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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1. 여래의 깨달음의 유추 ㅡ 여래십력(如來十力) & 사무소외(四無所畏)

0 1,002 2018.03.02 19:34

1. 여래의 깨달음의 유추 ㅡ 여래십력(如來十力) & 사무소외(四無所畏)


여래의 깨달음의 일단은 mahāsīhanādasuttaṃ (MN 12)[사자후(師子吼)의 큰 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경은 여래의 열 가지 힘[여래십력(如來十力)], 네 가지 두려움 없음[사무소외(四無所畏)]를 중심으로 어떤 모임에서도 토론에 두려움이 없으며,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과 지옥(地獄)-축생(畜生)-아귀(餓鬼)-인간(人間)-천상(天上)의 오도윤회(五道輪廻)의 실상을 아는 것을 설명합니다.


1) 여래십력(如來十力)


비구들이여, 여래에게는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나니,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대웅(大雄)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범륜(梵輪)]를 굴린다. 무엇이 열인가?

 

• 여래의 힘① ㅡ 여래는 경우를 경우라고, 경우가 아닌 것을 경우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tathāgato ṭhānañca ṭhānato aṭṭhānañca aṭṭhān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


• 여래의 힘② ㅡ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業)의 보(報)를 경우와 원인과 함께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tathāgato atītānāgatapaccuppannānaṃ kammasamādānānaṃ ṭhānaso hetuso vipā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 여래의 힘③ ㅡ 여래는 모든 행처로 이끄는 실천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tathāgato sabbatthagāminiṃ paṭipad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 여래의 힘④ ㅡ 여래는 여러 요소[界]를 가졌고 다양한 요소를 가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tathāgato anekadhātunānādhātulo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 여래의 힘⑤ ㅡ 여래는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tathāgato sattānaṃ nānādhimuttika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 여래의 힘⑥ ㅡ 여래는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기능[근(根)]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tathāgato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indriyaparopariyat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 여래의 힘⑦ ㅡ 여래는 선(禪)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의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tathāgato jhānavimokkhasamādhisamāpattīnaṃ saṃkilesaṃ vodānaṃ vuṭṭhān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 여래의 힘⑧ ㅡ 여래는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숙주명(宿住明)]. 

 

tathāgat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 여래의 힘⑨ ㅡ 여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천안명(天眼明). 

 

tathāgat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 여래의 힘⑩ ㅡ 여래는 번뇌들을 부수어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구족하여 머문다[누진명(漏盡明)]. 


tathāgato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2) 사무소외(四無所畏)


① '그대가 바르게 깨달은 자[정등각(正等覺)]이라 선언하지만 이런 법들은 깨닫지 못했다.'라고 이 세상에서 적절한 이유를 가지고 나를 질책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범천의 어떤 조짐도 찾아볼 수 없다. 비구들이여, 나는 내게서 이런 조짐을 찾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안은(安隱)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담대함을 얻어 머문다. 


⇒ ‘sammāsambuddhassa te paṭijānato ime dhammā anabhisambuddhā’ti


② '그대가 번뇌를 부순 자[아라한(阿羅漢)]이라고 선언하지만 이런 번뇌는 완전히 멸하지 못했다.'라고 ~


⇒ ‘khīṇāsavassa te paṭijānato ime āsavā aparikkhīṇā’ti


 ③ '그대가 장애가 된다고 설한 법들을 수용하더라도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고 ~


⇒ ‘ye kho pana te antarāyikā dhammā vuttā te paṭisevato nālaṃ antarāyāyā’


④'그대가 누구를 위하여 설한 법을 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은 괴로움의 부숨으로 나가지 못한다.''라고 ~


⇒ ‘yassa kho pana te atthāya dhammo desito so na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ā’ti


3) 사생(四生)


“catasso kho imā, sāriputta, yoniyo. katamā catasso? aṇḍajā yoni, jalābujā yoni, saṃsedajā yoni, opapātikā yoni. katamā ca, sāriputta, aṇḍajā yoni? ye kho te, sāriputta, sattā aṇḍakosaṃ abhinibbhijja jāyanti — ayaṃ vuccati, sāriputta, aṇḍajā yoni. katamā ca, sāriputta, jalābujā yoni? ye kho te, sāriputta, sattā vatthikosaṃ abhinibbhijja jāyanti — ayaṃ vuccati, sāriputta, jalābujā yoni. katamā ca, sāriputta, saṃsedajā yoni? ye kho te, sāriputta, sattā pūtimacche vā jāyanti pūtikuṇape vā pūtikummāse vā candanikāye vā oḷigalle vā jāyanti — ayaṃ vuccati, sāriputta, saṃsedajā yoni. katamā ca, sāriputta, opapātikā yoni? devā, nerayikā, ekacce ca manussā, ekacce ca vinipātikā — ayaṃ vuccati, sāriputta, opapātikā yoni. imā kho, sāriputta, catasso yoniyo.


