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사회참여/외부특강 > 대답–해피스님

대답–해피스님

대답 - 해피스님(210202) 중유(中有) 또는 중음신(中陰身) 그리고 오종불환(五種不還)

대답 - 해피스님(210202) 중유(中有) 또는 중음신(中陰身) 그리고 오종불환(五種不還)

https://www.youtube.com/watch?v=37k441BS37U

 

중유(中有) 또는 중음신(中陰身)antarābhava 즉 중간-사이의 존재라는 의미인데, 부처님은 사용하지 않은 용어입니다. 삶의 실상을 설명하는 부처님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유(中有)는 부처님 이후 변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개념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중유(中有)의 개념을 전제하면, 중유가 있다는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경설(經說)도 발견됩니다. 그러나 그런 전제 없이 그 경설을 보면, 경이 알려주는 본래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특히, 불환자(不還者)에 대한 다섯 가지 분류[오종불환(五種不還)]에서 antarāparinibbāyī(중간에 완전히 열반하는 자)upahaccaparinibbāyī(닿은 뒤 완전히 열반하는 자)에 대해 죽고 태어남의 시간을 기준으로 중간과 닿음을 해석하여 중유 있음의 근거로 삼기도 하는데, 중유의 개념을 전제한 시각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AN 7.16-무상(無常)을 이어 보는 자 경) 등은 오종불환(五種不還) 외에 두 가지로 분류된 아라한을 포함하는 일곱 가지 사람을 공양받을만한 분들, 환영받을만한 분들, 보시받을만한 분들, 합장 받을만한 분들이며, 이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이라고 설명하는데, 아라한의 두 가지 분류는 이 몸으로의 살아 있는 동안에 깨달은 아라한과 죽는 시점에 깨닫는 아라한으로 구분합니다. 태어남과 죽음의 시간기준으로 중간과 닿음입니다.

 

그렇다면 불환자의 분류에서 죽고 태어남의 시간을 기준으로 중간과 닿음을 해석하여 중유 있음의 근거로 삼기보다는 아라한과 같은 기준 즉 태어남과 죽음의 시간 기준으로 중간과 닿음을 적용하는 것이 불환자를 이해하는 옳은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때, 죽어서 정거천에 태어난 불환자의 삶에서 그 몸으로의 살아 있는 동안에 깨달아 아라한이 되는 불환자와 그 몸으로의 죽는 시점에 깨달아 아라한이 되는 불환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지 않은 중유(中有)의 개념 위에서 경을 해석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설한 아라한의 분류와 같은 방법으로 불환자를 이해하는 것은 경을 해석하는 옳은 방법입니다.

 

한편, 한역(漢譯)된 아함이 원전(原典)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과 논서를 통해 일부 발견되는 원전이 산스끄리뜨어의 전승을 보여준다는 점도 설명하였는데, 빠알리어로 전승된 니까야와의 신뢰성의 차별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