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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주제8-1. 완전한 지혜 & 완전한 열반의 선언

0 1,046 2018.03.04 00:22

주제8-1. 완전한 지혜 & 완전한 열반의 선언


매력(魅力)-위험(危險)-해방(解放)[assāda-ādīnava-nissaraṇa]는 깨달음의 선언을 위해 가장 많이 제시되는 토대입니다. 더욱이 일어남-사라짐을 포함하면 15개의 용례 중 9개를 차지합니다. 그렇다면 매력(魅力)-위험(危險)-해방(解放)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실다운 앎은 부처님에게서 깨달음의 성취를 위한 과정의 중심이 됩니다. 어떤 것을 조건으로 생기는 즐거움과 만족이 그것의 매력(魅力)이고, 그것이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이라는 것이 위험(危險)이고, 그것에 대한 욕탐(欲貪)의 제어와 욕탐(欲貪)의 버림이 그것의 해방(解放)이라고 있는 그대로 실답게 알았을 때 비로소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고 선언함으로써 깨달음의 성취를 위한 과정의 본질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때, mahādukkhakkhandhasuttaṃ (MN 13)[괴로움 덩어리 큰 경]과 cūḷadukkhakkhandhasuttaṃ (MN 14)[괴로움 덩어리 작은 경]은 매력(魅力)-위험(危險)-해방(解放)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parijānāti → 완전한 앎].
 

욕-색-수의 매력-위험-해방.png

 


깨달음에 대한 이런 이해는 paṭhamakosalasuttaṃ (AN 10.29)[꼬살라 경1]에서 확인되는데, 욕(慾)의 완전한 지혜와 색(色)의 완전한 지혜와 수(受)의 완전한 지혜의 선언입니다. 


「kāmānañcāhaṃ, bhikkhave, pariññaṃ paññāpemi, rūpānañca pariññaṃ paññāpemi, vedanānañca pariññaṃ paññāpemi,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ibhūto anupādā parinibbānaṃ paññāpemī””ti.


비구들이여, 나는 소유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하고, 색(色)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하고, 수(受)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한다. 지금여기에서 갈망이 없고 꺼졌고 고요하고 집착이 없어서 완전한 열반을 선언한다.」


paṭhamakosalasuttaṃ (AN 10.29)[꼬살라 경1]


