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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처 상윳따(S47)

Re: 안과 밖의 의미[사념처 삼중 닦기-비구경](부산 수행 170124)

안과 밖의 짝을 이루는 용례

 
‘안[내(內)]과 밖[외(外)]’은 ‘ajjhattaṃ vā ~ bahiddhā vā’인데, 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세 가지의 용례로 나타납니다.

• 용례 1. 대념처경(D22)과 염처경(M10)에서 후렴구로 32회 나타남.

ㅡ iti ajjhattaṃ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혹은 안[내(內)]로 몸에서 몸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밖[외(外)]로 몸에서 몸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내외(內外)]로 몸에서 몸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머문다. 

→ 각각의 경 별로 신수심법(身受心法) 모두에 적용되어 16번의 소분류에 나타나므로 총 32번 나타남.

• 용례 2. 오온(五蘊)에 대한 정의와 관찰 방법으로 34회 나타남.

ㅡ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rūp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그 어떤 색(色)이라도 그것이 과거이건, 미래이건, 현재이건, 안[내(內)]이건, 밖[외(外)]이건, 거칠건, 섬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모든 색(色)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 [수(受)-상(想)-행(行)-식(識)에 반복]

→ 경전의 의도에 따라 

•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와 같이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한다.

•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이와 같이 바른 지혜로써 본다.

•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anupādā vimutto hoti. 이와 같이 바른 지혜로 보아 집착 없이 해탈한다.

• ayaṃ vuccati rūpakkhandho ~ viññāṇakkhandho. 나는 이것을 색온(色蘊) ~ 식온(識薀)이라고 부른다.

• sāsavaṃ upādāniyaṃ, ayaṃ vuccati rūpupādānakkhandho ~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번뇌와 함께하고 집착되기 마련인 것을 색취온(色取蘊) ~ 식취온(識取蘊)이라고 부른다.

• taṃ bhikkhu passati nijjhāyati yoniso upaparikkhati. tassa taṃ passato nijjhāyato yoniso upaparikkhato rittakaññeva khāyati, tucchakaññeva khāyati, asārakaññeva khāyati. kiñhi siyā, bhikkhave, rūpe sāro?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그가 그 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색(色) ~ 식(識)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포말 경(S22:95)]

• 용례 3. 분쟁의 뿌리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동일한 내용이 합송경(D33)-사마가마 경(M104)-분쟁 경(A6:36)에 6회 반복됩니다.

; 분쟁의 뿌리 여섯 가지 ㅡ ①kodha[화]-upanāha[원한], ②makkha[모욕]-paḷāsa[얕봄], ③issā[질투]-macchera[인색], ④māyā[사기]-sāṭheyya[거짓], ⑤pāpiccha[악한 원(願)]-micchādiṭṭhi[사견(邪見)], ⑥sandiṭṭhiparāmāsī[세상을 움켜쥠]-ādhānaggāhī duppaṭinissaggī[최상으로 여겨서 놓아버리기 어려움]

ㅡ evarūpaṃ ce tumhe, bhikkhave, vivādamūl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samanupasseyyātha. tatra tumhe, bhikkhave, tasseva pāpakassa vivādamūlassa pahānāya vāyameyyātha. evarūpaṃ ce tumhe, bhikkhave, vivādamūl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na samanupasseyyātha, tatra tumhe, bhikkhave, tasseva pāpakassa vivādamūlassa āyatiṃ anavassavāya paṭipajjeyyātha.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게 되면 그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들은 그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못하도록 수행해야 한다. 

• 예외적인 몇 가지 용례

1. janavasabhasuttaṃ, catusatipaṭṭhānaṃ (DN 18.8)[자나와사바 경(D18)]

“‘taṃ kiṃ maññanti, bhonto devā tāvatiṃsā, yāva supaññattā cime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tāro satipaṭṭhānā paññattā kusalassādhigamāya. katame cattāro? idha, bho, bhikkhu ajjhattaṃ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ajjhattaṃ kāye kāyānupassī viharanto tattha sammā samādhiyati, sammā vippasīdati. so tattha sammā samāhito sammā vippasanno bahiddhā parakāye ñāṇadassanaṃ abhinibbatteti. ajjhattaṃ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 pe ... bahiddhā paravedanāsu ñāṇadassanaṃ abhinibbatteti. ajjhattaṃ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 pe ... bahiddhā paracitte ñāṇadassanaṃ abhinibbatteti. ajjhattaṃ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ajjhattaṃ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nto tattha sammā samādhiyati, sammā vippasīdati. so tattha sammā samāhito sammā vippasanno bahiddhā paradhammesu ñāṇadassanaṃ abhinibbatteti. ime kho, bho,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tāro satipaṭṭhānā paññattā kusalassādhigamāyā”ti. imamatthaṃ, bhante, brahmā sanaṅkumāro bhāsittha.

