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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중요 교리 및 특강

[특강 - 법의 도둑질(수시마 경)] 혜해탈자 & 이전-이후의 앎(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303)

1 269 2022.03.06 19:46

▣ [특강 - 법의 도둑질(수시마 경)] 혜해탈자 & 이전-이후의 앎(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30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z4ueMJEyDg

 

(AN 2.152-163-펼침 품)은 물질과 법의 두 가지 법을 펼침-환영-추구-구함-탐구-예배-절도-번영-성장-보배-쌓음-충만의 열두 가지 측면으로 소개하는데, 이 중에서 법의 절도(竊盜)를 주제로 하는 (SN 12.70-수시마 경)을 특강으로 공부하였습니다.


(SN 12.70-수시마 경)은 존경받지 못하고 필수품을 얻지 못하는 외도 유행승들이 존경과 필수품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훔치려 한 일화입니다. 외도 유행승들의 대표로 교단에 잠입하여 거짓 출가한 수시마가 혜해탈자(慧解脫者)인 아라한의 경지를 이해하지 못해 질문하고 부처님이 답변하는 구성을 보여줍니다.


[1] 경의 구성


1. 외도 유행승 집단의 대표로 수시마 유행승이 법을 훔쳐가기 위해 거짓으로 출가를 희망하고, 부처님은 출가를 허락함.


2. 많은 비구가 세존의 앞에서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함 ― 「저희는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3. 수시마 존자가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한 비구들에게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대 존자들은 ①신족통(神足通)-천이통(天耳通)-타심통(他心通)-숙명통(宿命通)-천안통(天眼通) 즉 육신통(六神通) 가운데 누진통(漏盡通)을 제외한 다섯 가지 능력을 갖추었는지, ②청정하고 색(色)을 넘어선 무색(無色)의 평화로운 해탈들을 몸으로 실현하여 머무는지[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 질문함.


4. 비구들은 이런 법들을 증득하지 못했다고 답하고, 수시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이런 능력 없이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할 수 있는가?]고 되묻습니다. 비구들은 혜해탈자(慧解脫者)이기 때문이라고 답하는데, 거짓 출가한 수시마 존자가 외도(外道)에게는 없는 혜해탈자의 개념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수시마 존자는 부처님에게 와서 다시 묻고, 부처님은 「“pubbe kho, susima, dhammaṭṭhitiñāṇaṃ, pacchā nibbāne ñāṇan”ti. 수시마여, 이전에는 법이 안정되고 영원하다는 앎[→법의 본성에 대한 앎=아(我)]이 있었고, 이후에는 열반(涅槃)에 대한 앎[→무아(無我)]이 있다.」라고 답한 뒤에 ①[삼법인(三法印)] 오온(五蘊)의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여실지견(如實知見)에 이어지는 염오(厭惡)-이탐(離貪)-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에 의한 무위의 앎의 선언과 ②[연기(緣起)] 고집(苦集)과 고멸(苦滅)의 조건 관계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6. 이런 설명에 의해 혜해탈자(慧解脫者) 즉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에 의한 깨달음을 이해한 수시마 존자는 자기가 제기한 다른 능력들이 깨달음을 위한 직접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시마 존자는 부처님에게 법을 훔치기 위해 거짓 출가했음을 밝히면서 참회하고, 부처님은 그 참회를 받아들입니다.


[2] 「“pubbe kho, susima, dhammaṭṭhitiñāṇaṃ, pacchā nibbāne ñāṇan”ti. 수시마여, 이전에는 법이 안정되고 영원하다는 앎이 있었고, 이후에는 열반(涅槃)에 대한 앎이 있다.」


혜해탈자(慧解脫者)의 정의 paññāvimuttasuttaṃ (AN 9.44-혜해탈자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7_05&wr_id=2

 

;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지혜로써 보아 번뇌들이 다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써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의 정의 ubhatobhāgavimuttasuttaṃ (AN 9.45-양면해탈자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7_05&wr_id=3

 

;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지혜로써 보아 번뇌들이 다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그 경지를 거듭 몸으로 닿아 머뭅니다. 그리고 지혜로써 그것을 꿰뚫어 압니다.

 

이 문장은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한 혜해탈자(慧解脫者)에 대한 설명인데, ‘pubbe … pacchā’를 ‘먼저 … 나중’으로 해석하지 않고 ‘이전 … 이후’로 해석하였습니다. 무위의 앎의 선언 즉 혜해탈자가 되었다는 사건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 pubbe: formerly; in the past. (loc.)

• pacchā: afterwards. (ind.)