“yāvatā, bhikkhave, kāsikosalā, yāvatā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vijitaṃ, rājā tattha pasenadi kosalo aggamakkhāyati. raññopi kho, bhikkhave, pasenadissa kosalassa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까시와 꼬살라에 속한 것들에 관한 한, 그리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왕국에 관한 한 거기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으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도 변화가 있고 달라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厭惡)한다. 그것을 염오할 때 으뜸된 것에 대해 이탐(離貪)하니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yāvatā, bhikkhave, candimasūriyā pariharanti disā bhanti virocamānā, tāva sahassadhā loko. tasmiṃ sahassadhā loke sahassaṃ candānaṃ sahassaṃ sūriyānaṃ sahassaṃ sinerupabbatarājānaṃ sahassaṃ jambudīpānaṃ sahassaṃ aparagoyānānaṃ sahassaṃ uttarakurūnaṃ sahassaṃ pubbavidehānaṃ cattāri mahāsamuddasahassāni cattāri mahārājasahassāni sahassaṃ cātumahārājikānaṃ sahassaṃ tāvatiṃsānaṃ sahassaṃ yāmānaṃ sahassaṃ tusitānaṃ sahassaṃ nimmānaratīnaṃ sahassaṃ paranimmitavasavattīnaṃ sahassaṃ brahmalokānaṃ. yāvatā, bhikkhave, sahassī lokadhātu, mahābrahmā tattha aggamakkhāyati. mahābrahmunopi kho, bhikkhave,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달과 태양이 돌면서 사방을 비추는 것 만큼에 해당하는 천차만별(千差萬別)한 세상이 있다. 그러한 천차만별한 세상에 천의 달과 천의 태양과 천의 산왕(山王)인 수미산과 천의 잠부디빠와 천의 아빠라고야나와 천의 웃따라꾸루와 천의 뿝빠위데하와 사천의 큰 바다와 사천의 대왕과 천의 사대왕천과 천의 삼십삼천과 천의 야마천과 천의 도솔천과 천의 화락천과 천의 타화자재천과 천의 범천의 세상이 있다. 비구들이여, 천의 세계에 관한 한 대범천이 으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대범천에게도 변화가 있고 달라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厭惡)한다. 그것을 염오할 때 으뜸된 것에 대해 이탐(離貪)하니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hoti so, bhikkhave, samayo yaṃ ayaṃ loko saṃvaṭṭati. saṃvaṭṭamāne, bhikkhave, loke yebhuyyena sattā ābhassarasaṃvattanikā bhavanti. te tatt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ṃpabhā antalikkhe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ṃ dīghamaddhānaṃ tiṭṭhanti. saṃvaṭṭamāne, bhikkhave, loke ābhassarā devā aggamakkhāyanti. ābhassarānampi kho, bhikkhave, devānaṃ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세상이 수축하는 그런 때가 온다. 비구들이여, 세상이 수축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의성(意成)]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하고 오랜 세월을 머문다. 비구들이여, 세상이 수축할 때 광음천의 신들이 으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광음천의 신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달라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厭惡)한다. 그것을 염오할 때 으뜸된 것에 대해 이탐(離貪)하니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dasayimāni, bhikkhave, kasiṇāyatanāni. katamāni dasa? pathavīkasiṇameko sañjānāti uddhaṃ 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āpokasiṇameko sañjānāti ... pe ... tejokasiṇameko sañjānāti... vāyokasiṇameko sañjānāti... nīlakasiṇameko sañjānāti... pītakasiṇameko sañjānāti... lohitakasiṇameko sañjānāti... odātakasiṇameko sañjānāti... ākāsakasiṇameko sañjānāti... viññāṇakasiṇameko sañjānāti uddhaṃ 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imāni kho, bhikkhave, dasa kasiṇāyatanāni.


비구들이여, 열 가지 까시나의 토대가 있다. 무엇이 열인가?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땅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 물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 불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 바람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 파란색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 노란색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 빨간색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 흰색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 공간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식(識)의 까시나를 상(想)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까시나의 토대가 있다


“etadaggaṃ, bhikkhave, imesaṃ dasannaṃ kasiṇāyatanānaṃ yadidaṃ viññāṇakasiṇaṃ eko sañjānāti uddhaṃ 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evaṃsaññinopi kho, bhikkhave, santi sattā. evaṃsaññīnampi kho, bhikkhave, sattānaṃ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까시나의 토대 가운데 어떤 자가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식(識)의 까시나를 상(想)하는 그것이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러한 상(想)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상(想)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달라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厭惡)한다. 그것을 염오할 때 으뜸된 것에 대해 이탐(離貪)하니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aṭṭhimāni, bhikkhave, abhibhāyatanāni. katamāni aṭṭha? ajjhattaṃ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paṭhamaṃ abhibhāyatanaṃ.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팔승처(八勝處)]가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①어떤 자는 안으로 색상(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제한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appamāṇ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dutiyaṃ abhibhāyatanaṃ.


②어떤 자는 안으로 색상(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무량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두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tatiyaṃ abhibhāyatanaṃ.


③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제한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세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appamāṇ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catutthaṃ abhibhāyatanaṃ.


④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무량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네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umāpupphaṃ nīlaṃ nīlavaṇṇaṃ nīlanidassanaṃ nīlanibhāsaṃ,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nīlaṃ nīlavaṇṇaṃ nīlanidassanaṃ nīlanibhāsaṃ; evamevaṃ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pañcamaṃ abhibhāyatanaṃ.


⑤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푸르고 푸른 색깔을 가졌고 푸른 외양을 가졌고 푸른 광명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마치 아마 꽃이 푸르고 푸른 색깔을 가졌고 푸른 외양을 가졌고 푸른 광명을 가진 것처럼, 마치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이 푸르고 푸른 색깔을 가졌고 푸른 외양을 가졌고 푸른 광명을 가진 것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푸르고 푸른 색깔을 가졌고 푸른 외양을 가졌고 푸른 광명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kaṇikārapupphaṃ pītaṃ pītavaṇṇaṃ pītanidassanaṃ pītanibhāsaṃ,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pītaṃ pītavaṇṇaṃ pītanidassanaṃ pītanibhāsaṃ; evamevaṃ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chaṭṭhaṃ abhibhāyatanaṃ.


