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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리 공부 (2.초급과정)

제4격 ㅡ 수단격(手段格)[구격(具格)]의 용례 ㅡ 중(中)에 의해서 법을 설함 ㅡ> 중(中)의 의미

0 419 2017.08.28 22:37

majjha: the middle; the waist. (adj.), middle. (m.) ㅡ 중(中)

majjhena ㅡ majjha의 제4격(수단격) ㅡ 중(中)에 의한 

 

kaccānagottasuttaṃ (SN 12.15) 등은 '양 극단에 접근하지 않고 중(中)에 의해서 법을 설한다'고 하면서 「조건 관계에 의한 고(苦)의 발생의 측면에서 십이연기 그리고 조건의 해소에 의한 열두 단계로의 고(苦)의 소멸」을 함께 설합니다. 이때, 이것은 중(中)인지 법(法)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간의 학계에서는 법(法)으로 이해하여 해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본경전연구회의 이해로는 중(中)입니다. 이것을 중(中)으로 삼고, 중(中)에 의해서[수단격] 부처님은 다양한 법을 설하셨다는 이해입니다. [혹는 중(中)의 수단격이 형용사의 역할로 쓰여 법(法)을 수식한 것으로 이해하면 중(中)인 법(法)을 설하셨다는 이해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 중(中)은 무엇입니까?

 

삶의 중심을 꿰는 가르침입니다. 조건 관계에 의한 고(苦)의 발생[고집(苦集)]과 조건의 해소에 의한 고(苦)의 소멸[고멸(苦滅)]인데 이것이야말로 불교 안에서 삶의 중심을 꿰는 가르침 즉 중(中)인 것입니다. 즉 삶의 현실에 대한 통찰 위에서 삶의 중심을 꿰는 가르침은 이렇게 고(苦)를 결과맺는 중생의 삶과 고멸(苦滅)이 실현된 해탈된 삶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함으로써 고멸(苦滅)의 가능성을 우리 삶의 현실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이해 위에서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말한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법(法)은 고집(苦集)과 고멸(苦滅)을 포괄한 가르침인 중(中)에 의해서 설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조건의 해소를 통한 고멸(苦滅)의 실현을 위해 팔정도가 제시되고, 팔정도 바로 그 길의 실천을 중도(中道)라고 정의하여 사성제의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 kaccānagottasuttaṃ (SN 12.15)[깟짜나곳따 경] 중에서

 

‘sabbaṃ atthī’ti kho, kaccāna, ayameko anto. ‘sabbaṃ natthī’ti ayaṃ dutiyo anto. ete te, kaccāna, 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ṃ deseti‘avijjāpaccayā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viññāṇanirodhā nāmarūpanirodho; nāmarūpanirodhā saḷāyatananirodho; saḷāyatananirodhā phassanirodho;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 vedanānirodhā taṇhānirodho; taṇhānirodhā upādānanirodho; upādānanirodhā bhavanirodho; bhavanirodhā jātinirodho; jātinirodh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nirujjh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깟짜나여, ‘모든 것은 있다.’는 이것이 하나의 극단이고 모든 것은 없다.’는 이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나여, 이러한 양 극단에 접근하지 않고 ()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 무명(無明)의 조건으로부터 행()이 있다. ()의 조건으로부터 식()이 있다. ()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다.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육입(六入)이 있다. 육입(六入)의 조건으로부터 촉()이 있다. ()의 조건으로부터 수()가 있다. ()의 조건으로부터 애()가 있다. ()의 조건으로부터 취()가 있다. ()의 조건으로부터 유()가 있다. ()의 조건으로부터 생()이 있다. ()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긴다. 이렇게 이 모든 고온(苦蘊)의 일어남이 있다.

 

그러나 무명(無明)의 남김없이 빛바랜 멸()로부터 행()의 멸()이 있다. ()의 멸()로부터 식()의 멸()이 있다. ()의 멸()로부터 명색(名色)의 멸()이 있다. 명색(名色)의 멸()로부터 육입(六入)의 멸()이 있다. 육입(六入)의 멸()로부터 촉()의 멸()이 있다. ()의 멸()로부터 수()의 멸()이 있다. ()]의 멸()로부터 애()의 멸()이 있다. ()의 멸()로부터 취()의 멸()이 있다. ()의 멸()로부터 유()의 멸()이 있다. ()의 멸()로부터 생()의 멸()이 있다. ()의 멸()로부터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멸()한다. 이렇게 이 모든 고온(苦蘊)의 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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