삼십삼천의 신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유익함을 터득하기 위한 사념처(四念處)를 천명하셨습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존자들이여, 여기 비구는 안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합니다. 안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때 거기서 바르게 삼매에 들고 바르게 만족하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바르게 삼매를 닦고 바르게 만족할 때 밖으로 다른 몸에 대한 지견(知見)을 생겨나게 합니다. 
 
• para: other; another; foreign; alien; outsider. (adj.)
• abhinibbatteti: reproduces; brings into existence. (abhi + ni + vat + e)

안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합니다. 안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때 거기서 바르게 삼매에 들고 바르게 만족하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바르게 삼매를 닦고 바르게 만족할 때 밖으로 다른 수(受)에 대한 지견(知見)을 생겨나게 합니다. 

안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합니다. 안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때 거기서 바르게 삼매에 들고 바르게 만족하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바르게 삼매를 닦고 바르게 만족할 때 밖으로 다른 심(心)에 대한 지견(知見)을 생겨나게 합니다. 

안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합니다. 안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때 거기서 바르게 삼매에 들고 바르게 만족하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바르게 삼매를 닦고 바르게 만족할 때 밖으로 다른 법(法)에 대한 지견(知見)을 생겨나게 합니다. 

존자들이여, 이렇게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유익함을 터득하기 위한 사념처(四念處)를 천명하셨습니다.

2~3. 한적한 곳에 감 경 1~2 

'어떻게 사념처를 열심히 행합니까?'[“kittāvatā nu kho, āvuso anuruddha, bhikkhuno cattāro satipaṭṭhānā āraddhā hontī”ti?]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1~2 참조. ⇒ [첨부] 사념처를 게을리 하는 자 &사념처를 열심히 행하는 자

4. bhikkhusuttaṃ (SN 47.3)[비구 경]

“desetu me, bhante, bhagavā saṃkhittena dhammaṃ, desetu sugato saṃkhittena dhammaṃ. appeva nāmāhaṃ bhagavato bhāsitassa atthaṃ jāneyyaṃ, appeva nāmāhaṃ bhagavato bhāsitassa dāyādo assan”ti. “tasmātiha tvaṃ, bhikkhu, ādimeva visodhehi kusalesu dhammesu. ko cādi kusalānaṃ dhammānaṃ? sīlañca suvisuddhaṃ, diṭṭhi ca ujukā. yato kho te, bhikkhu, sīlañca suvisuddhaṃ bhavissati diṭṭhi ca ujukā, tato tvaṃ, bhikkhu, sīlaṃ nissāya sīle patiṭṭhāya cattāro satipaṭṭhāne tividhena bhāveyyāsi. katame cattāro? idha tvaṃ, bhikkhu, ajjhattaṃ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āh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āh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ajjhatta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āh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십시오. 선서께서는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십시오. 참으로 저는 세존의 말씀의 뜻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참으로 저는 세존의 말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유익한 법들에서 출발점을 청정히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유익한 법들의 출발점인가? 계(戒)의 청정과 견해의 올곧음이다. 비구여, 계(戒)의 청정과 견해의 올곧음이 갖춰지면, 비구여, 그때 그대는 계를 의지하면서 계를 확고히 하면서 사념처(四念處)를 삼중(三重)으로 닦아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여, 이와 같이 그대는 안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 밖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 안팎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수(受)-심(心)-법(法)에 반복]” 

5. dhammānupassīsuttaṃ (AN 6.118)[관찰 경2(A6:118)]

[참고] 관찰 경(A6:117)[Anupassī-sutta]

cha, bhikkhave, dhamme appahāya abhabbo kāye kāyānupassī viharituṃ. katame cha?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무엇이 여섯인가?”

kammārāmataṃ, bhassārāmataṃ, niddārāmataṃ, saṅgaṇikārāmataṃ, indriyesu aguttadvārataṃ, bhojane amattaññutaṃ. ime kho, bhikkhave, cha dhamme appahāya abhabbo kāye kāyānupassī viharituṃ.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것,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지 않음,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함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cha, bhikkhave, dhamme pahāya bhabbo kāye kāyānupassī viharituṃ. katame cha?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무엇이 여섯인가?”

kammārāmataṃ, bhassārāmataṃ, niddārāmataṃ, saṅgaṇikārāmataṃ, indriyesu aguttadvārataṃ, bhojane amattaññutaṃ — ime kho, bhikkhave, cha dhamme pahāya bhabbo kāye kāyānupassī viharitun”ti.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것,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지 않음,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함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관찰 경2(A6:118)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안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밖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안팎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안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밖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안팎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안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밖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안팎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안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밖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안팎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무엇이 여섯인가?”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것,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지 않음,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함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안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밖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안팎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안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밖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안팎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안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밖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안팎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지 못하면 안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밖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안팎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없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안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밖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안팎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안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밖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안팎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안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밖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안팎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안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밖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안팎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무엇이 여섯인가?”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것,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지 않음,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함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안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밖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안팎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안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밖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안팎으로 수(受)에서 수(受)를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안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밖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안팎으로 심(心)에서 심(心)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제거하면 안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밖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안팎으로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물 수 있다.”

