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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Ⅱ. 열반(涅槃)

0 621 2018.03.02 23:35

Ⅱ. 열반(涅槃)


그러면 열반(涅槃)은 무엇입니까? 열반은 몇 가지 형태로 정의됩니다.


①‘bhavanirodho nibbānan’’ti 존재의 소멸이 열반이다. ②taṇhākkhayo hi, rādha, nibbānan 갈애의 부숨이 열반이다. ③“yo kho, āvuso, 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 idaṃ vuccati nibbānan””ti. 탐(貪)의 부숨-진(嗔)의 부숨-치(癡)의 부숨, 이것이 열반이라 불린다. ④akaṇhaṃ asukkaṃ nibbānaṃ abhijāyati 희지도 검지도 않은 열반이 생겨난다.  


⇒ 첨부4-1. 「열반(涅槃)을 정의하는 경전들」 참조.


등으로 정의되는데, 생겨나는 과정의 불완전에 의한 불완전한 존재 상태[bhava-유(有)]에 수반되는 생(生)-노(老)-사(死)의 문제로부터 벗어남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열반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의 용례입니다. 여기서 taṇhākkhaya는 갈애의 부숨, virāga는 이탐(離貪), nirodha는 소멸(消滅), nibbāna는 열반(涅槃)인데, 주격으로 연결된 네 개의 단어는 열반(涅槃)을 중심으로 수식되어서 ‘갈애의 부숨[애멸(愛滅)]이고 이탐(離貪)이고 소멸(消滅)인 열반(涅槃)’으로 해석됩니다. 열반(涅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기본적 설명인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법들은 「갈애의 형성 또는 자기화 과정」인 takka의 이해를 통해 설명되는데, 그림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이때, 갈애의 부숨[애멸(愛滅)]은 염오(厭惡)와 연결됩니다. 염오(厭惡)[nibbida]는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인데 nandi를 생겨나지 않게 함으로써 갈애를 제거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소멸(消滅)은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불교수행의 완성은 누진통(漏盡通)[육신통(六神通)] 또는 누진명(漏盡明)[삼명(三明)]으로 제시됩니다.


그런데 갈애의 부숨[애멸(愛滅)] 즉 염오(厭惡)와 이탐(離貪)과 소멸(消滅)과 열반(涅槃)은 3가지의 관점에서 설명됩니다.


1) 열반(涅槃)은 갈애의 부숨[애멸(愛滅)] 즉 염오(厭惡)의 상태이고 이탐(離貪)의 상태이고 소멸(消滅)의 상태이다.


2) 열반(涅槃)이 실현되면 소멸(消滅)된 2차 인식에 의해 이탐(離貪)된 심(心)이 생겨남으로써 염오(厭惡)의 내적 행위를 통해 애멸(愛滅)의 상태 즉 청정한 심(心)[자기화하지 않은 심(心)]에 의한 해탈된 삶을 산다.


3) 열반(涅槃)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선 염오(厭惡)해야 하고, 염오(厭惡)의 유지를 위해 이탐(離貪)해야 하고, 이탐(離貪)의 유지를 위해 소멸(消滅)해야 한다. 염오(厭惡)하기 위해서는 ‘정념(正念)[사념처(四念處)] → 정정(正定) → 여실지견(如實知見)’의 과정이 필요하고, 이탐(離貪)의 과정은 사마타 수행이고, 소멸(消滅)의 과정은 위빳사나 수행이다.


열반[애멸-이탐-소멸].png

 

위의 그림은 3)의 경우를 표시한 것이고,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을 포함한 용례는 별도의 문서로 정리하였습니다. 


  ⇒ 첨부4-2.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의 용례」 참조


그런데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의 용례에 의하면 열반의 설명은 행(行)의 그침[saṅkhārasamatha]을 포함하여 좀 더 확장됩니다.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


;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즉 모든 행(行)들의 그침이고, 모든 재생을 초래하는 붙잡음을 놓음이고, 갈애의 부숨이고, 이탐(離貪)이고, 소멸(消滅)이고, 열반(涅槃)이다.」 


모든 행(行)들의 그침과 모든 움켜쥠을 놓음으로 확장되어 정의되는 열반은 고요하고 수승하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행(行)의 그침[saṅkhārasamatha]의 의미는 이해되어야 합니다.


행(行)의 그침[saṅkhārasamatha]은 심(心)의 가라앉음[cetaso vūpasama]과 들뜸[uddhacca]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되는데, ①무상(無常)의 게송과 ②오장(五章)과 칠각지(七覺支)의 자량(資糧)[āhara]의 측면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① 무상(無常)의 게송


“aniccā vata saṅkhārā, uppādavayadhammino.

uppajjitvā nirujjhanti, tesaṃ vūpasamo sukho”ti. 


