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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6)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에 빈 틈 없음 = 죽는 순간 태어남 → 중유(中有) 또는 중음신(中陰身) 없음

0 704 2018.02.24 15:54

(6)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에 빈 틈 없음 = 죽는 순간 태어남 중유(中有) 또는 중음신(中陰身) 없음

 

purisassa ca viññāṇasotaṃ pajānāti, ubhayato abbocchinnaṃ idha loke patiṭṭhitañca paraloke patiṭṭhitañca. ayaṃ tatiyā dassanasamāpatti. purisassa ca viññāṇasotaṃ pajānāti, ubhayato abbocchinnaṃ idha loke appatiṭṭhitañca paraloke appatiṭṭhitañca. ayaṃ catutthā dassanasamāpatti.

 

이 세상에서도 머물고 저 세상에서도 머물며, 양쪽으로 이어진 인간의 식()의 흐름, 이것이 세 번째 견()의 증득이다. 이 세상에서도 머물지 않고 저 세상에서도 머물지 않으며, 양쪽으로 이어진 인간의 식()의 흐름, 이것이 네 번째 견()의 증득이다. <확신 경(D28)>

 

()과 명색(名色)이 서로 조건이 된다는 것은 식() 혼자도 명색(名色) 혼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에 걸쳐 빈틈없이 이어지는 식()이라는 것은 서로 조건 되는 명색(名色) 또한 늘 함께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존재[()] 즉 중생으로의 삶의 과정에는 몸과 마음이 함께 하지 않은 상태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 틈이 없으니 죽는 순간 태어난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육계(六界)의 붙잡음으로 입태(入胎)가 있고, 들어가면 명색(名色)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토론장 경(S44:9)>중생이 이 몸을 내려놓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을 때는 갈애가 연료라고 합니다. 입태(入胎)의 과정에 아직 붙잡지 못한 시간이 존재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경설입니다. 또한, 몇 개의 경전은 죽고 태어남이 없을 때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이 둘의 중간도 없음을 말하는데,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사이에 중간의 과정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입니다.

 

※ 「Ⅳ-1.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를 설명하는 방법들 [6]~[7]참조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등은 이 경전들에 의해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중간 과정을 인정합니다. 죽고 태어나는 사이에 머무는 중간의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간에서의 존재양태를 중유(中有) 또는 중음신(中陰身)[antarā-bhava]이라고 합니다.

 

antarā: in between; meanwhile. (adv.)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은 시간을 넘어선 가르침입니다. 시간의 한계-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설해진 가르침인 것입니다. 우리가 동시라고 하는 그 시간에도 시간을 넘어선 어떤 과정의 진행은 설명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삶의 메커니즘[십이연기(十二緣起)]과 수행(修行)의 과정[수행지도(修行地圖)]는 계기성(繼起性)[순서적으로 일어남]과 구기성(俱起性)[동시에 함께 일어남]의 양면을 함께 설하고 있습니다.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부처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이다.’라고.

 

[참고] 과학자들이 확인한 시간의 최소 단위 = 10⁻⁴³

 

1918년 양자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막스 플란크(Max Planck)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150억 년 전으로 추정되는 우주 탄생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인 빅뱅(BigBang)의 시간을 0으로 간주할 경우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시간은 10⁻⁴³초이며 그 이전의 시간 동안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하여 이를 플란크의 벽 즉 앎의 벽이라고 일컬으며 이는 또한 이 빅뱅이 최초의 빅뱅인지 아니면 이전에 얼마만큼의 빅뱅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함.

 

그러므로 이 경설들은 구기(俱起)적 삶에 대한 계기(繼起)적 설명인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이해가 서로 조건 됨에 따라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에 빈 틈 없음 즉 죽는 순간 태어남을 설하는 경전의 토대 위에서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에는 중유(中有) 또는 중음신(中陰身)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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