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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주제4. 깨달음의 산물 ㅡ 열반(涅槃)

0 560 2018.03.02 23:26

 주제4. 깨달음의 산물 열반(涅槃)

 

. 열반(涅槃)으로 온전하게 이끄는 가르침

 

부처님의 전생을 설하는 경전들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하기 이전인 전생에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아 많은 사람들을 범천(梵天)의 세상으로 이끌었지만 깨달음을 성취한 지금은 열반(涅槃)으로 온전하게 이끄는 가르침 즉 팔정도(八正道)를 설한다고 합니다. ()-()-()의 문제를 해결하고 윤회(輪迴)하는 중생의 삶에서 벗어난 해탈된 삶의 실현입니다.

 

ahaṃ tena samayena mahāgovindo brāhmaṇo ahosiṃ. ahaṃ tesaṃ sāvakānaṃ brahmalokasahabyatāya maggaṃ desesiṃ. taṃ kho pana me, pañcasikha, brahmacariyaṃ na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yāvadeva brahmalokūpapattiyā.

 

나는 그때 마하고윈다 바라문이었다. 나는 그 제자들에게 범천의 세상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설했다. 그러나 빤짜시카여, 그 나의 길은 범행(梵行)을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못했다. 단지 범천의 세상에 태어남까지 이끌었을 뿐이다.

 

idaṃ kho pana me, pañcasikha, brahmacariyaṃ ekanta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katamañca taṃ, pañcasikha, brahmacariyaṃ ekanta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idaṃ kho taṃ, pañcasikha, brahmacariyaṃ ekanta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그러나 빤짜시카여, 이 나의 길은 범행(梵行)을 온전하게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그러면 빤짜시카여, 어떤 길이 그 범행을 온전하게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끄는가?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빤짜시카여, 이것이 그 범행을 온전하게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mahāgovindasuttaṃ (DN 19)[마하고윈다 경]

 

전생에 마하고윈다 바라문이었을 때 가르친 길은 범천의 세상으로 이끄는 도관(導管)이었지만 지금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로서 가르치는 길은 온전하게 열반으로 이끄는 도관(導管)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은 범행(梵行) 즉 삶의 향상을 위한 노력을 더 이상 범천의 세상이 아닌 온전하게 열반으로 이끄는 길[도관(導管)]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행(梵行)의 결실을 온전하게 거둘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범천의 세상 즉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높은 삶[소유에 수반되는 괴로움 없음]으로 이끄는 것은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는 깨달음 이전의 스승에 의해서도 가능하지만 해탈된 삶의 실현 즉 열반(涅槃)으로 직접 이끄는 가르침은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에 의해서만 안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 대한 불교의 입장도 이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참고] 자비(慈悲)는 불교에서 중요한 교리입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 사무량심(四無量心)[사범주(四梵住)]를 구성하는 요소이고, 내가 세상을 만나는 수단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비(慈悲)가 불교의 중심은 아닙니다. 세상을 만나기 이전에 나의 상태를 완성하는 것[무아(無我)]를 불교는 중심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중심은 팔정도(八正道)이고, 팔정도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을 포함하여 더 넓은 영역에 걸친 고멸(苦滅)의 길입니다.

 

그리고 팔정도(八正道)라는 전혀 새로운 길을 따라 아()에 적용된 참된 것이라는 설정을 깨뜨리고 오른 무아(無我)의 산()의 정상을 부처님은 열반(涅槃)[nibbāna]라고 이름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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