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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다양한 주제들

나는 누구인가 ㅡ 유신(有身) - 오온의 이해( 2018.7.11. 해피스님)

▣ 나는 누구인가 ㅡ 유신(有身) - 오온의 이해( 2018.7.11. 해피스님)

   [동영상] https://youtu.be/HdqkBQprT2k


나는 누구인가?


(SN 22.78-사자 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ㅡ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어떤 때 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佛)-세존(世尊)인 여래(如來)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법을 설한다. ㅡ ‘이렇게 색(色)이 있다. 이렇게 색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색의 사라짐이 있다. 이렇게 수(受)가 있다. 이렇게 수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수의 사라짐이 있다. 이렇게 상(想)이 있다. 이렇게 상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상의 사라짐이 있다. 이렇게 행(行)들이 있다. 이렇게 행들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행들의 사라짐이 있다. 이렇게 식(識)이 있다. 이렇게 식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식의 사라짐이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긴 수명을 가진, 용모를 갖춘, 많은 행복을 가진, 높은 하늘 궁전에서 오래 동안 살아가는 그 신들이 여래의 법문을 들은 뒤에 대부분 두려움과 걱정과 충격에 빠진다. ㅡ ‘존자들이여, 우리는 상(常)하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무상(無常)합니다. 존자들이여, 우리는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안정되지 않습니다. 존자들이여, 우리는 영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우리는 무상(無常)하고, 안정되지 않고, 영원하지 않고, 유신(有身)에 속해있습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여래는 신들을 포함한 세상에서 이렇게 큰 신통력을 가졌고, 이렇게 큰 위력을 가졌고, 이렇게 많은 존재를 이끈다.」


‘나’는 상(常)하고, 안정되었고, 영원하다고 알고 있던 신들도 부처님의 법을 들은 뒤에는 유신(有身)에 속해있는 무상(無常)하고, 안정되지 않고, 영원하지 않은 것으로의 ‘나’를 인식합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걱정과 충격에 빠집니다. 


여기서 상(常)하고, 안정되었고, 영원한 존재를 아(我)[p. attan/s. atman]라고 하는데 부처님 이전 인도에서 고정된 ‘나’ 등 존재에 대한 견해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바른 깨달음에 의해서 ‘나’ 등 존재가 아(我)[p. attan/s. atman]이 아니라고 선언하는데, 무아(無我)[p. anattan/s. anatman]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아(無我)인 것은 무상(無常)하고, 안정되지 않고, 영원하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이때, ‘나’ 등 존재 가운데 삶의 당사자인 ‘나’를 유신(有身)이라고 합니다.


나에 대한 불교 이전의 견해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십사무기(十事無記)를 인용하면 이렇게 설명됩니다. 


1) taṃ jīvaṃ taṃ sarīraṃ ㅡ 그 생명이 그 몸이다.

2) aññaṃ jīvaṃ aññaṃ sarīraṃ ㅡ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


• jīva: 1. the soul ㅡ 영혼. 마음. 정신. 2. the life ㅡ 삶. 생명. 생존기간. (m.)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는 것은 생명 즉 마음이 몸과 함께한 삶의 과정이 몸의 과정으로 제한된다는 것입니다. 몸이 죽으면 삶의 과정이 끝난다는 의미인데, 유물론(唯物論)적 사고에 입각한 단견(斷見)-단멸론(斷滅論)입니다.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는 것은 몸과는 다른 것으로의 생명을 말하는 것인데 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아(我)[p. attan/s. atman]으로서의 영혼의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몸으로부터 독립된 것이기 때문에 몸이 죽어도 그 존재성이 훼손되지 않고 다시 새로운 몸을 만나 아(我)[p. attan/s. atman]의 삶을 이어간다는 의미인데, 상견(常見)-상주론(常住論)[영속론(永續論)]입니다.


부처님은 이 두 가지 견해는 모두 아(我)에 의해 치우친 견해이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이 두 가지를 배제하고 어떤 것으로 ‘나’를 설명합니까? 바로 유신(有身)[sakkāya]입니다.


● 유신(有身)[sakkāya]의 의미


• sakkāya ㅡ sak-kāya → sat-kāya


• sat = sant [ppr.(현재분사) of atthi] 1. being, existing, 2. good, true

빠알리-한글 사전(한국빠알리성전협회) 633쪽.