참으로 행(行)들은 무상(無常)하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가진 것이고

일어남을 조건으로 소멸한다. 그들의 가라앉음이 락(樂)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 mahāparinibbānasuttaṃ, parinibbutakathā (DN 16.37)

• mahāsudassanasuttaṃ, brahmalokūpagamaṃ (DN 17.15)

• nandanasuttaṃ (SN 1.11) → [aniccā sabbasaṅkhārā]

• parinibbānasuttaṃ (SN 6.15)

• anuruddhasuttaṃ (SN 9.6) → [aniccā sabbasaṅkhārā]

• vepullapabbatasuttaṃ (SN 15.20)


② 오장(五章)과 칠각지(七覺支)의 자량(資糧) ㅡ āhārasuttaṃ(SN 46.51)[자량 경]


“ko ca, bhikkhave, āhāro anuppannassa vā uddhaccakukkucc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uddhaccakukkuccassa bhiyyobhāvāya vepullāya? atthi, bhikkhave, cetaso avūpasamo. tattha ayonisomanasikārabahulīkāro — ayamāhāro anuppannassa vā uddhaccakukkucc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uddhaccakukkuccassa bhiyyobhāvāya vepullāya.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일어나지 않은 들뜸-후회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들뜸-후회를 더욱 늘어나게 하고 가득하게 하는 자량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의 가라앉지 않음이 있다. 거기에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많이 행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들뜸-후회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들뜸-후회를 더욱 늘어나게 하고 가득하게 하는 자량이다.


“ko ca, bhikkhave, anāhāro anuppannassa vā uddhaccakukkucc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uddhaccakukkuccassa bhiyyobhāvāya vepullāya? atthi, bhikkhave, cetaso vūpasamo. tattha yonisomanasikārabahulīkāro — ayamanāhāro anuppannassa vā uddhaccakukkucc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uddhaccakukkuccassa bhiyyobhāvāya vepullāya.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일어나지 않은 들뜸-후회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들뜸-후회를 더욱 늘어나게 하고 가득하게 하는 자량 아님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의 가라앉음이 있다. 거기에 여리작의(如理作意)를 많이 행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들뜸-후회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들뜸-후회를 더욱 늘어나게 하고 가득하게 하는 자량 아님이다.


“ko ca, bhikkhave, āhāro anuppannassa vā samādhisambojjhaṅg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samā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iyā? atthi, bhikkhave, samathanimittaṃ abyagganimittaṃ. tattha yonisomanasikārabahulīkāro — ayamāhāro anuppannassa vā samādhisambojjhaṅg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samā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iyā.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일어나지 않은 정각지(定覺支)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정각지(定覺支)를 닦아서 완성하게 하는 자량인가? 비구들이여, 사마타의 상(相)과 부동(不動)의 상(相)이 있다. 거기에 여리작의(如理作意)를 많이 행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정각지(定覺支)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정각지(定覺支)를 닦아서 완성하게 하는 자량이다.


“ko ca, bhikkhave, anāhāro anuppannassa vā samādhisambojjhaṅg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samā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iyā? atthi, bhikkhave, samathanimittaṃ abyagganimittaṃ. tattha amanasikārabahulīkāro — ayamanāhāro anuppannassa vā samādhisambojjhaṅg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samā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iyā.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일어나지 않은 정각지(定覺支)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정각지(定覺支)를 닦아서 완성하게 하는 자량 아님인가? 비구들이여, 사마타의 상(相)과 부동(不動)의 상(相)이 있다. 거기에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많이 행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정각지(定覺支)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정각지(定覺支)를 닦아서 완성하게 하는 자량 아님이다.


①과 ②는 vūpasama를 매개로 연결됩니다. 존재 일반에게서는 무상(無常) 즉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이 있어서 일어남을 조건으로 소멸하는 것인 행(行)들의 가라앉음이 락(樂) 즉 열반(涅槃)인데, 존재[유(有)-bhava]에게서는 심(心)의 가라앉지 않음을 조건으로 들뜸이 있고 심(心)의 가라앉음을 조건으로 들뜸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行)의 특성을 배제하고 열반으로 이끄는 것이 가라앉음[vūpasama]인데 이것이 존재[유(有)-bhava]의 삶에서는 들뜸의 배제를 위한 방법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들뜸 경(A6:116)[Uddhaccasutta]은 들뜸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사마타를 닦아야 한다[uddhaccassa pahānāya samatho bhāvetabbo]고 하여 사마타가 바로 심(心)의 가라앉힘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이라고 알려줍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위의 그림을 보면 사마타는 사념처에 의한 염오(厭惡)의 유지를 위한 이탐(離貪)의 과정입니다. 사마타에 의해 심(心)을 가라앉힌다는 것은 염오(厭惡) 즉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으로써 nandi를 소멸하여 갈애를 부수는 과정의 유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들뜸의 배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뜸은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음에 의해 nandi를 생기게 하여 갈애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마타는 무엇입니까? 사마타는 위빳사나와 함께 알려지는 것인데, 명(明)과 연결됨 경(A2:3:10)[Vijjābhāgiya-sutta]에 의하면, 사마타를 닦으면 심(心)이 개발되고 탐(貪)이 버려져[이탐(離貪)] 심해탈(心解脫)하고, 위빳사나를 닦으면 혜(慧)가 개발되고 무명(無明)이 버려져[소멸(消滅)] 혜해탈(慧解脫)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 즉 들뜸은,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심(心)의 행위 과정입니다. 이에 비해 심(心)의 가라앉음[cetaso vūpasama]은 심(心)의 형성 과정[심행(心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심(心)의 행위 과정의 문제를 염오(厭惡)하여 완전히 제어-단속하였다면 그 유지를 위해서는 심(心)의 형성 과정의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함께 제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반을 정의하는 확장된 개념인 sabbasaṅkhārasamatho는 사마타-위빳사나에 의해 심(心)의 형성과정의 문제[번뇌 → 무명(無明)과 탐(貪)]를 해소[누진(漏盡)]하여 사념처에 의한 들뜸의 제어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이렇게 해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열반입니다. 심(心)의 형성과정의 모든 문제가 해소되어 더는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 수반되는 불만족에 떨어지지 않게 된 완성의 경지입니다. 무상(無常)한 행(行)을 가라앉혀서 행(行)의 특성에서 벗어난 것으로의 열반이 생겨난 것인데, 이에 따라 존재하는 것은 행(行)과 열반을 더한 법(法)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담아 삼법인(三法印)으로 깨달음은 선언됩니다. 