⑥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노랗고 노란 색깔을 가졌고 노란 외양을 가졌고 노란 광명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마치 깐니까라 꽃이 노랗고 노란 색깔을 가졌고 노란 외양을 가졌고 노란 광명을 가진 것처럼, 마치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이 노랗고 노란 색깔을 가졌고 노란 외양을 가졌고 노란 광명을 가진 것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노랗고 노란 색깔을 가졌고 노란 외양을 가졌고 노란 광명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여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bandhujīvakapupphaṃ lohitakaṃ lohitakavaṇṇaṃ lohitakanidassanaṃ lohitakanibhāsaṃ,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lohitakaṃ lohitakavaṇṇaṃ lohitakanidassanaṃ lohitakanibhāsaṃ; evamevaṃ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sattamaṃ abhibhāyatanaṃ.


⑦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빨갛고 빨간 색깔을 가졌고 빨간 외양을 가졌고 빨간 광명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마치 월계꽃이 빨갛고 빨간 색깔을 가졌고 빨간 외양을 가졌고 빨간 광명을 가진 것처럼, 마치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이 빨갛고 빨간 색깔을 가졌고 빨간 외양을 가졌고 빨간 광명을 가진 것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빨갛고 빨간 색깔을 가졌고 빨간 외양을 가졌고 빨간 광명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일곱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osadhitārakā odātā odātavaṇṇā odātanidassanā odātanibhāsā,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odātaṃ odātavaṇṇaṃ odātanidassanaṃ odātanibhāsaṃ; evamevaṃ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aṭṭhamaṃ abhibhāyatanaṃ. imāni kho, bhikkhave, aṭṭha abhibhāyatanāni.


⑧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희고 흰 색깔을 가졌고 흰 외양을 가졌고 흰 광명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마치 샛별이 희고 흰 색깔을 가졌고 흰 외양을 가졌고 흰 광명을 가진 것처럼, 마치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이 희고 흰 색깔을 가졌고 흰 외양을 가졌고 흰 광명을 가진 것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희고 흰 색깔을 가졌고 흰 외양을 가졌고 흰 광명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여덟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팔승처(八勝處)]가 있다.”


“etadaggaṃ, bhikkhave, imesaṃ aṭṭhannaṃ abhibhāyatanānaṃ yadidaṃ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evaṃsaññinopi kho, bhikkhave, santi sattā. evaṃsaññīnampi kho, bhikkhave, sattānaṃ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팔승처(八勝處)] 가운데 어떤 자가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희고 흰 색깔을 가졌고 흰 외양을 가졌고 흰 광명을 가진 색(色)들을 보는 그것이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러한 상(想)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상(想)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달라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厭惡)한다. 그것을 염오할 때 으뜸된 것에 대해 이탐(離貪)하니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catasso imā, bhikkhave, paṭipadā. katamā catasso? dukkhā paṭipadā dandhābhiññā, duk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sukhā paṭipadā dandhābhiññā, su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 imā kho, bhikkhave, catasso paṭipadā.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실천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괴롭고 실다운 지혜가 느린 실천, 괴롭고 실다운 지혜가 빠른 실천, 즐겁고 실다운 지혜가 느린 실천, 즐겁고 실다운 지혜가 빠른 실천 ㅡ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실천이 있다.


“etadaggaṃ, bhikkhave, imāsaṃ catunnaṃ paṭipadānaṃ yadidaṃ su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evaṃpaṭipannāpi kho, bhikkhave, santi sattā. evaṃpaṭipannānampi kho, bhikkhave, sattānaṃ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실천 가운데 즐겁고 실다운 지혜가 빠른 실천이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실천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런 실천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달라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厭惡)한다. 그것을 염오할 때 으뜸된 것에 대해 이탐(離貪)하니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catasso imā, bhikkhave, saññā. katamā catasso? parittameko sañjānāti, mahaggatameko sañjānāti, appamāṇameko sañjānāti,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meko sañjānāti — imā kho, bhikkhave, catasso saññā.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상(想)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어떤 자는 제한된 것을 상(想)한다. 어떤 자는 고귀한 것을 상(想)한다. 어떤 자는 무량한 것을 상(想)한다. 어떤 자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를 상(想)한다. ㅡ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상(想)이 있다.


