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함께하는 아침 독송

함께하는 아침 독송

아침독송(250820) ― (AN 4.92-삼매 경1), (AN 4.93-삼매 경2), (AN 4.94-삼매 경3)[수행지도의…

1 347 2025.08.20 08:53

아침독송(250820) (AN 4.92-삼매 경1), (AN 4.93-삼매 경2), (AN 4.94-삼매 경3)[수행지도의 골격 내적인 심()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근본경전연구회)

[동영상] https://youtu.be/9GKZ9Uxb9ME

 

[해피스님의 설명은 3850초에 시작됩니다.]

 

(AN 4.41-삼매수행 경)은 수행지도(修行地圖)의 골격을 제시하는데,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을 포괄합니다.


1. 이 골격 위에서 3개의 삼매 경은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를 설명하는데, 특히, 내적인 심의 사마타가 무엇이고, 법의 위빳사나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 ― 도반이여, 참으로 심(心)을 어떻게 진정해야 합니까? 심(心)을 어떻게 가라앉혀야 합니까? 심(心)을 어떻게 집중해야 합니까? 심(心)을 어떻게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


• 법의 위빳사나 ― 도반이여, 참으로 행(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행(行)들을 어떻게 철저히 알아야 합니까? 행(行)들을 어떻게 통찰해야 합니까?


;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는 (AN 4.41-삼매수행 경)의 ②지와 견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인데, 여실지견과 해탈지견으로의 깨달음을 위한 조건의 확보입니다. 이런 지견은 사실의 영역에서 진행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의 영역을 진정함으로써 법을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법을 드러나게 하여 두 가지 지견을 얻기 위한 조건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내적인 심의 사마타가 지와 견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입니다. 【컵의 비유 ― 수행에서 대상의 전개】로 설명하였습니다.


【컵의 비유 ― 수행에서 대상의 전개】


컵 속 물에 얼굴을 비춰 얼굴의 때를 씻고자 하면 컵 속 물이 흔들리지 않고 맑아야 합니다. 컵 속의 물이 흔들리고 부유물이 있으면 물은 얼굴을 비춰주지 않습니다. 물이 흔들리지 않고 부유물이 잘 가라앉을 때 물은 얼굴을 비춰줍니다.


과정을 구분하면, ①컵이 고정되고, ②컵 속의 흔들림도 멈추어 부유물이 가라앉을 때 ③물은 얼굴을 비춰줍니다. 그러면 얼굴에 묻은 때를 씻거나 때가 없으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수행도 이와 같아서 호흡 수행에 견주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컵의 고정 ― 대상① 호흡[상(相)-nimitta] → 마음[의(意)]이 호흡에 고정되어 삼매에 듦(1차 인식) = 신념처(身念處)


2) 컵 속의 흔들림이 멈추고 부유물이 가라앉음 ― 대상② 수(受)[심상(心相)-cittassa nimitta] → 마음[식(識)]이 고정됨(2차 인식) = 수념처(受念處) 


⇒ 마음[심(心)]이 일어나서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를 통해 법이 드러나게 함 = 심념처(心念處) 


3) 대상③ 즉 드러난 법에서 법의 위빳사나를 통해 무상(無常)을 관찰함 = 법념처(法念處) → 여실지견(如實知見) = 예류자(預流者)


; 삼매를 성취하고, 삼매 위에서 이런 과정으로 예류자가 됩니다. 이것이 사념처(四念處)의 완성이고, 사띠의 완성입니다. 그러면 완성된 사띠 즉 사띠토대(satiāyatana) 위에서 사마타-위빳사나의 과정으로 번뇌를 부수고 해탈지견(解脫知見)할 때 아라한이 성취됩니다. 이런 과정이 팔정도(八正道)입니다. 


참고로, 이런 점에서 삼매/선정 없음을 말하는 순수 위빳사나 또는 마른 위빳사나는 깨달음의 길이 될 수 없습니다.


2. 법의 드러남의 의미


법이 드러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바닷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보기 위해서는 생명들이 존재하는 깊이만큼 내가 들어가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들은 나에게서 자기의 존재를 감추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의 존재성에 따라 제 있을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sandiṭṭhiko dhamma – 스스로 보이는 법). 그래서 내가 그의 존재성에 맞춰 그가 있는 자리로 가까이 가면 자기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보여줍니다(ehipassiko dhamma – 와서 보라는 법). 이렇게 내가 그들의 존재성으로 접근하면 법들은 의도적 감춤 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같은 의미를 물질의 존재 구성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분자 → 원자 → 핵과 전자 → 양성자-중성자 → … → 쿼크」 등 존재의 미세한 구성 요소는 옛날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과학기술이 그 미세함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에 접근치 못해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보는 능력이 향상되자 그 미세한 존재 영역의 것들도 자기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스스로 보이는 법들은 와서 보는 시도를 통해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내 안에 있는 것들도 그렇습니다. 초선을 성취하여 머물면 초선을 구성하는 법들이 자기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또한,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로 심(心)을 안으로 진정시키면 그 진정을 조건으로 안에서 드러나는 법들이 있습니다. 내지 상수멸을 성취해 머물면 상수멸까지 남아있는 법들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그 법들에 대한 법의 위빳사나로 여실지견한 뒤 사마타-위빳사나의 과정으로 완성됩니다.


3.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를 갖춘 사람은 그 유익한 법들에서 확고히 선 후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쌍이 수행의 완성이 아니라 번뇌들의 부서짐(사마타-위빳사나 = 명으로 연결된 법들)을 위한 선행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한편, 이 경들은 역의 순서 즉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는 얻었지만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는 얻지 못한 사람을 말하는데, (AN 4.170-쌍 경)의 위빳사나가 선행한 사마타를 닦는 경우와 같습니다. 아마도 단계적 수행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주제입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8_07&wr_id=1

 

 

초기불교 백일법문(독송 및 개론)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367&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370&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374

 

아침 독송에 참여하는 방법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960

Comments

대원행 2025.08.29 23:35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7&wr_id=16 참조 ((아침독송 발췌 250814~26) 수행지도(修行地圖)[삼매가는 길 → 내적인 심의 사마타 → 법의 드러남 → 법의 위빳사나 → 여실지견 → 해탈지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