‘sabbe saṅkhārā aniccā’ ‘sabbe saṅkhārā dukkhā’ ‘sabbe dhammā anattā’


제행무상(諸行無常)-제행개고(諸行皆苦)-제법무아(諸法無我)


이렇게 해서 깨달음은 열반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산물(産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열반이 바로 그것이라고 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반은 중생의 영역에서 경험되는 것과는 다른 락(樂)입니다!


※ 1. 열반(涅槃)은 락(樂)이라고 말하는 경전들


    1) nibbānasukhasuttaṃ (AN 9.34)[열반 경]

    2) aniccānupassīsuttaṃ (AN 7.16)[무상(無常)을 이어 봄 경] 

       - dukkhānupassīsuttaṃ (AN 7.17)[고(苦)를 이어 봄 경] 

       - anattānupassīsuttaṃ (AN 7.18)[무아(無我)를 이어 봄 경]

       - nibbānasuttaṃ (AN 7.19)[열반 경]

       의 연계된 설명


  2. 중생의 영역에서 경험되는 것과는 다른 락(樂)이라고 알려주는 경전들


    1) bahuvedanīyasuttaṃ (MN 59)[많은 경험 경]

    2) pañcakaṅgasuttaṃ (SN 36.19)[빤짜깡가 경]

    3) bhikkhusuttaṃ (SN 36.20)[비구 경]


• 들뜸 경(A6:116)[Uddhaccasutta]


“Tayome, bhikkhave, dhammā. Katame tayo? Uddhaccaṃ, asaṃvaro, pamādo. Ime kho, bhikkhave, tayo dhammā. Imesaṃ kho, bhikkhave, tiṇṇaṃ dhammānaṃ pahānāya tayo dhammā bhāvetabbā. Katame tayo? Uddhaccassa pahānāya samatho bhāvetabbo, asaṃvarassa pahānāya saṃvaro bhāvetabbo, pamādassa pahānāya appamādo bhāvetabbo. Imesaṃ kho, bhikkhave, tiṇṇaṃ dhammānaṃ pahānāya ime tayo dhammā bhāvetabbā”ti.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들뜸, 단속하지 못함, 방일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닦아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들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사마타를 닦아야 한다. 단속하지 못함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단속함을 닦아야 한다. 방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방일하지 않음[不放逸]을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닦아야 한다." 


• 명(明)과 연결됨 경(A2:3:10)[Vijjābhāgiya-sutta]


“Dve me, bhikkhave, dhammā vijjābhāgiyā. Katame dve?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은 명(明)과 연결된다. 무엇이 둘인가? 


Samatho ca vipassanā ca. 사마타와 위빳사나이다.


Samatho, bhikkhave, bhāvito kamatthamanubhoti? Cittaṃ bhāvīyati. Cittaṃ bhāvitaṃ kamatthamanubhoti? Yo rāgo so pahīyati.


비구들이여, 사마타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심(心)이 개발된다. 심(心)이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탐(貪)이 버려진다. 


Vipassanā, bhikkhave, bhāvitā kamatthamanubhoti? Paññā bhāvīyati. Paññā bhāvitā kamatthamanubhoti? Yā avijjā sā pahīyati. 


비구들이여, 위빳사나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지혜가 개발된다. 지혜가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무명이 버려진다."


Rāgupakkiliṭṭhaṃ vā, bhikkhave, cittaṃ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vā paññā na bhāvīyati. Iti kho, bhikkhave, rāgavirāgā cetovimutti, avijjāvirāgā paññāvimuttī”ti. 


탐(貪)에 오염된 심(心)은 해탈하지 못하고 무명(無明)에 오염된 지혜는 개발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탐(貪)의 빛바램[이탐(離貪)]으로부터 심해탈(心解脫)하고, 무명(無明)의 빛바램으로부터 혜해탈(慧解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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