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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중(中)으로 설해진 법(法)으로의 십이연기(十二緣起)】

0 680 2018.02.24 13:30

【중(中)으로 설해진 법(法)으로의 십이연기(十二緣起)】


부처님은 양 끝에 접근하지 않고 중(中)으로 법을 설하는데, 십이연기(十二緣起)입니다. 이때, 중(中)에 의해서 설해진 법이 십이연기인지, 십이연기 자체가 중(中)인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단견(斷見)도 하나의 끝이고, 상견(常見)도 하나의 끝이라는 상황에서 중(中)의 개념으로 십이연기가 설해진 점에서 십이연기 자체가 중(中)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사실 고멸도(苦滅道)가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인 중도(中道)[majjhimā paṭipadā]인 것을 감안하면 고집(苦集)으로의 십이연기(十二緣起)가 중(中)인 것은 당연합니다. 고집(苦集) 즉 괴로움의 원인 또는 발생 과정이 중(中)이므로 고멸(苦滅)의 실현을 위해 그 중(中)을 제거하는 길인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이 중도(中道)인 것입니다. 그럴 때 고집(苦集)인 중(中)은 고(苦)를 만들고 고멸도(苦滅道)인 중도(中道)는 고멸(苦滅)을 만든다는 논리로서 사성제(四聖諦)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 중(中)의 구체적 의미 → 「삶의 중심(中心)을 꿰는 가르침」 - 36.ⅲ쪽 참조]


   • 고집(苦集)[애(愛) 또는 십이연기(十二緣起)] → 고(苦)

   • 고멸도(苦滅道)[중도(中道) 즉 팔정도(八正道)의 실천] → 고멸(苦滅)


이럴 때 십이연기는 단견(斷見)도 상견(常見)도 극복한 무아(無我)적인 윤회(輪廻)를 설명해 줍니다. 연기(緣起)하는 식(識)의 윤회입니다. 


ete te 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ṃ deseti — ‘avijjāpaccayā, bhikkhave,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viññāṇanirodhā nāmarūpanirodho; nāmarūpanirodhā saḷāyatananirodho; saḷāyatananirodhā phassanirodho;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 vedanānirodhā taṇhānirodho; taṇhānirodhā upādānanirodho; upādānanirodhā bhavanirodho; bhavanirodhā jātinirodho; jātinirodh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nirujjh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이러한 양 끝에 접근하지 않고 중(中)으로 여래는 법을 설한다. ㅡ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行)이, 행(行)을 조건으로 식(識)이, 식(識)을 조건으로 명색(名色)이,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육입(六入)이, 육입(六入)을 조건으로 촉(觸)이, 촉(觸)을 조건으로 수(受)가, 수(受)를 조건으로 애(愛)가, 애(愛)를 조건으로 취(取)가, 취(取)를 조건으로 유(有)가, 유(有)를 조건으로 생(生)이, 생(生)을 조건으로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일어남이 있다. 그러나 무명(無明)의 남김없이 빛바랜 소멸에서 행(行)의 소멸이, 행(行)의 소멸에서 식(識)의 소멸이, 식(識)의 소멸에서 명색(名色)의 소멸이, 명색(名色)의 소멸에서 육입(六入)의 소멸이, 육입(六入)의 소멸에서 촉(觸)의 소멸이, 촉(觸)의 소멸에서 수(受)의 소멸이, 수(受)의 소멸에서 애(愛)의 소멸이, 애(愛)의 소멸에서 취(取)의 소멸이, 취(取)의 소멸에서 유(有)의 소멸이, 유(有)의 소멸에서 생(生)의 소멸이, 생(生)의 소멸에서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소멸이 있다.”


● 경전 용례 

 

kaccānagottasuttaṃ

(SN 12.15)

[깟짜나곳따 경]

1. 모든 것은 있다 () - 상견(常見)

2. 모든 것은 없다 () - 단견(斷見)

acelakassapasuttaṃ

(SN 12.17)

[나체 수행자 깟사빠 경]

1. 그가 짓고 그가 경험 한다 - 괴로움은 스스로 짓는 것이다. 영원주의[상견(常見)]

2. 남이 짓고 남이 경험 한다 - 괴로움은 남이 짓는 것이다. - 허무주의[단견(斷見)]

timbarukasuttaṃ

(SN 12.18)

[띰바루까 경]

1. 그가 수()하고 그가 경험 한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 짓는 것이다 영원주의[상견(常見)]

2. 남이 수()하고 남이 경험 한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짓는 것이다 - 허무주의[단견(斷見)]

avijjāpaccayasuttaṃ (SN 12.35)

[무명을 조건 함 경]

1. ‘생명이 바로 몸이다.’라는 견해

2. ‘생명과 몸은 다르다라는 견해

dutiyāvijjāpaccayasuttaṃ (SN 12.36)

[무명을 조건함 경2]

1. ‘생명이 바로 몸이다.’라는 견해

2. ‘생명과 몸은 다르다라는 견해

aññatarabrāhmaṇasuttaṃ (SN 12.46)

[어떤 바라문 경]

1. 그가 짓고 그가 경험한다.

2.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경험한다.

jāṇussoṇisuttaṃ

(SN 12.47)[자눗소니 경]

1. 모든 것은 있다 () - 상견(常見)

2. 모든 것은 없다 () - 단견(斷見)

lokāyatikasuttaṃ

(SN 12.48)

[세상의 이치에 능통한 자 경]

1. 모든 것은 있다. 2. 모든 것은 없다.’

3. 모든 것은 단일하다. 4. 모든 것은 다양하다.

(*)순세(順世)[세상에 순응함]

channasuttaṃ

(SN 22.90)[찬나 경]

1. 모든 것은 있다 () - 상견(常見)

2. 모든 것은 없다 () - 단견(斷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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