⇒ sat-kāya = 몸이 있는[존재하는] 것(상태) → 유신(有身) = 오취온(蘊)


• [참고] 「그러나 싸뜨(sat)라는 단어는 원래 바라문교의 철학의 ’영원한 존재‘에서 유래하는 실체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 철학적으로 보면 무상한 존재에 대한 전도된 인식하에서 성립한 것이다.」 

<<맛지마니까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해제 27쪽.


• be 동사의 현재분사인 sant(있는 것)에 대한 불교와 힌두교의 해석의 차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라문교 즉 힌두교에서는 sant 즉 있는 것이 실체적 존재를 의미하겠지만 불교적으로는 무상(無常)-무아(無我)인 것의 현재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sakkāya ㅡ sak-kāya → sat-kāya]는 몸이 있는[존재하는] 것 즉 마음이 몸과 서로 조건 됨[식(識) ↔ 명색(名色)]에 의해 함께하는 중생의 존재 상태를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설명하는 ‘나’도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①몸의 과정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②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해서 비로소 ‘나’를 구성하는데, 이 마음이 몸 따라 죽는 것도 아니면서 몸 없이는 그 존재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신(有身)은 오취온(五取蘊)입니다. ㅡ 「katamo ca, bhikkhave, sakkāyo? pañcupādānakkhandhātissa vacanīyaṃ. katame pañca? seyyathidaṃ — 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ayaṃ vuccati, bhikkhave, sakkāyo.                                             sakkāyasuttaṃ (SN 22.105)


비구들이여, 무엇이 유신(有身)인가? 오취온(五取蘊)이라고 말해져야 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말하자면, 색취온(色取蘊), 수취온(受取蘊), 상취온(想取蘊), 행취온(行取蘊), 식취온(識取蘊)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유신(有身)이라고 불린다.」


오온(五蘊) 즉 색온(色蘊)-수온(受蘊)-상온(想薀)-행온(行蘊)-식온(識蘊)의 집착[취(取)] 상태인 오취온(五取蘊)이 바로 유신(有身) 즉 ‘나’라는 정의입니다.


이때,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은 삶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온(蘊)은 그 과정의 누적입니다. 즉 삶의 과정 과정이 쌓여서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결과물이 오온(五蘊)이고, 그 오온(五蘊)의 집착상태인 오취온(五取蘊)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해서 비로소 ‘나’를 구성하는데, 이 마음이 몸 따라 죽는 것도 아니면서 몸 없이는 그 존재성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이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오취온(五取蘊)이 유신(有身) 즉 ‘나’라는 정의는 바로 이 문제에 답을 줍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로의 삶의 과정 즉 매 순간의 삶의 결과가 누적되어 있는 것으로의 오온(五蘊)인 것입니다. 몸[색(色)]과 마음[식(識)]이 함께한 삶의 과정[수(受)-상(想)-행(行)](*1)이 누적되기 때문에 몸[색(色)]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고, 몸에 종속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몸 따라 죽지 않습니다. 


(*1) 「삶의 메커니즘」 참조.


이런 몸과 이런 마음의 관계를 부처님은 ‘식(識)과 명색(名色)의 서로 조건 됨’이라고 말하는데<DN15-대인연경>, 명색(名色)은 색(色)-수(受)-상(想)-사(思)[행(行)]-촉(觸)-작의(作意)입니다. 몸과 몸에 묶여있는 삶의 과정으로의 명색(名色)이 식(識)과 서로 조건 된다는 것입니다. 몸의 죽음에 의해 명색(名色)은 버려지지만 버려지지 않는 식(識)[식온(識蘊)]은 서로 조건 됨의 특성에 의해 혼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명색(名色)을 만나 이어지는(*2) 새로운 존재가 되어 다음 생을 살게 됩니다. 


(*2) 1. 죽고 태어남의 사이에 단락이 없음. → 죽는 순간 태어남.

    2. 이전 몸과의 삶의 과정을 담고 있는 식온(識蘊)이기 때문에 지금 몸과의 삶[금생(今生)]이 이전 몸과의 삶[전생(前生)]과 완전히 단락되지 않음.


이렇게 부처님은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는 치우친 견해도,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는 치우친 견해도 모두 극복한 유신(有身)으로의 중생의 삶을 설명하는데, 이것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입니다. 또한, 이런 답에 의지할 때 유신(有身)으로의 중생의 삶에서 벗어나 해탈된 삶을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전체 교재는 첨부하였습니다] 

Comments

선요비처 2019.01.12 20:31
위없는 바른가르침  위없는 바른행위 위없는 바른 마음챙김...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