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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4] ‘연료를 조건으로 타오르는 불’의 비유 그리고 도기공의 가마의 비유 1.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0 537 2018.02.24 16:48

[4] 연료를 조건으로 타오르는 불의 비유 그리고 도기공의 가마의 비유

 

1. tiṇakaṭṭhupādānaṃ paṭicca[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1) 왓차곳따 불 경(M72)

 

“evaṃ vimuttacitto pana, bho gotama, bhikkhu kuhiṃ upapajjatī”ti?

 

고따마 존자시여, 이렇게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어디에 태어납니까?”

 

“taṃ kiṃ maññasi, vaccha, sace te purato aggi jaleyya, jāneyyāsi tvaṃ ‘ayaṃ me purato aggi jalatī’”ti? “sace me, bho gotama, purato aggi jaleyya, jāneyyāhaṃ ‘ayaṃ me purato aggi jalatī’”ti.

 

왓차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그대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면 그대는 내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라고 알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제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면 저는 내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라고 알 것입니다.

 

“sace pana taṃ, vaccha, evaṃ puccheyya ‘yo te ayaṃ purato aggi jalati ayaṃ aggi kiṃ paṭicca jalatī’ti, evaṃ puṭṭho tvaṃ, vaccha, kinti byākareyyāsī”ti? “sace maṃ, bho gotama, evaṃ puccheyya ‘yo te ayaṃ purato aggi jalati ayaṃ aggi kiṃ paṭicca jalatī’ti, evaṃ puṭṭho ahaṃ, bho gotama, evaṃ byākareyyaṃ ‘yo me ayaṃ purato aggi jalati ayaṃ aggi tiṇakaṭṭhupādānaṃ paṭicca jalatī’”ti.

 

왓차여, 그대에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그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제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그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제 앞에서 타고 있는 그 불은 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고 있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sace te, vaccha, purato so aggi nibbāyeyya, jāneyyāsi tvaṃ ‘ayaṃ me purato aggi nibbuto’”ti? “sace me, bho gotama, purato so aggi nibbāyeyya, jāneyyāhaṃ ‘ayaṃ me purato aggi nibbuto’”ti.

 

왓차여, 그대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그대는 내 앞에서 불이 꺼졌다.’라고 알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제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저는 내 앞에서 그 불이 꺼졌다.’라고 알 것입니다.”

 

“sace pana taṃ, vaccha, evaṃ puccheyya ‘yo te ayaṃ purato aggi nibbuto so aggi ito katamaṃ disaṃ gato puratthimaṃ vā dakkhiṇaṃ vā pacchimaṃ vā uttaraṃ vā’ti, evaṃ puṭṭho tvaṃ, vaccha, kinti byākareyyāsī”ti? “na upeti, bho gotama, yañhi so, bho gotama, aggi tiṇakaṭṭhupādānaṃ paṭicca ajali tassa ca pariyādānā aññassa ca anupahārā anāhāro nibbuto tveva saṅkhyaṃ gacchatī”ti.

 

왓차여, 그런데 만일 그대에게 그대 앞에서 그 불이 꺼졌는데, 그 불은 어떤 방향으로 갔는가? 동쪽인가, 남쪽인가, 서쪽인가, 북쪽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 말씀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불은 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고, 그 연료를 다 써 버리고 더 이상 다른 연료를 공급받지 못하면 연료가 없어서 꺼졌다고 합니다.”

 

“evameva kho, vaccha, yena rūpena tathāgataṃ paññāpayamāno paññāpeyya taṃ rūpaṃ tathāgatassa pahīnaṃ ucchinnamūlaṃ tālāvatthukataṃ anabhāvaṃkataṃ āyatiṃ anuppādadhammaṃ. rūpasaṅkhayavimutto kho, vaccha, tathāgato gambhīro appameyyo duppariyogāḷho seyyathāpi mahāsamuddo. upapajjatīti na upeti, na upapajjatīti na upeti, upapajjati ca na ca upapajjatīti na upeti, neva upapajjati na na upapajjatīti na upeti.

 

왓차여, 참으로 그와 같다. 사람은 색()으로써 여래를 묘사하면서 묘사를 시도하지만 여래는 그 색()을 제거했고, 그 뿌리를 잘랐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왓차여, 여래는 색()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나니 마치 대해(大海)와도 같다. 그에게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에 반복.

 

2) 수바 경(M99)

 

“taṃ kiṃ maññasi, māṇava, yaṃ vā tiṇakaṭṭhupādānaṃ paṭicca aggiṃ jāleyya yaṃ vā nissaṭṭhatiṇakaṭṭhupādānaṃ aggiṃ jāleyya, katamo nu khvāssa aggi accimā ceva vaṇṇavā ca pabhassaro cā”ti? “sace taṃ, bho gotama, ṭhānaṃ nissaṭṭhatiṇakaṭṭhupādānaṃ aggiṃ jāletuṃ, svāssa aggi accimā ceva vaṇṇavā ca pabhassaro cā”ti. “aṭṭhānaṃ kho etaṃ, māṇava, anavakāso yaṃ nissaṭṭhatiṇakaṭṭhupādānaṃ aggiṃ jāleyya aññatra iddhimatā. seyyathāpi, māṇava, tiṇakaṭṭhupādānaṃ paṭicca aggi jalati tathūpamāhaṃ, māṇava, imaṃ pītiṃ vadāmi yāyaṃ pīti pañca kāmaguṇe paṭicca. seyyathāpi, māṇava, nissaṭṭhatiṇakaṭṭhupādāno aggi jalati tathūpamāhaṃ, māṇava, imaṃ pītiṃ vadāmi yāyaṃ pīti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i.

 

"바라문 학도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른 풀과 나뭇가지 같은 연료에 의지하여 타오르는 불과 마른 풀과 나뭇가지 같은 연료 없이 타오르는 불 가운데 어떤 불이 화염과 불꽃과 광채가 더 있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마른 풀과 나뭇가지 같은 연료 없이 타오르는 불이 화염과 불꽃과 광채가 더 있겠습니다."

 

"바라문 학도여, 마른 풀과 나뭇가지 같은 연료 없이 불이 타오르는 경우란 신통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바라문 학도여, 마른 풀과 나뭇가지 같은 연료에 의지하여 타오르는 불은 다섯 가닥의 소유적 사유의 대상에 의지한 희열과 같다고 나는 말한다. 바라문 학도여, 마른 풀과 나뭇가지 같은 연료 없이 타오르는 불은 소유적 사유와 상관없고 해로운 법들과도 상관없는 희열과 같다고 나는 말한다.

 
“katamā ca, māṇava, pīti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i? idha, māṇava, bhikkhu vivicceva kāmehi ... pe ...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mpi kho, māṇava, pīti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i. puna caparaṃ, māṇava,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 pe ...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mpi kho, māṇava, pīti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i.

 

바라문 학도여, 그러면 어떤 것이 소유적 사유와 상관없고 해로운 법들과도 상관없는 희열인가?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소유적 사유[()]들로부터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로부터 벗어나서, 위딱까[()]이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쳐버림에서 생긴 기쁨[()]와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이것이 소유적 사유와 상관없고 해로운 법들과도 상관없는 희열이다. 다시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고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이것도 소유적 사유와 상관없고 해로운 법들과도 상관없는 희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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