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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해피스님

대답 - 해피스님(210504) 불교와 채식 - 이어지는 이야기

대답 - 해피스님(210504) 불교와 채식 - 이어지는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U1of_9jxHe0

 

어제 이야기 불교환경연대의 생명을 존중하는 부처님오신날캠페인의 채식이 우리를 지킨다.’에 대한 소감을 말하였습니다. 식생활에서 육류 소비를 줄임으로써 식용으로 사육되는 가축의 개체 수를 줄이는 것이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등 생태 문제에 대한 효율적 대응이라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자칫 불교의 생명존중 사상이 채식주의로 오해될 소지에 대해 육식에 대한 불교의 기준을 (MN 55-지와까 경)(상가디세사 - 상가의 분열에 대한 학습계율)을 인용해 설명하였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카톡[해피법당-근본불교학교]에서의 토론

 

법우님 나를 위해 잡은 고기는 먹지 않는다. 살생 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내가 선택해서 고기를 먹는다면 살생 업과 연관된다고 생각됩니다.

 

[해피스님 부처님이 정해준 기준을 바꾸지는 않아야 합니다.]

 

법우님 육식과 관련된 법구경 말씀. 육식 자체보다는 자비심에 관한 이야기로 보임. 그래서 대승경전에서는 육식을 하면 자비의 종자가 끊어진다고 하여 금하고 있습니다.

 

해피스님 법우님, 요즘도 공부 많이 하시지요?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 바르게 아는 것은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힘이 됩니다. 그런데 법구경과 법구경 주석서를 하나로 보지는 않아야 합니다. 주석서는 때로 그 작자의 길을 이끌지 부처님의 길을 이끌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어쨌든 육식보다는 자비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어제 제가 말한 육식보다는 살생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과 괘를 같이 합니다. 좋은 시각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채식을 표방한다는, 그래서 육식을 금해야 한다는 느낌을 주는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부처님이 정하신 것은 그 범위 안에서 받아들여야지 범위를 벗어나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대승경전이 육식을 하면 자비의 종자가 끊어진다고 하여 육식을 금하는지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데와닷따의 주장에 더 접근된 경이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불교를 부처님에게로 되돌리는 불사의 측면에서 참고가 되겠습니다.

 

법우님 열반경 범망경 등입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dsa3692&logNo=221414162830&proxyReferer=https:%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sm%3Dmtb_hty.top%26where%3Dm%26oquery%3D%25EB%25B2%2595%25EB%25A7%259D%25EA%25B2%25BD%26tqi%3Dh5u6jdp0JWNssgGv0KdssssssgR-039202%26query%3D%25EB%25B2%2595%25EB%25A7%259D%25EA%25B2%25BD%2B%25EA%25B3%25A0%25EA%25B8%25B0

 

해피스님 법우님이 우리 법회에 참석하셨을 때도 제가 늘 공부의 기준이 중요하다고 말하였지요?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접근의 문제는 참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십중 사십팔경을 상세히 말하기 전에 전제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율장 서문] verañjakaṇḍaṃ[웨란자 이야기] 2.'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2_01_01&wr_id=3

 

사리뿟따여, 그대는 기다려라! 사리뿟다여, 그대는 기다려라! 오직 여래가 그 적당한 때를 알 것이다. 사리뿟따여, 여기 번뇌 때문에 생긴 어떤 법들이 승가에 나타날 때까지 스승은 제자들을 위해 학습계율을 제정하지 않고, 계목을 암송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번뇌 때문에 생긴 어떤 법들이 승가에 나타날 때, 스승은 번뇌 때문에 생긴 그 법들에 저항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제정하고, 계목을 암송한다. ~"라고 말하는 부처님과 '보리수 아래에서 무상정각을 이루시고 처음으로 보살의 대승 율법(바라제목차)를 결정'한 부처님은 각각 누구라고 보아야 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신자로서 나의 설 자리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어떤 삶을 통해 어디로 이끌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선택입니다.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삶의 과정에서 지는 거지요. 그것이 불교신자의 삶입니다.

 

해피스님 열반경과 법망경을 주목해야 하는군요. 니까야의 (DN 16-대반열반경)과 달라서 대승열반경이라고도 불리는 이 경은 열반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사덕(四德)으로 설명해서 니까야의 부처님의 설명과 차이를 보여주는데, 법망경은 이렇게 부처님이 깨닫고나서 바로 제정한 율()을 말하여 니까야의 율과의 차이를 보여주는군요.

 

열반은 목적점-지향점이고, 율은 거기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목점점을 다르게 제시하는 열반경과 삶의 방식을 다르게 제시하는 범망경이 결합하니 육식과 관련한 불교의 입장도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편치 않은 현상입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Comments

대원행 2023.07.07 21:19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316 참조 ( 초기불교 백일법문(독송 및 개론) - (5-10)paṭhamamahānāmasuttaṃ (SN 55.21-마하나마 경1)[몸과 마음의 미래 - 육식과 채식]
아빈뇨 2023.07.11 14:01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