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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아침 독송

아침독송(250821) ― (AN 2.22-32-어리석은 자 품) 32.[수행지도의 골격 ― 사마타와 위빳사나 & 6차 결집본…

1 289 2025.08.21 08:43

아침독송(250821) (AN 2.22-32-어리석은 자 품) 32.[수행지도의 골격 사마타와 위빳사나 & 6차 결집본과 PTS본의 차이의 예](근본경전연구회)

[동영상] https://youtu.be/2zTy2vPR0Do

 

[해피스님의 설명은 1950초에 시작됩니다.]

 

(AN 4.41-삼매수행 경)은 4단계로 수행지도(修行地圖)의 골격을 제시하는데,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을 포괄합니다.


1. 이 골격 위에서 3개의 삼매 경은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를 설명하는데, 특히, 내적인 심의 사마타가 무엇이고, 법의 위빳사나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 ②내적인 심의 사마타 → 법의 드러남 → ③염(念)-정지(正知)로 이끄는 삼매 수행 = 법의 위빳사나 → 여실지견 : 사념처의 완성 = 사띠의 완성 = 사띠토대(satiāyatana)


2.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를 갖춘 사람은 그 유익한 법들에서 확고히 선 후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쌍이 수행의 완성이 아니라 번뇌들의 부서짐(사마타-위빳사나 = 명으로 연결된 법들)을 위한 선행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AN 2.22-32-어리석은 자 품) 32.는 명(明)으로 연결된 법들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소개합니다. ― 누진(漏盡-번뇌의 부서짐 = 소멸(nirodha)) =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김 ⇒ 딱까(애의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 필요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은 명(明)과 연결된다. 무엇이 둘인가? 사마타와 위빳사나이다. 


비구들이여, 사마타를 닦을 때 어떤 이익을 경험하는가? 심(心)이 닦아진다. 심(心)을 닦을 때 어떤 이익을 경험하는가? 탐(貪)이 버려진다. 


; 삼매의 완성 과정 = 사마타 ― [염오(소망의 해소) + 이탐(탐의 해소)] → 애멸(愛滅) → 심해탈(心解脫)


비구들이여, 위빳사나를 닦을 때 어떤 이익을 경험하는가? 지혜가 닦아진다. 지혜를 닦을 때 어떤 이익을 경험하는가? 무명(無明)이 버려진다. 


; 지혜의 완성 과정 = 위빳사나 ― 소멸(nirodha) = 누진(漏盡) →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김 = 무명의 멸 → 혜해탈(慧解脫)


‘ 심해탈-혜해탈 =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 깨달음의 완성 → 아라한


비구들이여, 탐(貪)에 오염된 심(心)은 해탈하지 못한다. 또는 무명(無明)에 오염된 지혜는 닦아진다[닦아지지 못한다(PTS)]. 이렇게, 비구들이여, 탐(貪)의 바램으로부터 심해탈(心解脫)이 있고, 무명(無明)의 바램으로부터 혜해탈(慧解脫)이 있다.」


사념처는 사띠, 사마타는 삼매, 위빳사나는 지혜의 완성과정입니다. 사념처로 여실지견하여 딱까에 접근한 뒤 사마타로 ①염오(기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음)하여 소망의 문제를 해소하고, ②이탐하여 탐(貪)의 문제를 해소하면 심(心)이 애(愛)로부터 해탈합니다[심해탈(心解脫)]. 그리고 위빳사나로 ③소멸(번뇌의 부서짐으로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남)하여 무명의 문제를 해소합니다[혜해탈(慧解脫)]. 심해탈은 혜해탈에 의해 탐의 아래에서 작용하는 무명의 문제가 해소되어야 흔들리지 않게 되는데,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입니다. 


이렇게 삼매의 완성 과정인 사마타에 의해 성취되는 심해탈은 지혜의 완성 과정인 위빳사나에 의해 혜해탈이 성취되어야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로 완성됩니다. 이것이 깨달음이고, 아라한입니다.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의 삶에서 사마타로 애를 해소하고, 위빳사나로 무명을 해소할 때 벗어나(解脫) 불사(不死)와 열반(涅槃)을 실현하는 깨달음으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에는 6차 결집본과 PTS본 사이에 심각한 차이가 있습니다. ‘탐(貪)에 오염된 심(心)은 해탈하지 못한다.’에 이어 무명(無明)에 오염된 지혜가 닦아질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 6차 결집본 ― 「rāgupakkiliṭṭhaṃ vā, bhikkhave, cittaṃ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vā paññā bhāvīyati. 비구들이여, 탐(貪)에 오염된 심(心)은 해탈하지 못한다. 또는 무명(無明)에 오염된 지혜는 닦아진다.」


• PTS본 ― 「Rāgupakkiliṭṭhaṃ vā bhikkhave cittaṃ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vā paññā na bhāvīyati. 비구들이여, 탐(貪)에 오염된 심(心)은 해탈하지 못한다. 또는 무명(無明)에 오염된 지혜는 닦아지지 못한다.」


이 문제는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의 「paññā bhāvetabbā, viññāṇaṃ pariññeyyaṃ 혜(慧)는 닦아야 하는 것이고, 식(識)은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기능인 혜의 닦음에 의해 식은 완전히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심은 해탈해야 하는 것(心解脫)인데, 혜의 닦음에 의해 식이 완전히 알려지듯이, 혜의 닦음에 의해 심은 완전히 해탈하게 된다는 이해입니다[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그래서 탐이 남아있으면 애가 해소되지 않아 심이 해탈할 수 없는 문제를 혜를 닦아 무명을 해소하는 수행을 통해 탐을 완전히 부수면 애의 부서짐에 의해 심은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명에 오염된 지혜는 닦아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즉 무명의 오염이 남아있는 지혜를 위빳사나로 닦아서 완성함으로써 무명이 부서지고, 그때, 탐도 완전히 부서져 심의 해탈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명에 오염된 혜를 닦는 것이 위빳사나입니다. 만약 무명에 오염된 혜가 닦아지지 못한다면 무명을 부수는 방법은 없고, 깨달음도 성취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차이는 PTS본이 틀렸고, 6차 결집본이 맞습니다. 

 

 

초기불교 백일법문(독송 및 개론)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375 

 

아침 독송에 참여하는 방법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960

Comments

대원행 2025.08.29 23:36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7&wr_id=16 참조 ((아침독송 발췌 250814~26) 수행지도(修行地圖)[삼매가는 길 → 내적인 심의 사마타 → 법의 드러남 → 법의 위빳사나 → 여실지견 → 해탈지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