그래서 혜해탈자가 되기 이전에는 dhammaṭṭhitiñāṇa(법이 안정되고 영원하다는 앎)이 있었고, 혜해탈자가 된 이후에는 nibbāne ñāṇa(열반에 대한 앎)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열반(涅槃)은 무상(無常)의 가라앉음에 따르는 락(樂)과 무아(無我)의 성질을 가지는 법입니다. 그러면 dhammaṭṭhitiñāṇa(법이 안정되고 영원하다는 앎)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깨달음 이전, 사실에 부합 하지 못한, 사실에 괴리된 앎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앎을 주제로 하는 두 개의 경을 보았는데, (SN 12.33-앎의 영역 경)과 (SN 12.34-앎의 영역 경2)입니다. (SN 12.33-앎의 영역 경)은 44가지 앎의 영역을 말하는데, 노사(老死)-노사의 자라남-노사의 소멸-노사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 ~ 행(行)들-행들의 자라남-행들이 소멸-행들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고, (SN 12.34-앎의 영역 경2)는 생(生)을 조건으로 노사(老死)가 있고 생이 없을 때 노사가 없음을 현재-과거-미래에 적용한 여섯 가지 앎과 ‘법이 안정되고 영원하다는 앎(dhammaṭṭhitiñāṇa)도 부서지는 것이고 무너지는 것이고 이탐(離貪)의 법이고 소멸(消滅)의 법이다.’라는 앎을 더한 일곱 가지를 무명(無明)과 행(行)들의 관계에까지 적용한 77가지 앎의 영역을 말합니다.


그러면 dhammaṭṭhitiñāṇa는 어떻게 ‘법이 안정되고 영원하다는 앎’으로 해석됩니까?


우선 열반과 대비되는 혜해탈자 즉 깨달음 이전의 앎이라는 점에서 행(行)들에 적용되는 앎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인 행(行)들에 대해 상(常)-락(樂)-아(我)라는 전도된 관점에 의한 왜곡된 앎입니다.


이때, (SN 22.94-꽃 경)은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niccaṃ dhuvaṃ sassataṃ avipariṇāmadhammaṃ)인 오온(五蘊)은 없고, 무상(無常)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a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인 오온(五蘊)은 있다고 하는데, 무상(無常-anicca) ↔ 상(常-nicca), 고(苦-dukkha) ↔ 안정되고 영원함(dhuva-sassata), 변하는 것(vipariṇāmadhamma) ↔ 변하지 않는 것(avipariṇāmadhamma)의 대응 관계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dhammaṭṭhitiñāṇa는 dhammaṭṭhiti-ñāṇa/dhamma-ṭ-ṭhiti-ñāṇa인데, 


dhammaṭṭhiti: the real nature of the Norm. (f.) 본성(本性). 참된 성질.

ṭhiti: stability; duration; continuance. (f.) 안정되고 영원함(dhuvaṃ sassataṃ)


입니다. ṭhiti로써 dhuva-sassata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行)들은 전도되지 않은 사실의 관점에서는 무상(無常)하고 불만족스럽고 변하는 것인데, 혜해탈자가 되기 이전에는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도되게 안다는 이해 위에서 ‘고(苦-dukkha) ↔ 안정되고 영원함(dhuva-sassata)’의 측면을 dhamma-ṭ-ṭhiti-ñāṇa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런 이해 위에서 「“pubbe kho, susima, dhammaṭṭhitiñāṇaṃ, pacchā nibbāne ñāṇan”ti. 수시마여, 이전에는 법이 안정되고 영원하다는 앎이 있었고, 이후에는 열반(涅槃)에 대한 앎이 있다.」라고 해석하였는데, (SN 12.34-앎의 영역 경2)을 인용하면, 범부는 법에 대해 안정되고 영원하다고 알고 있지만, 이탐(離貪)-소멸(消滅)의 공부[교학+수행]를 통해 그 앎이 부서지고 무너질 때 깨달음 즉 혜해탈자(慧解脫者)가 된다는 의미입니다(yampissa taṃ dhammaṭṭhitiñāṇaṃ tampi khayadhammaṃ vayadhammaṃ virāgadhammaṃ nirodhadhammanti ñāṇaṃ).

 

※ dhammaṭṭhiti는 유사한 형태의 몇 가지 용례로 나타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주제의 확장에서 정리하였습니다.

Comments

대원행 2022.04.27 14:35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2&wr_id=43&sca=%EB%91%98%EC%9D%98+%EB%AA%A8%EC%9D%8C 참조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2 - (142-180)[보시품-펼침품-증득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