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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7) 불이 꺼지듯 식(識)은 흔적을 남기지 않음 → 왓차곳따 불 경(M72)

0 611 2018.02.24 15:56

(7) 불이 꺼지듯 식()은 흔적을 남기지 않음 왓차곳따 불 경(M72)

 

불이 꺼지면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여기서 불이 꺼져버리는 것입니다. 윤회에서 벗어나면 윤회하지 않는 어떤 곳, 3의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윤회의 조건을 해소함으로써 윤회하는 삶에서 단지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의 상황은 무기(無記)입니다. 무명(無明)과 갈애를 소멸한 자에게만 알려지는 고멸(苦滅)의 상태입니다.

※ 「Ⅳ-1.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를 설명하는 방법들 [6]~[7]참조

 

“evaṃ vimuttacitto pana, bho gotama, bhikkhu kuhiṃ upapajjatī”ti?

 

고따마 존자시여, 이렇게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어디에 태어납니까?”

 

“taṃ kiṃ maññasi, vaccha, sace te purato aggi jaleyya, jāneyyāsi tvaṃ ‘ayaṃ me purato aggi jalatī’”ti? “sace me, bho gotama, purato aggi jaleyya, jāneyyāhaṃ ‘ayaṃ me purato aggi jalatī’”ti.

 

왓차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그대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면 그대는 내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라고 알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제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면 저는 내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라고 알 것입니다.

 

“sace pana taṃ, vaccha, evaṃ puccheyya ‘yo te ayaṃ purato aggi jalati ayaṃ aggi kiṃ paṭicca jalatī’ti, evaṃ puṭṭho tvaṃ, vaccha, kinti byākareyyāsī”ti? “sace maṃ, bho gotama, evaṃ puccheyya ‘yo te ayaṃ purato aggi jalati ayaṃ aggi kiṃ paṭicca jalatī’ti, evaṃ puṭṭho ahaṃ, bho gotama, evaṃ byākareyyaṃ ‘yo me ayaṃ purato aggi jalati ayaṃ aggi tiṇakaṭṭhupādānaṃ paṭicca jalatī’”ti.

 

왓차여, 그대에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그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제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그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제 앞에서 타고 있는 불은 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고 있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sace te, vaccha, purato so aggi nibbāyeyya, jāneyyāsi tvaṃ ‘ayaṃ me purato aggi nibbuto’”ti? “sace me, bho gotama, purato so aggi nibbāyeyya, jāneyyāhaṃ ‘ayaṃ me purato aggi nibbuto’”ti.

 

왓차여, 그대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그대는 내 앞에서 불이 꺼졌다.’라고 알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제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저는 내 앞에서 그 불이 꺼졌다.’라고 알 것입니다.”

 

“sace pana taṃ, vaccha, evaṃ puccheyya ‘yo te ayaṃ purato aggi nibbuto so aggi ito katamaṃ disaṃ gato puratthimaṃ vā dakkhiṇaṃ vā pacchimaṃ vā uttaraṃ vā’ti, evaṃ puṭṭho tvaṃ, vaccha, kinti byākareyyāsī”ti? “na upeti, bho gotama, yañhi so, bho gotama, aggi tiṇakaṭṭhupādānaṃ paṭicca ajali tassa ca pariyādānā aññassa ca anupahārā anāhāro nibbuto tveva saṅkhyaṃ gacchatī”ti.

 

왓차여, 그런데 만일 그대에게 그대 앞에서 그 불이 꺼졌는데, 그 불은 어떤 방향으로 갔는가? 동쪽인가, 남쪽인가, 서쪽인가, 북쪽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 말씀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불은 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고, 그 연료를 다 써 버리고 더 이상 다른 연료를 공급받지 못하면 연료가 없어서 꺼졌다고 합니다.”

 

“evameva kho, vaccha, yena rūpena tathāgataṃ paññāpayamāno paññāpeyya taṃ rūpaṃ tathāgatassa pahīnaṃ ucchinnamūlaṃ tālāvatthukataṃ anabhāvaṃkataṃ āyatiṃ anuppādadhammaṃ. rūpasaṅkhayavimutto VAR kho, vaccha, tathāgato gambhīro appameyyo duppariyogāḷho seyyathāpi mahāsamuddo. upapajjatīti na upeti, na upapajjatīti na upeti, upapajjati ca na ca upapajjatīti na upeti, neva upapajjati na na upapajjatīti na upeti.

 

왓차여, 참으로 그와 같다. 사람은 색()으로써 여래를 묘사하면서 묘사를 시도하지만 여래는 그 색()을 제거했고, 그 뿌리를 잘랐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왓차여, 여래는 색()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나니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다. 그에게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에 반복.

 

[참고] 어떤 불이 타다가 꺼지는 것일까? ādittasutta[불타오름 경(S35:28)] 참조

「Ⅳ-1.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를 설명하는 방법들 [3]

 

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 1차 인식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에게 탐진치(貪瞋痴)의 연료로 불을 붙이면 생()-노사(老死)-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의 불꽃으로 타오릅니다. 그러나 [염오(厭惡)이탐(離貪)해탈(解脫)해탈지(解脫知)]의 과정으로 탐진치(貪瞋痴)의 연료를 제거하면 불은 꺼지고 생()-노사(老死)-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의 불꽃은 사그라집니다.

 

바베큐의 비유 석쇠에 올려놓은 고기는 1차 인식에 속한 것들이고, 장작불은 탐진치이고, 여기서 발생하는 연기와 불꽃은 노사(老死)-수비고우뇌입니다.

 

이 경을  <왓차곳따 불 경>과 연결하면, 탐진치(貪嗔癡)라는 연료에 의해 불타는 중생의 삶은 생(生)-노사(老死)-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의 불꽃으로 타오르지만, 탐진치(貪嗔癡)의 연료를 공급받지 못하면 불은 꺼지고 불꽃은 사그라집니다. 생(生)의 불꽃이 꺼지니 태어나지 않고, 노사(老死)의 불꽃이 꺼지니 늙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의 불꽃이 꺼지니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의 괴로움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불이 꺼지면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여기서 불이 꺼져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참고] 십사무기(十事無記)에 속하는 여래의 사후에 대한 설명


여래의 사후는 ①있는 것도 아니고, ②없는 것도 아니고, ③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도 아니고, ④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닙니다. 무명(無明)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의 헤아림의 영역에 속하지 않아서 인간의 사유로 이해되지 않고,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영역입니다.


마음이 해탈한 비구의 태어남에 대한 연료를 조건으로 타고 있는 불이 연료를 공급받지 못해 연료가 없어서 꺼진 상태로의 비유는 이와 같다고 해야 합니다. 죽음과 함께 명색(名色)에 속하는 색(色)-수(受)-상(想)-행(行)은 없어지고 말겠지만 식(識)은 중생들의 헤아림의 영역 즉 ①있거나, ②없거나, ③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거나, ④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영역에 속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상태는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가 알려지기 위해서는 방해가 되는 무명과 갈애가 제거 되어야 합니다[사마타-위빳사나]. 즉 해탈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탈해서 열반을 실현하고, 윤회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해탈된 식(識), 윤회에서 벗어난 식(識)의 존재양태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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