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난다 경(A9:37) - 처(處)[1차 인식]의 이해[관찰 경](구차제정법회 160907)
이때, 경은 안(眼)과 색(色) 내지 신(身)과 촉(觸)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그 처(處)는 경험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물질[색(色)]의 영역에서 asmi를 조건으로 형성되는 처(處)가 경험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색계(色界)의 오염이 제거된 삶 즉 무색계(無色界) 중생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또는 무색계에 속하는 삼매들]. 즉 무색계는 물질 영역[안이비설신 ↔ 색성향미촉]의 오염을 넘어섰기 때문에 오염[잘못된 관찰]에 따르는 asmi가 물질영역에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의(意)와 법(法)의 영역에는 asmi가 작용하여 그 영역에서의 처(處)는 경험되는 미완성의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삶 또는 삼매는 색상(色想)을 넘어선 무색상(無色想)의 영역입니다. 상(想)이 없는 것이 아니라 향상된 상(想)을 가졌기 때문에 그 영역의 처(處)를 경험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의(意)와 법(法)의 영역에서도 asmi가 작용하지 않으면 완성된 삶입니다. 해탈한 아라한의 삶인 것입니다. 치유된 상(想)으로 살아가는 아라한의 해탈된 삶은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의 모든 인식 영역에서 asmi가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라한의 삶은 처(處)를 경험하지 않는 삶입니다. 또한, 아라한이 삼매에 들면 그 삼매 또한 처(處)를 경험하지 않는 삼매이고, 그 삼매 또한 상(想)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치유된 상(想)과 함께하는 상태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