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특강(2020) 8. 나- 행(行)-내입처-외입처-의(意)-법(法)에 대한 상세(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00917)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1C9g5omcEA
1. 나는 오취온(五取蘊)입니다. 그런데 오취온이라고 정의되는 용어가 있는데, 유신(有身-sakkāya)입니다. 마음[식(識)]에게 몸[색(色)]이 있는 상태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 활성 상태로의 수(受)-상(想)-행(行)을 포함하면 오취온입니다. 그리고 다시 식(識)과 명색(名色)으로도 설명됩니다. 이때, 명(名)은 수(受)-상(想)-사(思)-촉(觸)-작의(作意)라고 정의되는데, 오취온의 행(行)을 사(思)-촉(觸)-작의(作意)로 대체한 구성입니다.
한편, 세상의 법은 오온(五蘊)인데, 삶은 오온과 오온의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때, 색(色)-상(想)-행(行)-식(識)은 쌓임이면서 각각의 작용성을 가지고 있지만, 수(受)는 작용성의 측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색(色)-상(想)-행(行)-식(識)의 작용성이 수(受)[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로 모이는 것이기 때문에 색(色)-상(想)-행(行)-식(識)의 작용성의 제어를 통해 고멸을 실현하는 것으로의 불교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꿰뚫어 알게 한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또한, 행(行)을 설명하였는데, ①십이연기(十二緣起)의 행(行)과 ②오온(五蘊)의 행(行)과 ③삼법인(三法印)의 행(行) 그리고 유위(有爲)에서 형성하는 작용(saṅkhatamabhisaṅkharonti)으로의 ④작의(作意)와 ⑤촉(觸)입니다. 이외에 takka 내부에서 소망(nandi)을 형성하는 작용으로의 ⑥‘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묾’도 같은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때, ②오온(五蘊)의 행(行)은 의도[사(思)]라고 정의되기 때문에 사(思)-촉(觸)-작의(作意)는 온(蘊) 즉 쌓이는 것으로의 사(思)와 결과를 만드는 작용으로의 촉(觸)과 작의(作意)로 구별됩니다. 그렇다면 식(識)과 명색(名色)은 지난 삶의 누적으로의 오온(五蘊)과 지금 삶의 작용성으로의 촉(觸)과 작의(作意)를 포괄하는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불교는 사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식(識)과 명색(名色)으로의 내가 지금 세상을 만나는 과정이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물질 영역과 법(法)인 물질 아닌 것의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이때,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을 만나기 위한 나는 마음이 몸과 함께함 즉 안식(眼識)-안근(眼根) ~ 신식(身識)-신근(身根)으로 배분되고, 법(法)을 만나기 위한 나는 의식(意識)-의근(意根)으로 배분됩니다.
이렇게 식(識)과 근(根)이 함께하여 세상을 만나는 나 즉 인식주관이 되는데, 안처(眼處) ~ 의처(意處)인 육내입처(六內入處)입니다. 그리고 안처(眼處) ~ 의처(意處)는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라고 정의됩니다. 또한, 인식객관은 색처(色處) ~ 법처(法處)의 육외입처(六外入處)인데, 색(色)들 ~ 법(法)들이어서 복수로 정의됩니다.
또한, 이렇게 육내입처와 육외입처는 작의(作意)에 의해서 육식(六識)을 생기게 하고[육입(六入)], 이 셋이 함께하는 것[삼사화합(三事和合)]으로의 촉(觸)은 수(受)를 생기게 합니다.
이때, 오온과 오온의 작용이라는 측면은 여기에도 적용되는데, 구성으로의 육내입처-육외입처와 작용으로의 작의와 촉입니다. 그래서 육내입처-육외입처의 구성(*) 그리고 촉과 작의의 작용으로 1차 인식의 영역이 구성됩니다.
(*) 안의 색(色) 즉 안근(眼根) ~ 신근(身根)이 참여하여 의(意)[심의식(心意識)의 의(意)]와 함께 육내입처가 구성되면 밖의 색(色) 즉 색들 ~ 촉들이 인식객관으로 참여해 법(法)과 함께 육외입처를 구성함.
그렇다면 식(識)과 명색(名色)은 육내입처-육외입처-촉-작의와 동일한 구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법(法)은 수(受)-상(想)-사(思)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런 설명의 과정에서 「내입처(內入處)=식(識)+근(根)」이라는 점과 의(意)의 두 자리[①심의식(心意識)의 의(意), ②육내입처(六內入處)의 의(意)]가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확인은 중요합니다. 식(識)과 명색(名色)인 내가 세상을 만나는 현장이 1차 인식의 과정이기 때문에, 이 과정을 구성하는 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식(識)-촉(觸)-수(受)에 대한 앎이 경에 어긋날 때 삶에 대한 이해에 오류가 생기고, 불교는 고멸(苦滅)로 이끄는 가르침으로의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