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불교의사회 250908) 제1~4장 대의 & 제5장 신행-향상하는 삶 1)[(SN 15.1-풀과 나무토막 경) ‒ 단(斷)-상(常)을 극복한 연기(緣起)](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ecxkZIIZ4s
『초기불교 경전백선 독송집』 1~3장의 대의를 짚어보았습니다. 제4장은 ‘분석–용어 정의’인데, 주요 교리에 포함되는 용어들에 대한 부처님의 정의라는 개요를 소개한 뒤 「제5장 신행 – 향상하는 삶」으로 들어갔습니다. 신행의 근본은 윤회하는 중생으로의 나에 대한 바른 시각인데,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입니다. 그리고 옮겨가고 윤회한다면, 힌두교와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식이 몸으로 가는 현상’을 경이 직접 알려주는데, 재육화(再肉化)란 개념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불교를 잠식한 단견 특히 뇌과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설명하였습니다.
3년여 기간에 『초기불교 경전백선 독송집』 제1장 ~ 제3장을 공부하였는데, 대의를 짚어보았습니다. 제4장은 ‘분석 – 용어 정의’인데, 주요 교리에 포함되는 용어들에 대한 부처님의 정의입니다.
「제4장 분석 – 용어 정의」는 인간의 언어로 깨달음을 들어내기 위한 부처님의 용어 정의인데, 분석 경(vibhaṅgasuttaṃ)을 중심으로 발견됩니다. 깨달음의 경지 또는 그 과정을 인간의 언어에 의미를 추가 부여함으로써 이끄는 것인데, 이 정의에 충실하게 따르지 않으면 바르게 공부의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명색(名色)의 명(名)에 대한 정의의 변질은 후대에 연기의 해석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래서 니까야를 공부하면서도 단멸론자가 되는 경우도 발견됩니다.
제4장은 이 정도로 개요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치고 「제5장 신행 – 향상하는 삶」으로 들어갔습니다. ― ‘최상위 개념 = 고(苦)와 고멸(苦滅)’
첫 번째 경은 (SN 15.1-풀과 나무토막 경)인데, 신행의 근본은 윤회하는 중생으로의 나에 대한 바른 시각입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4&wr_id=3
; “비구들이여, 윤회(輪迴)는 시작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처음 시작점은 알려지지 않는다.”
; 중생 ― ‘나는 누구인가?’ ―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
(SN 12.19-우현(愚賢) 경)은 무명과 애를 해소하지 못하고 몸이 무너지면 몸으로 가고, 해소하고 몸이 무너지면 몸으로 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19
이때, 무명과 애는 윤회의 시작점을 볼 수 없게 하는 방해물입니다.
한편, 이 경은 번역이 어려운데, 기존의 번역으로는 어머니들 즉 인류의 역사로 이해되게 하는데, DNA 윤회라는 오해를 초래하게 됩니다.
[질문] 옮겨가고 윤회한다면, 힌두교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대답 1] 재육화와 재생에 대한 고찰 ― (식이) 몸으로 간다고 경이 직접 알려주는데, 재육화란 개념을 거부할 필요 없음
; 「윤회 특강(부산 9) 힌두에 대한 불교의 반동 관계[닮은 골격 위에서의 식(識)에 대한 관점 차이](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50204)」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09&wr_id=112
[대답 2] 마음의 3가지 관점 ― 단(斷)과 상(常)을 극복한 연기(緣起) →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輪迴)」
; 단견(斷見) ― 아지따 께사깜발리 → 사람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졌다.
; 상견(常見) ― 힌두교 → 아뜨만(참된 마음)의 윤회(재육화)
; 연기(緣起) ― 불교 → 무아(無我)인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 : 식이 윤회하지 않는다는 오해 때문에 재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재육화라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없음
; 윤회책 강의 250722) (제2부 제1장 Ⅰ) ②스승의 영역에 속하는 것[마음의 3가지 관점과 존재에서 벗어남의 3가지 주장](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10&wr_id=31
[첨언] 불교를 잠식한 단견(斷見) 특히 뇌과학에 대한 비판
연기는 육입(六入)으로 인식 주관을 제시하는데, 「처(處) = 식(識)+근(根)」입니다. 안근~신근은 몸인데 색~촉의 정보를 받아들여 식(識)에 전달하면, 식은 전달받은 정보를 분별하여 인식합니다.
그런데 단견은 몸으로 삶을 포괄 설명합니다. 근(根)만으로 인식의 주관을 삼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인식에 대한 불교의 설명과 유물론/뇌과학 등의 설명은 전혀 다릅니다. 불교 신자라면 부처님의 설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지만, 뇌과학을 중심으로 단멸론자들이 한국불교를 지나치게 잠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해소되어야 합니다. 단멸론을 불교라고 말하거나, 단멸론을 주장하면서 불교 신자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