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독송(250818) ― (SN 47.44-사띠 경),(SN 47.2-사띠 경), (SN 47.35-사띠 경)[이어지는 가르침(가르침의 근본) ― 동일한 깨달음에 의한 계보](근본경전연구회)
[동영상] https://youtu.be/OPUwY2nCSoI
[해피스님의 설명은 32분 40초에 시작됩니다.]
같은 제목의 사띠 경 3개는 ‘ayaṃ vo amhākaṃ anusāsanī(이것이 그대들을 위한 우리의 이어지는 가르침(가르침의 근본)이다)’라는 같은 주제를 설명하는데, 사념처와 바른 앎의 두 자리입니다.
; 이어지는 가르침의 포괄 = 팔정도 ― 깨달음을 위한 유일한 길(다른 방법 없음) → 필수품을 갖춘 삼매를 닦음 →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 → 번뇌의 부서짐 → 누진(漏盡) 아라한
• 이어지는 가르침 (1)(SN 47.44-사띠 경) sato vihareyya( 사띠를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 ― 사념처
• 이어지는 가르침 (2)(SN 47.2-사띠 경) sato vihareyya sampajāno(사띠를 가진 자, 바른 앎을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① — 사념처(四念處)와 sampajānakārī(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는 자) → 1차 인식에서 눈뜨고 옳고 그름을 판단함 = 필수품의 과정
• 이어지는 가르침 (3)(SN 47.35-사띠 경) sato vihareyya sampajāno(사띠를 가진 자, 바른 앎을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② ― 사념처(四念處)와 법(法)의 위빳사나 → 드러난 법에서 눈뜨고 옳고 그름을 판단함 = 법의 위빳사나
; 대상의 전개 ― 「①호흡(相-nimitta) → ②수(受-cittassa nimitta) =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 → ③드러나는 법 = 법의 위빳사나 ⇒ 무상(無常)의 관찰 → 여실지견」
이때, 이어지는 가르침의 의미를 설명하였는데, 위빳시 부처님으로부터 깟사빠 부처님을 거쳐 고따마 부처님에 이르는 동일한 깨달음에 의한 계보의 형성입니다. 특히, 고따마 부처님이 깟사빠 부처님의 제자였기에(*) 초선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이것이 깨달음의 길’이라고 판단하는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 (MN 81-가띠까라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9_01&wr_id=3
(**) (MN 85-보디 왕자 경) ― tassa mayhaṃ, rājakumāra, satānusāri viññāṇaṃ ahosi — ‘eseva maggo bodhāyā’ti 그런 나에게. 왕자여, 사띠를 따르는(사띠가 기억하는) 식(識)이 있었다. — ‘오직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다.’라고.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9_05&wr_id=5
한편, 이런 계보의 형성 과정을 감안하면, 부처님도 스승 없이 깨달은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전생의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깨달음의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내용은 지금 우리가 바르게 가르침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제시하는데, 지금 깨닫지 못해도 다음 생에 공부를 떠올리고 이어가서 깨달음을 성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AN 4.191-들어서 앎 경) ― 지금 공부의 다음 생에서의 연속성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2&wr_id=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