[첨부] 사념처를 게을리 하는 자 &사념처를 열심히 행하는 자

“yesaṃ kesañci cattāro satipaṭṭhānā viraddhā, viraddho tesaṃ ariyo maggo sammā dukkhakkhayagāmī; yesaṃ kesañci cattāro satipaṭṭhānā āraddhā, āraddho tesaṃ ariyo maggo sammā dukkhakkhayagāmī”ti. 

사념처를 게을리 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괴로움의 멸진으로 바르게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게을리 하는 것이다. 사념처를 열심히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괴로움의 멸진으로 바르게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열심히 행하는 것이다.

모두 세 개의 경전에서 나타나는데

1. <게을리 함 경(S47:33)>은 위의 구문에 이어 '무엇이 넷인가?[katame cattāro?]'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념처를 제시하고,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 ... pe ... citte ... pe ...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비구는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 수(受)에서 수(受) … 심(心)에서 …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

라고 설명합니다.

2. <한적한 곳 경1(S52:1)>과 <한적한 곳 경2(S52:2)>는 '어떻게 사념처를 열심히 행합니까?'[“kittāvatā nu kho, āvuso anuruddha, bhikkhuno cattāro satipaṭṭhānā āraddhā hontī”ti?]’라는 질문에 이어 두 가지로 답변합니다.

• 답변 1] <한적한 곳 경2>

bhikkhu ajjhattaṃ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bahiddh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 pe ... ajjhattabahiddh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비구는 안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 밖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 안팎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

⇒ 수(受)-심(心)-법(法)에 반복.

• 답변 2] <한적한 곳 경1>

bhikkhu ajjhattaṃ kāye samudaya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ṃ kāye vaya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ṃ kāye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bahiddhā kāye samudaya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kāye vaya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kāye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ajjhattabahiddhā kāye samudaya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kāye vaya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kāye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비구는 안으로 신(身)에서 일어남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안으로 신(身)에서 사라짐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안으로 신(身)에서 일어남-사라짐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

밖으로 신(身)에서 일어남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밖으로 신(身)에서 사라짐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밖으로 신(身)에서 일어남-사라짐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

안팎으로 신(身)에서 일어남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안팎으로 신(身)에서 사라짐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안팎으로 신(身)에서 일어남-사라짐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

“so sace ākaṅkhati — ‘appaṭikūle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ṅkhati — ‘paṭikūle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ap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ṅkhati — ‘appaṭikūle ca paṭikūle ca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ṅkhati — ‘paṭikūle ca appaṭikūle ca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ap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ṅkhati — ‘appaṭikūlañca paṭikūlañca tadubhayaṃ abhinivajjetvā upekkhako vihareyyaṃ sato sampajāno’ti, upekkhako tattha viharati sato sampajāno.

“만일 그가 ‘나는 ①혐오 않음에서 혐오의 상(想)으로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일 그가 ‘나는 ②혐오에서 혐오 않음의 상(想)으로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 않음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일 그가 ‘나는 ③혐오 않음과 혐오에서 혐오의 상(想)으로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일 그가 ‘④혐오와 혐오 않음에서 혐오 않음의 상(想)으로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 않음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일 그가 ‘나는  ⑤혐오 않음과 혐오에서 둘 모두를 피하면서 염(念)-정지(正知)하며 평정으로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염(念)-정지(正知)하며 평정으로 머뭅니다.”

⇒ 수(受)-심(心)-법(法)에 반복.

입니다. 결국 세 개의 경전이 [cattāro satipaṭṭhānā āraddhā - 사념처를 열심히 행함]에 대하여 세 단계로 답을 주는 것인데, 

1)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묾,
2) 안-밖-안팎으로 신(身)에서 신(身)을 이어 보면서 머묾,
3) 안-밖-안팎으로 몸에서 일어남의 법, 사라짐의 법, 일어남-사라짐의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묾,

입니다. 이 가운데 특히 3)의 경우에는 그 결과까지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주목해야 할 내용입니다. (*)tikaṇḍakīsuttaṃ (AN 5.144)[띠깐다끼 경] 참조.

tikaṇḍakīsuttaṃ (AN 5.144)[띠깐다끼 경]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kete viharati tikaṇḍakīvan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bhagavā etadavoca —

한때 세존께서는 사께다에서 띠깐다끼 숲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대덕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appaṭikūle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paṭikūle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appaṭikūle ca paṭikūle ca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paṭikūle ca appaṭikūle ca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paṭikūlañca appaṭikūlañca tadubhayaṃ abhinivajjetvā upekkhako vihareyya sato sampajāno.


