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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해피스님

연명치료에 대한 소고(小考)

연명치료에 대한 소고(小考)

 

앞선 주제인 자살과 낙태에서도 언급했지만 견해는 중요합니다. 특히, 죽음 이후에 대한 견해는 살아있는 동안의 행위에 대한 타당성의 측면에서 기준이 됩니다.

 

부처님은 윤회에 대해서 연기(緣起)된 식()의 윤회(輪迴)라는 확정적 답을 줍니다.

 

(SN 12.19-우현(愚賢) )은 무명이 버려지지 않고 갈애가 부서지지 않은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가고, 무명이 버려지고 갈애가 부서진 현명한 자는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MN 38-() 부서짐의 큰 경) 등은 몸으로 가는 것인 식()이 연기(緣起)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윤회의 영역에 있는 중생들은 몸이 무너지면 연기(緣起)된 식()의 윤회(輪迴)라는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 다음 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몸이 무너짐 즉 죽은 뒤에 몸으로 가는 이 삶이 늙으면, 늙은 뒤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목숨의 연장일까요 아니면 어떤 몸으로 갈 것인지의 방향성일까요?

 

경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와 관련하여 많은 용례를 보여줍니다. 용례 소개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7_02&wr_id=130&page=5

 

그러면 몸이 무너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몸은 마음과 함께 나를 구성하는 요소인데, 마음이 안으로 인식과 행위를 결정한다면 몸은 세상을 만나는 접점-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어떤 형편에 의해서든 몸이 세상을 만나는 접점-수단으로의 역할을 상실한다면 그것이 몸의 무너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연명치료의 관점에서 서술하자면, 이미 자신의 힘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행위 역할의 상실과 함께 보고-듣고-냄새 맡고-맛보고-닿음을 느끼는 다섯 가지 기능[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이 인식 역할을 상실하면 몸이 무너졌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은 이런 다섯 가지 기능 즉 몸이 목숨과 체열을 조건으로 유지된다고 하면서 더 나아가 도반이여, 목숨과 체열과 식()의 세 개의 법들이 이 몸을 떠날 때 이 몸은 무감각한 나무토막처럼 던져지고 팽개쳐져 누워있습니다.”라고 하여, 몸이 무너지면 목숨이 다하고 체열이 식고 식()이 떠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또한, (MN 44-교리문답의 작은 경) 등은 신행(身行) 즉 몸의 형성작용을 들숨-날숨이라고 정의하는데, 숨을 쉬면 살아있는 것이어서 몸이라 하지만,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은 것이어서 더 이상 몸이 아니라 무감각한 나무토막처럼 된다고 알려줍니다.

 

몸이 무너진 때 즉 더 이상 인식과 행위의 측면에서 세상을 만나는 접점-수단으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때에 호흡을 강제하여 목숨을 유지 시키는 의료 행위를 연명치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연명치료는 목숨과 체열을 유지하여 식()을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몸의 무너짐에 의해 이미 세상을 만나는 접점-수단을 잃은 식()에게 새로운 접점-수단을 만나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위 하지 못하고 또한 보지 못하고-듣지 못하고-냄새 맡지 못하고-맛보지 못하고-닿음을 느끼지 못하는 어두운 상태에 묶여 있게 합니다.

 

늙은 뒤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목숨의 연장일까요 아니면 어떤 몸으로 갈 것인지의 방향성일까요?

 

더 나아가 몸이 무너진 뒤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목숨의 연장일까요 아니면 어떤 몸으로 갈 것인지의 방향성일까요?

 

윤회(輪迴)하지 않는다는 견해 즉 단견(斷見)-단멸론(斷滅論)을 가졌다면 죽음으로 끝나는 이 생명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삶을 유지 시켜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회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연명치료는 부당합니다. ()이 떠날 때가 되면 다음 삶을 새롭고 힘차게 시작할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것이 몸이 무너진 그분을 위한 바른 선택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쉬움에 묶여 몸이 무너져서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행위 하지 못하고 또한 보지 못하고-듣지 못하고-냄새 맡지 못하고-맛보지 못하고-닿음을 느끼지 못하는 어두운 상태에 묶여 있는 그분을 해방시켜 주지 않는 이기심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짓는 업()의 문제 보충)

 

부처님은 연기(緣起)된 식()의 윤회(輪迴)를 확정적으로 선언합니다. 이런 가르침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불교 신자라면, 몸이 무너진 그분에 대한 아쉬움을 접고 그분의 다음 생을 위해 결연히 보내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이 사실에 부합한 삶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겪는 부작용의 측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가야 하는 그분을 법의 제약 때문에 강제로 붙잡고 있는 연명치료가 남겨진 가족들의 삶에 미치는 타격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디가 몸이 무너진 때인지에 대한 공감을 형성하고, 그때가 되면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드려야 한다는 공감 위에서 연명치료의 중단을 위한 법을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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