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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바른 번역을 위한 두 가지 도구 ㅡ 1.빠알리어에 대한 문법적 이해, 2.삶에 대한 공통된 이해[삶의 메커니즘]

2 1,022 2017.07.28 11:33

불교경전어는 빠알리어[pāḷi]입니다. 빠알리로 설해지고 전승된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가 배워 알기 위해서는 번역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설하신 바 부처님의 의도를 정확히 우리말로 바꾸어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바른 번역을 위해서는 두 가지 도구가 필요합니다. 

 

한 가지는 빠알리어에 대한 문법적 이해입니다. 단어와 문장이 어떻게 조화되어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지 문법적으로 잘 알고 있어야 설하신 그대로를 우리말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삶에 대한 공통된 이해입니다. 삶에서의 고(苦)와 고멸(苦滅)을 설하신 가르침이 불교(佛敎)이기 때문에 삶의 모습에 대한 공통된 시각 없이는 설하신 의도를 설하신 그대로 이해하여 우리말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외국소설을 번역할 때 외국어에 대한 문법적 이해와 그 무대의 문화 등 삶의 조건에 익숙해야 훌륭하게 번역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근본경전연구회는 두 가지 도구를 모두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online으로 제공되는 digital pali reader의 도움 위에서 공부를 통해 빠알리어에 대한 문법적 이해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 위에 1차 결집된 경(經)과 율(律)의 공부 기준 위에서 구명(究明)한 삶의 메커니즘으로 부처님이 보시고 설명하신 삶의 모습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삶의 메커니즘은 오직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으로의 1차 결집된 경(經)과 율(律)의 기준 위에서 꿰어낸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 「4부 니까야를 꿰는 하나의 정신이 있다면 삶의 현실에 대한 통찰입니다!」

 

아무리 외국어에 문법적으로 능숙하다해도 그 무대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훌륭한 번역,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는 번역을 하지 못합니다. 빠알리 경전의 번역에서도 그렇습니다. 빠알리어에 대한 문법적 능숙에 더해 부처님이 보시고 설명하신 삶의 이해에 공감하지 못하면 고멸(苦滅)의 실현을 위한 가르침을 바르게 번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불교가 오랫동안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간주되어온 이유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메커니즘에 의하면 불교에는 형이상학이 없습니다. 심오하여 알고 보기 어려운 그 영역에 대해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해 구체적으로 제시된 심오한 가르침이 있을 뿐입니다. 더욱 열심히 공부[교학+수행]함으로써 설하신 바 그 심오함을 알고 보는 것이 부처님을 스승으로 하는 제자들인 불교신자들의 의무이지 내가 알고 보지 못하는 영역을 형이상학으로 간주하여 삶에서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은 접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근본경전연구회는 두 가지 도구를 모두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작은 시작일지 몰라도 앞으로 찾아올 미래는 커다란 성과(*)와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해피[解彼 & happy] 하시기 바랍니다!

 

(*) 1. 이 자리에서 빠알리 경전의 재번역 작업을 시도합니다. 10년쯤 제법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두 가지 도구를 사용한 번역은 부처님 가르침을 정확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될 것입니다. 

 

[180526] 이 자리에서 시도하기에는 경전의 양이 너무 방대합니다. 그래서 20181월 두 번째 홈페이지를 만들어 번역불사의 터로 삼았습니다. http://sutta.kr

 

두 개의 홈페이지의 연결 위에서 번역불사(飜譯佛事)경전을 꿰어 가르침의 진정에 접근하는 두 가지 사업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佛敎)를 부처님에게로 되돌리는 불사(佛事)입니다. 

 

    2. 빠알리어에 대한 문법적 이해에 능숙한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빠알리어에 능숙한 분이시라면 이 새로운 번역불사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Comments

할배 2018.07.26 16:08
올바르게 번역을 하려면 번역하시는 분들이 연기를 깨달아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반적으로 번역은 번역자의 의도가 번역서에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Pali어를 배웠다고, 승려라고, 유명한 학자라고 제대로 번역을 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정견을 획득한 자, 흐름을 거스러는 자, 가르침을 이해한 자, 고통의 일어남을 이해한 자만이 Pali경전을 제대로 배우고 번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정견으로 이끄는 책이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이해하시면 번역하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책의 이름은 Clearing the Path.pdf 입니다.
2018.07.28 09:16
그래요, 법우님. 말씀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견의 근거는 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직 경에 근거한 공부를 놓지 않는 것입니다. 경에 근거한 공부가 여기에 많이 있고 계속 더 정견에 접근하며 쌓아지고 있습니다. 경에 근거한 여기의 공부가 그 책의 견해와 같다면 좋을 것이고 다르다면 누가 경을 바르게 해석하였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책에 의지하지 않고 경에 직접 의지하기 위해 빠알리 문법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다른 이의 견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분명히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신대로 연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번 여름에는 연기를 주제로 책을 쓸 계획입니다. 이번에는 더 미루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 책하고 제가 만드는 책을 비교하는 것은 법우님의 역할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기왕에 이렇게 말씀을 주셨으니 그런 수고도 한번 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