장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때때로 ①혐오 않음에서 혐오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한다. 장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때때로 ②혐오에서 혐오 않음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한다. 장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때때로 ③혐오 않음과 혐오에서 혐오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한다. 장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때때로 ④혐오와 혐오 않음에서 혐오 않음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한다. 장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때때로 ⑤혐오 않음과 혐오에서 둘 모두를 피하면서 염(念)-정지(正知)하며 평정하게 머물러야 한다. 

“kiñca,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appaṭikūle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mā me rajanīyesu dhammesu rāgo udapādī’ti — idaṃ kho,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appaṭikūle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비구들이여, 무슨 이유를 연(緣)하여 ①혐오 않음에서 혐오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하는가? ‘나에게 유혹적인 것들에 대한 탐(貪)이 생겨나지 않기를.’ ㅡ 비구들이여, 이러한 이유를 연(緣)하여 ①혐오 않음에서 혐오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한다.

“kiñca,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paṭikūle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mā me dosanīyesu dhammesu doso udapādī’ti — idaṃ kho,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paṭikūle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비구들이여, 무슨 이유를 연(緣)하여 ②혐오에서 혐오 않음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하는가? ‘나에게 배척할만한 것들에 대한 진(嗔)이 생겨나지 않기를.’ ㅡ 비구들이여, 이러한 이유를 연(緣)하여 ②혐오에서 혐오 않음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한다.

“kiñca,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appaṭikūle ca paṭikūle ca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mā me rajanīyesu dhammesu rāgo udapādi, mā me dosanīyesu dhammesu doso udapādī’ti — idaṃ kho,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appaṭikūle ca paṭikūle ca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비구들이여, 무슨 이유를 연(緣)하여 ③혐오 않음과 혐오에서 혐오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하는가? ‘나에게 유혹적인 것들에 대한 탐(貪)이 생겨나지 않기를. 나에게 배척할만한 것들에 대한 진(嗔)이 생겨나지 않기를.’ ㅡ 비구들이여, 이러한 이유를 연(緣)하여 ③혐오 않음과 혐오에서 혐오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한다.

“kiñca,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paṭikūle ca appaṭikūle ca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mā me dosanīyesu dhammesu doso udapādi, mā me rajanīyesu dhammesu rāgo udapādī’ti — idaṃ kho,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paṭikūle ca appaṭikūle ca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

비구들이여, 무슨 이유를 연(緣)하여 ④혐오와 혐오 않음에서 혐오 않음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하는가? ‘나에게 배척할만한 것들에 대한 진(嗔)이 생겨나지 않기를. 나에게 유혹적인 것들에 대한 탐(貪)이 생겨나지 않기를.’ ㅡ 비구들이여, 이러한 이유를 연(緣)하여 ④혐오와 혐오 않음에서 혐오 않음의 상(想)으로 머물러야 한다.

“kiñca,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paṭikūlañca appaṭikūlañca tadubhayaṃ abhinivajjetvā upekkhako vihareyya? ‘sato sampajāno mā me kvacani katthaci kiñcanaṃ rajanīyesu dhammesu rāgo udapādi, mā me kvacani katthaci kiñcanaṃ dosanīyesu dhammesu doso udapādi, mā me kvacani katthaci kiñcanaṃ mohanīyesu dhammesu moho udapādī’ti — idaṃ kho, bhikkhave, bhikkhu atthavasaṃ paṭicca paṭikūlañca appaṭikūlañca tadubhayaṃ abhinivajjetvā upekkhako vihareyya sato sampajāno”ti.

비구들이여, 무슨 이유를 연(緣)하여 ⑤혐오 않음과 혐오에서 둘 모두를 피하면서 염(念)-정지(正知)하며 평정하게 머물러야 하는가? ‘염(念)-정지(正知)하면서 나에게 유혹적인 것들에 대한 탐(貪)이 어디에서건 어느 곳에서건 어떤 것으로든 생겨나지 않고, 나에게 배척할만한 것들에 대한 진(嗔)이 어디에서건 어느 곳에서건 어떤 것으로든 생겨나지 않고, 나에게 오해할만한 것들에 대한 치(癡)가 어디에서건 어느 곳에서건 어떤 것으로든 생겨나지 않기를.’ ㅡ 비구들이여, 이러한 이유를 연(緣)하여 ⑤혐오 않음과 혐오에서 둘 모두를 피하면서 염(念)-정지(正知)하며 평정하게 머물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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