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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참고] 유여열반(有餘涅槃)[saupādisesanibbāna]과 무여열반(無餘涅槃)[anupādisesa nibbā…

0 1,073 2018.03.02 23:37

[참고] 유여열반(有餘涅槃)[saupādisesanibbāna]과 무여열반(無餘涅槃)[anupādisesa nibbāna]

 

[아비담마불교의 열반관] 열반개념의 연속과 불연속(조준호) 7~8

 

초기경전 가운데 열반이 두 종류로 나오는 곳은 많지 않다. 빠알리 경전을 중심으로 볼 때 두 종류의 열반은 15개의 초기와 후기층의 경전이 뒤섞여 있는 Khuddaka NikāyaItivuttaka의 작은 경 하나에서 최초로 유여열반(有餘涅槃 : saupādisesanibbāna)과 무여열반(無餘涅槃 : anupādisesanibbāna)이 대비적으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upādi12연기의 아홉 번째 지분인 upādāna()와 동의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취의 잔여(sesa)를 함께(sa-)하느냐 그렇지 않느냐(an-)에 두 가지 열반은 구분된다. 때문에 유여열반은 열반을 성취했으되 아직 집착이 남아있는 열반이고, 무여열반은 집착이 남아있지 않은 열반의 뜻으로 해석한다. 이는 열반이라는 궁극적 경지에 있어서조차 두 종류 또는 두 단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으며 용어상으로 보면 유여열반보다는 무여열반이 더 완전한 그리고 높은 열반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열반을 설명하는 초기불교 전체 맥락에서 보면 대단히 이질적이다. 초기경전의 전반에 걸쳐 두 종류 또는 두 단계의 열반은 전혀 시사되어 있지 않다.

 

조준호 교수의 지적처럼 근본경전연구회의 공부 기준 안에서 유여열반(有餘涅槃 : saupādisesanibbāna)과 무여열반(無餘涅槃 : anupādisesanibbāna)이란 용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열반[nibbāna]-반열반[parinibbāna]-일시적 열반 [tadaṅganibbāna]-지금여기의 열반[diṭṭhadhammanibbāna]-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anupādā parinibbāna] 등이 나타나는데 유여(有餘)와 무여(無餘)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만, 무여열반(無餘涅槃 : anupādisesanibbāna)과 의미가 연결되는 표현으로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가 몇 개의 경전에서 발견되는데, 대반열반경(D16), pāsādikasuttaṃ (DN 29), lokasuttaṃ (AN 4.23), saṃvejanīyasuttaṃ (AN 4.118), pahārādasuttaṃ (AN 8.19), bhūmicālasuttaṃ (AN 8.70) 등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유여(有餘)와 무여(無餘)의 비교되는 열반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열반의 상태가 무여(無餘)라는 것을 알려줄 뿐입니다. 그리고 유여(有餘)[saupādisesa] tissabrahmāsuttaṃ (AN 7.56)saupādisesasuttaṃ (AN 9.12)[남음 있음 경]에서 무여(無餘)[anupādisesa]와 함께 나타나는데,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와 혜해탈자(慧解脫者)인 아라한[무학(無學)]에 대해 적용하는 무여(無餘)[anupādisesa]와 차별하여 불환자(不還者) 이하의 성자들[유학(有學)]에게 적용하여 나타납니다.

 

특히, 유여(有餘)[saupādisesa]가 무여(無餘)[anupādisesa]와 함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로 sunakkhattasuttaṃ (MN 105)과 숫따니빠따의 nigrodhakappasuttaṃ (KN 5.24)이 있습니다. sunakkhattasuttaṃ에서 이 용어는 독화살을 맞은 사람의 치유과정에서 화살을 뽑아내고 독기를 제거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흔적을 지시합니다. 그래서 남아있는 흔적까지 완전히 치유하기 위한 처방이 제시됩니다. 이때, 처방에 따라 남아있는 흔적의 완전한 치유를 마친 자는 괴로움을 겪지 않게 되지만 처방에 따르지 않아 남아있는 흔적의 완전한 치유에 실패한 사람은 다시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십지연기(十支緣起)와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측면에서 이해.

 

그리고 nigrodhakappasuttaṃ356게송은

 

yadatthikaṃ brahmacariyaṃ acarī, kappāyano kaccissa taṃ amoghaṃ.

nibbāyi so ādu saupādiseso, yathā vimutto ahu taṃ suṇoma

 

범행(梵行)을 추구한 자인 깝빠의 길은 누구에게든 헛된 것은 아닙니까?

그는 열반에 들었습니까 아니면 남은 것[유여(有餘)]가 있습니까? 해탈한 자였는지에 대해 그것을 우리는 듣고자 합니다.

 

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유여(有餘)는 열반을 실현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후대의 문헌들은 유여열반(有餘涅槃)을 아라한이 이 몸으로 살아있는 동안의 열반이라 하고.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아라한의 사후에 몸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음을 통해 얻어지는 열반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경전과 다릅니다. sunakkhattasuttaṃ이 지시하는 유여(有餘)의 의미가 적용되면, 자칫 아라한이 다시 괴로움의 영역 즉 중생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오류를 빚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유여열반(有餘涅槃)을 말하는 후대의 문헌은 근본경전연구회의 공부 기준과 교리적 충돌을 빚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 경전들은 dvinnaṃ phalānaṃ aññataraṃ phalaṃ pāṭikaṅkhaṃ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으니 지금여기서 무위(無爲)의 앎을 얻거나 집착이 남아있으면 불환자의 상태이다]라고 하는데, ‘sati vā upādisese’집착이 있을 때의 의미여서 유여(有餘)[saupādisesa]와 같은 서술입니다.

 

즉 아라한에게 유여(有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단계 지어진 열반의 개념과 다른, 아라한을 대상으로 하는 유여열반(有餘涅槃)은 적절한 용어가 아닌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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