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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주제1. 누구의 깨달음인가? Ⅰ. 누구의 깨달음인가? 1. 개척된 깨달음 ㅡ 여래(如來)의 깨달음

0 484 2018.03.02 19:15

주제1. 누구의 깨달음인가?


Ⅰ. 누구의 깨달음인가?


1. 개척된 깨달음 ㅡ 여래(如來)의 깨달음


우리는 모두 불교신자(佛敎信者)입니다. 부처님 또는 부처님이 깨달아 설하신 가르침을 믿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기준은 누구입니까? 누구의 깨달음을 믿는 것입니까?


종교(宗敎)는 교주(敎主) 즉 스승이 선언하는 삶[나와 세상]의 해석에 대한 공감-동의-신뢰를 기반으로 그를 뒤따라 삶을 향상하고자 하는 집단입니다. 이때, 삶[나와 세상]의 해석에 대한 스승의 선언을 깨달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신자는 불교(佛敎)의 교주(敎主)이자 스승인 부처님의 선언 즉 부처님에 의해 개척된 깨달음을 믿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부처님의 깨달음입니까?


paṭhamavibhaṅgasuttaṃ (SN 48.9)[분석 경1]은 이렇게 말합니다.


“pañcimāni, bhikkhave, indriyāni. katamāni pañca?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katamañca, bhikkhave, saddhindriyaṃ? idha, bhikkhave, ariyasāvako saddho hoti, saddahati tathāgatassa bodhiṃ —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 idaṃ vuccati, bhikkhave, saddhindriyaṃ.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사띠의 기능, 삼매의 기능, 지혜의 기능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믿음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믿음이 있다. ㅡ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阿羅漢), 정등각(正等覺),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이시다.’라고 여래(如來)의 깨달음을 믿는다. ㅡ 비구들이여, 이것이 믿음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다섯 가지 기능[오근(五根)]은 마음을 도와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기능입니다. 믿음의 기능도 마음을 도와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기능입니다. 이런 이해에 의하면, 어떤 믿음이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믿음의 기능을 정의합니다. ㅡ 「여래(如來)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이 삶을 향상으로 이끈다!」


그렇습니다. 불교신자에게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믿음은 바로 부처님 즉 여래(如來)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래(如來)는 완전한 깨달음을 선언한 분이고, 완전한 깨달음에 의해 설해진 가르침은 완전한 가르침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위에서 배워 알고 실천하면 가르침이 가지는 위력에 의해 여래(如來)께서 제시하는 그런 삶이 나에게서 실현된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근거한 실천은 그렇게 실현을 이끕니다.


그런데 이 정의에 의하면, 우리가 보통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포괄적 의미의 부처님은 여래(如來)이고, 여래(如來)의 깨달음을 단면적 특성의 구족으로 정의하는데 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佛)-세존(世尊)의 아홉 가지 덕성(德性)[여래구덕(如來九德)]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첨부1-1. 「그래서 여래라 한다.」 참조


누구의 깨달음입니까? 그렇습니다. 여래의 깨달음입니다. 아홉 가지 덕성(德性)으로 구성된 여래의 깨달음이 바로 부처에 의해서 개척된, ‘부처를 만드는 깨달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이해는 이 아홉 가지 덕성(德性)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 첨부1-2. 「아홉 가지 덕성(德性)의 포괄적 이해」 참조


이때, 첨부1-2.에 의하면, 여래는 「①번뇌를 떠난 자이고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자이고 밝음과 실천을 갖춘 자이어서, ②앞서 가 닿은 진리의 자리를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길을 제시하였고, ③그럼으로써 세상일을 잘 알고 모두를 잘 이끌어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라고 찬탄 받는 자, ④그가 곧 깨달은 자[불(佛)-부처]이고 존귀한 존재[세존(世尊)]」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해는 여래를 번뇌를 떠난 자 즉 아라한이라고 압축할 수 있게 합니다. 번뇌를 떠난 것이 완전한 깨달음이고, 밝음과 실천의 갖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래 즉 깨달은 자의 상대 개념은 번뇌[루(漏)-āsava]입니다. 정견 경(M9)은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첫 지분인 무명(無明)과 이 번뇌를 서로 조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무명(無明)과 번뇌의 서로 조건 됨에 대한 이해는 삶의 이해를 위한 근본이 됩니다.


  ⇒ 첨부1-3. 「무명과 번뇌의 서로 조건 됨[sammādiṭṭhisuttaṃ (MN 9)]」 참조


• 번뇌의 정의 ㅡ 「①오염원이고, ②다시 존재로 이끌고, ③두렵고, ④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⑤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것」  <마하삿짜까 경(M36)>


“yassa kassaci, aggivessana, ye āsav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appahīnā, tamahaṃ ‘sammūḷho’ti vadāmi. āsavānañhi, aggivessana, appahānā sammūḷho hoti. yassa kassaci, aggivessana, ye āsav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pahīnā, tamahaṃ ‘asammūḷho’ti vadāmi. āsavānañhi, aggivessana, pahānā asammūḷho hoti.


악기웻사나여, 누구든지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지 못한 자, 그를 나는 미혹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악기웻사나여, 번뇌를 버리지 못한 자가 미혹한 사람이다.

 

악기웻사나여, 누구든지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린 자, 그를 나는 미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악기웻사나여, 번뇌를 버린 자가 미혹하지 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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