진 법의 용례 ― (SN 12.15-깟짜나곳따 경)/(SN 12.17-나체 수행자 깟사빠 경]/(SN 12.18-띰바루까 경)/(SN 12.35-무명을 조건 함 경)/(SN 12.36-무명을 조건함 경2)/(SN 12.46-어떤 바라문 경)/(SN 12.47-자눗소니 경)/(SN 12.48-허무주의자 경)/(SN 22.90-찬나 경)


9개의 경은 표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유(有)-무(無)/단(斷)-상(常)의 치우친 견해를 극복한 연기(緣起)를 설하는데, 연기로써 단(斷)을 극복하고, 연멸(緣滅)로써 상(常)을 극복합니다. 이렇게 단과 상을 극복한 삶에 대한 바른 견해를 연기와 연멸의 쌍으로 제시하는데,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입니다.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의 용례.jpg

◐ 토론


연기의 정형구문은 ‘즉’으로 십이연기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이 조건 관계는 오직 ‘여기에서의 조건성(idappaccayatā)’인 연기에 적용되어 나의 삶에서 괴로움이 생겨나 자라나는 조건 관계에만 적용됩니다. 


그런데 후대에는 정형구문에 상의상관(相依相關) 또는 (부품의 조립에 의한 자동차의) 존재성의 의미를 부여하여 연기라고 말하고, 연기는 십이연기(十二緣起)라는 경에 없는 개념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정형구문의 모든 용례는 ’즉‘으로 연기에 연결됩니다. 근접에 의한 이것과 이것의 100% 조건 관계는 오직 삶에서 괴로움이 생겨나 자라나는 조건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지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것들의 관계성으로의 상의상관(相依相關) 또는 (부품의 조립에 의한 자동차의) 존재성의 개념은 여기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불교는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것들의 관계성을 따르는 존재성을 어떤 방법으로 설명합니까?


삼법인(三法印)인 제행무상(諸行無常)-제행개고(諸行皆苦)-제법무아(諸法無我)인데, 행들은 세상을 구성하는 것들이고, 법은 세상을 벗어나 실현되는 열반을 포함한 ‘있는 것’ 모두입니다. 이때, 무상(無常)은 항상 하지 않음의 현상이지만, 그 이전에 항상 하지 않은 것들의 결합 즉 다양한 조건들이 결합하여 결과를 만드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상의상관은 연기가 아니라 무상에서 설명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3] 중도(中道-majjhimā paṭipadā)


중도는 중에서의 또는 중에 의한/위한 실천이어서 무명~생의 소멸에 의한 고멸을 이끄는 실천이고, 그대로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입니다.


반면에 팔정도는 존재의 불완전성을 해소하는 방법입니다. 불완전한 존재가 생겨나는 조건 과정의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불완전한 존재가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인데, 불완전한 존재에서 벗어남으로써 존재가 겪어야 하는 아픈 현실을 해소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팔정도는 단지 방법일 뿐 아니라 그 방법의 실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소할 때 의미가 있는데, 이런 실천이 중도이고, 고멸도입니다. ―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


• majjhimā paṭipadā −중도(中道)

•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 고멸도(苦滅道)



◐ 중도(中道-majjhimā paṭipadā)의 용례


1. majjhimā paṭipadā ― (AN 3.157-163-나체수행자 품) ― 일곱 가지 보리분법(菩提分法)


“tisso imā, bhikkhave, paṭipadā. katamā tisso? āgāḷhā paṭipadā, nijjhāmā paṭipadā, majjhimā paṭipadā 


비구들이여, 세 가지 실천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거친 실천, 지치게 하는 실천, 중도(中道)이다. 


(AN 3.157-163-나체수행자 품)은 세 가지 실천을 소개하는데, 거친 실천(āgāḷhā paṭipadā), 지치게 하는 실천(nijjhāmā paṭipadā), 중도(中道-majjhimā paṭipadā)입니다. 거친 실천은 소유의 삶에는 결점이 없다는 견해 때문에 소유의 삶에 떨어지는 실천이고, 지치게 하는 실천은 고행이며, 중도는 사념처-사정근-사여의족-오근-오력-칠각지-팔정도의 일곱 가지 보리분법입니다. 


[참고] (DN 28.17-믿음을 고양하는 경, 스승의 다른 덕성의 게시)는 중도에 대해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사선(四禪)이 팔정도의 정정(正定)이라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yaṃ taṃ, bhante, saddhena kulaputtena pattabbaṃ āraddhavīriyena thāmavatā purisathāmena purisavīriyena purisaparakkamena purisadhorayhena, anuppattaṃ taṃ bhagavatā. na ca, bhante, bhagavā kāmesu kāmasukhallikānuyogamanuyutto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na ca attakilamathānuyogamanuyutto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catunnañca bhagavā jhānānaṃ ābhicetasikānaṃ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naṃ nikāmalābhī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


대덕이시여,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열성적 노력과 강함과 남자의 힘과 남자의 노력과 남자의 애씀과 짐을 짊어짐으로써 성취해야 하는 것을 세존께서는 성취하셨습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소유의 삶에서 소유의 즐거움에 묶인 이런 실천을 하지 않습니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자신을 지치게 하는 이런 실천을 하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높은 심(心)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는 분입니다.


2.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양 끝을 가까이하지 않고서 여래가 깨달은 중도는 안을 만들고, 지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 그림 ― 「(MN 85-보디 왕자 경)[소유의 삶의 비유]과 (SN 56.11-전법륜경)으로 이해하는 중도(中道)」 참조

전법륜(轉法輪) 경)으로 이해하는 중도(中道).jpg

; 이 용례들은 중도 곧 팔정도의 실천에 대해 ①스승이 버려야 한다고 말한 법들을 버림(MN 3-법(法)의 후계자 경), ②소유의 즐거움의 실천과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은 괴로움과 고통과 절망과 열기가 함께하는 삿된 실천이고, 중도는 괴로움과 고통과 절망과 열기가 없는 바른 실천(MN 139-평화의 분석 경), ③탐(貪)-진(嗔)-치(癡)에 의한 세 가지 퇴보로부터의 벗어남(SN 42.12-라시야 경), ④사성제(四聖諦)의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SN 56.11-전법륜경)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Comments

대원행 2025.08.07 21:08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15&wr_id=6 참조 ((특강 zoom 250805) 공(空)-가(假)-중(中)[suññatā - paññatti - majj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