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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세미나

[교재]

0 541 2018.02.24 15:58

(8) 다시 태어나지 않음 아라한의 후신(後身) 없음

 

부처님의 직계제자인 아라한의 후신(後身)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라한은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주장은 거짓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세상을 다 윤회하였지만 정거천(淨居天)에는 태어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정거천은 불환자(不還者)의 영역이어서 정거천으로의 윤회는 이 세상으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불환자도 그 후신(後身)으로 이 세상에 출현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아라한의 후신(後身)이겠습니까?

 

범행(梵行)을 닦는 것은 열반으로 귀결되고 열반으로 완성되고 열반으로 완결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범행(梵行)을 완성하고 열반을 실현한 아라한에게 중생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운나바 바라문 경(S48:42)[uṇṇābhabrāhmaṇasuttaṃ]

 

sāvatthinidānaṃ. atha kho uṇṇābho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uṇṇābho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사왓티에서. 그때 운나바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대화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운나바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pañcimāni, bho gotama, indriyāni nānāvisayāni nānāgocarāni,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ṃ paccanubhonti. katamāni pañca? cakkhundriyaṃ, sotindriyaṃ, ghānindriyaṃ, jivhindriyaṃ, kāyindriyaṃ. imesaṃ nu kho, bho gotama, pañcannaṃ indriyānaṃ nānāvisayānaṃ nānāgocarānaṃ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ṃ paccanubhontānaṃ kiṃ paṭisaraṇaṃ, ko ca nesaṃ gocaravisayaṃ paccanubhotī”ti?

 

고따마 존자시여, 다섯 가지 기능은 각각 다른 대상과 각각 다른 영역을 가져서 서로 다른 대상과 영역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다섯입니까?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처럼 다섯 가지 기능은 각각 다른 대상과 각각 다른 영역을 가져서 서로 다른 대상과 영역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다섯 가지 기능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무엇이 그들의 대상과 영역을 경험합니까?

 

“pañcimāni, brāhmaṇa, indriyāni nānāvisayāni nānāgocarāni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ṃ paccanubhonti. katamāni pañca? cakkhundriyaṃ, sotindriyaṃ, ghānindriyaṃ, jivhindriyaṃ, kāyindriyaṃ. imesaṃ kho, brāhmaṇa, pañcannaṃ indriyānaṃ nānāvisayānaṃ nānāgocarānaṃ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ṃ paccanubhontānaṃ mano paṭisaraṇaṃ, manova nesaṃ gocaravisayaṃ paccanubhotī”ti.

 

바라문이여, 다섯 가지 기능은 각각 다른 대상과 각각 다른 영역을 가져서 서로 다른 대상과 영역을 경험하지 않는다. 무엇이 다섯인가?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이다. 바라문이여, 이처럼 다섯 가지 기능은 각각 다른 대상과 각각 다른 영역을 가져서 서로 다른 대상과 영역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들 다섯 가지 감각기능은 의()를 의지한다. ()] 그들의 대상과 영역을 경험한다."

 

“manassa pana, bho gotama, kiṃ paṭisaraṇan”ti? “manassa kho, brāhmaṇa, sati paṭisaraṇan”ti. “satiyā pana, bho gotama, kiṃ paṭisaraṇan”ti? “satiyā kho, brāhmaṇa, vimutti paṭisaraṇan”ti. “vimuttiyā pana, bho gotama, kiṃ paṭisaraṇan”ti? “vimuttiyā kho, brāhmaṇa, nibbānaṃ paṭisaraṇan”ti. “nibbānassa pana, bho gotama, kiṃ paṭisaraṇan”ti? “accayāsi, brāhmaṇa, pañhaṃ, nāsakkhi pañhassa pariyantaṃ gahetuṃ. nibbānogadhañhi, brāhmaṇa, brahmacariyaṃ vussati nibbānaparāyaṇaṃ nibbānapariyosānan”ti.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마노[()]는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마노[()]sati[()]를 의지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sati[()]는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sati[()]는 해탈을 의지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해탈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해탈은 열반을 의지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열반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그대는 질문의 범위를 넘어서 버렸다. 그대는 질문의 한계를 잡지 못하였구나. 바라문이여, 범행(梵行)을 닦는 것은 열반으로 귀결되고 열반으로 완성되고 열반으로 완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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