“etadaggaṃ, bhikkhave, imāsaṃ catunnaṃ saññānaṃ yadidaṃ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meko sañjānāti. evaṃsaññinopi kho, bhikkhave, santi sattā. evaṃsaññīnampi kho, bhikkhave, sattānaṃ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상(想) 가운데 어떤 자가 '아무 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를 상(想)하는 것이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상(想)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런 상(想)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달라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厭惡)한다. 그것을 염오할 때 으뜸된 것에 대해 이탐(離貪)하니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etadaggaṃ, bhikkhave, bāhirakānaṃ diṭṭhigatānaṃ yadidaṃ ‘no cassaṃ, no ca me siyā, na bhavissāmi, na me bhavissatī’ti. evaṃdiṭṭhino, bhikkhave, etaṃ pāṭikaṅkhaṃ — ‘yā cāyaṃ bhave appaṭikulyatā, sā cassa na bhavissati; yā cāyaṃ bhavanirodhe pāṭikulyatā, sā cassa na bhavissatī’ti. evaṃdiṭṭhinopi kho, bhikkhave, santi sattā. evaṃdiṭṭhīnampi kho, bhikkhave, sattānaṃ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외도들의 견해들 가운데는 '내가 있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있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있지 않을 것이라면 나의 것도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것이 으뜸이다. 이런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ㅡ ‘존재에 대해 혐오하지 않음도 그에게는 생기지 않을 것이고, 존재의 소멸에 대해 혐오함도 그에게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견해를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런 견해를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달라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厭惡)한다. 그것을 염오할 때 으뜸된 것에 대해 이탐(離貪)하니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paramatthavisuddhiṃ paññāpenti. etadaggaṃ, bhikkhave, paramatthavisuddhiṃ paññāpentānaṃ yadidaṃ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te tadabhiññāya tassa sacchikiriyāya dhammaṃ desenti. evaṃvādinopi kho, bhikkhave, santi sattā. evaṃvādīnampi kho, bhikkhave, sattānaṃ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궁극적인 의미의 청정을 선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궁극적인 의미의 청정을 선언하는 자들 가운데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무는 자가 으뜸이다. 그들은 그것을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한 뒤 법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교설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교설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달라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厭惡)한다. 그것을 염오할 때 으뜸된 것에 대해 이탐(離貪)하니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ṃ paññāpenti. etadaggaṃ, bhikkhave, 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ṃ paññāpentānaṃ yadidaṃ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anupādā vimokkho. evaṃvādiṃ kho maṃ, bhikkhave, evamakkhāyiṃ eke samaṇabrāhmaṇā asatā tucchā musā abhūtena abbhācikkhanti — ‘samaṇo gotamo na kāmānaṃ pariññaṃ paññāpeti, na rūpānaṃ pariññaṃ paññāpeti, na vedanānaṃ pariññaṃ paññāpetī’ti. kāmānañcāhaṃ, bhikkhave, pariññaṃ paññāpemi, rūpānañca pariññaṃ paññāpemi, vedanānañca pariññaṃ paññāpemi,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ibhūto anupādā parinibbānaṃ paññāpemī””ti.


비구들이여, 구경(究竟)의 지금여기의 열반을 선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구경(究竟)의 지금여기의 열반을 선언하는 자들 가운데 육촉처(六觸處)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매력(魅力)과 위험(危險)과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 없이 해탈한 자가 으뜸이다. 이런 교설을 가졌고 이렇게 설명하는 나를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근거 없고 헛되고 거짓이고 사실 아닌 것으로 비방한다. ㅡ '사문 고따마는 소유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하지 못하고, 색(色)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하지 못하고, 수(受)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하지 못한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나 나는 소유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하고, 색(色)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하고, 수(受)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한다. 지금여기에서 갈망이 없고 꺼졌고 고요하고 집착이 없어서 완전한 열반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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