사리뿟따여, 이러한 네 갈래 태어남이 있다. 네 갈래란 어떠한 것인가?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다. 시리뿟따여, 난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그 껍질을 깨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을 난생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태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태의 막을 벗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을 태생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습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썩은 물고기, 부패한 시체, 부패한 굳은 우유에서나 물웅덩이나 연못에서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을 습생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화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신들이나, 지옥에 태어난 자들이나, 어떤 인간들이나, 죽은 뒤에 벌을 받아야 하는 어떤 존재들 ㅡ 이것이 화생이라고 나는 말한다.


4) 오도윤회(五道輪廻)


“pañca kho imā, sāriputta, gatiyo. katamā pañca? nirayo, tiracchānayoni, pettivisayo, manussā, devā. nirayañ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nirayagāmiñca maggaṃ, nirayagāminiñca paṭipadaṃ;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tiracchānayoniñ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tiracchānayonigāmiñca maggaṃ, tiracchānayonigāminiñca paṭipadaṃ;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tiracchānayoniṃ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pettivisayaṃ 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pettivisayagāmiñca maggaṃ, pettivisayagāminiñca paṭipadaṃ;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ettivisayaṃ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manusse 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manussalokagāmiñca maggaṃ, manussalokagāminiñca paṭipadaṃ;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manussesu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deve 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devalokagāmiñca maggaṃ, devalokagāminiñca paṭipadaṃ;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nibbānañ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nibbānagāmiñca maggaṃ, nibbānagāminiñca paṭipadaṃ; yathā paṭipanno ca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tañca pajānāmi.


사리뿟따여, 이러한 다섯 가지의 가는 자가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이다. 사리뿟따여, 나는 지옥과 지옥으로 이끄는 길, 지옥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그것에 따라 실천하는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축생과 축생으로 이끄는 길, 축생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그것에 따라 실천하는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아귀와 아귀로 이끄는 길, 아귀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그것에 따라 실천하는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인간과 인간으로 이끄는 길, 인간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그것에 따라 실천하는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천상과 천상으로 이끄는 길, 천상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그것에 따라 실천하는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열반과 열반으로 이끄는 길, 열반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그것에 따라 실천하는 자는 번뇌들을 부수어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구족하여 머문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원전 생략]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ekanta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ayamānaṃ]을 본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사람 키 남짓한 크기로, 불꽃이나 연기가 없이 작열하는 숯불의 구덩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이 숯불 구덩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숯불 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불구덩이에 빠져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서,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나,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ayamānaṃ]을 본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사람 키 남짓한 크기로, 똥으로 가득 찬 똥구덩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이 똥구덩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똥으로 가득 찬 똥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똥구덩이에 빠져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나,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나, 괴로움이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dukkhabahulā vedanā vedayamānaṃ]을 본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평탄하지 못한 땅위에 생겨나 엷은 잎사귀들의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가진 나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나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평탄하지 못한 땅위에 생겨나 엷은 잎사귀들의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가진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로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나무에 도착해서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나, 괴로움이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에 태어나, 즐거움이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sukhabahulā vedanā vedayamānaṃ]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평탄한 땅위에 생겨나 많은 잎사귀들의 짙은 그림자를 가진 나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나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평탄한 땅위에 생겨나 무성한 잎사귀들의 짙은 그림자를 가진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로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나무에 도착해서 즐거움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에 태어나, 즐거움이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나,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는 것[ekantasukhā vedanā vedayamānaṃ]을 본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안팎이 잘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으로 채워지고 창문이 닫힌 이층누각에 안락의자, 긴 털의 흑모 양탄자, 긴 털의 백모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까달리 사슴가죽으로 만든 최상의 모포, 차양, 붉은 빛 머리베개와 발 베개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누각을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안팎이 잘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으로 채워지고 창문이 닫힌 이층누각에 안락의자, 긴 털의 흑모 양탄자, 긴 털의 백모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까달리 사슴가죽으로 만든 최상의 모포, 차양, 붉은 빛 머리베개와 발 베개가 있는데, 그 누각으로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누각에 도착해서 오로지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나,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번뇌들을 부수어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그가 번뇌들을 부수어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구족하여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는 것[ekantasukhā vedanā vedayamānaṃ]을 본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맑고 정갈하고 차가운 물로 가득 차서 투명하고 아름다운 둑으로 둘러싸여 즐길 만하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는 연못이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연못을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맑고 정갈하고 차가운 물로 가득 차서 투명하고 아름다운 둑으로 둘러싸여 즐길 만하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는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으로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연못에 들어가서 목욕하고 마시고 일체의 근심과 피로와 고뇌를 없애고 다시 나와서, 그 총림에서 앉거나 누워서 오로지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번뇌들을 부수어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구족할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나중에 나는 그가 번뇌들을 부수어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구족하여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십력 경(S12:21)은 이런 능력을 갖춘 여래는 사자후(師子吼)를 토하고 범륜(梵輪)을 굴리는데 오온(五蘊)의 일어남 사라짐 즉 사성제(四聖諦)와 연기(緣起) 즉 십이연기(十二緣起)입니다.

 

사자후(獅子吼) 또는 범륜(梵輪).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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