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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貪)-진(嗔)-치(癡)

[4] 빛나는 심(心)의 회복 ― 2. nirodha[소멸(消滅)]

[4] 빛나는 심(心)의 회복 ― 2. nirodha[소멸(消滅)] 


1. 소멸(消滅-nirodha) ―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나는 것」


소멸(消滅-nirodha)은 무엇입니까? 소멸(消滅)을 직접 정의해 주는 경은 발견할 수 없는 가운데 「‘nirodho’ti vuccati 소멸(消滅)이라고 불린다.」와 「‘nirodho, nirodho’ti kho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ī 비구들이여, 나에게 ‘소멸, 소멸’이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다, 지(知)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명(明)이 생겼다, 광(光)이 생겼다.」의 두 가지 형태를 주목할 수 있습니다.


「‘nirodho’ti vuccati 소멸(消滅)이라고 불린다.」는 ānandasuttaṃ (SN 22.21-아난다 경)에 나타나는데, 소멸의 대상이 오온(五蘊)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nirodho nirodho’ti, bhante, vuccati. katamesānaṃ kho, bhante, dhammānaṃ nirodho ‘nirodho’ti vuccatī”ti? “rūpaṃ kho, ānanda, aniccaṃ saṅkhataṃ paṭiccasamuppannaṃ khayadhammaṃ vayadhammaṃ virāgadhammaṃ nirodhadhammaṃ. tassa nirodho ‘nirodho’ti vuccati.(오온(五蘊)에 반복)   


“대덕이시여, ‘소멸, 소멸’이라고 불립니다. 대덕이시여, 어떤 법들의 소멸이 소멸이라고 불립니까?” “아난다여, 색(色)은 무상(無常)하고 유위(有爲)이고, 연기(緣起)된 것이고, 부서짐의 법이고, 사라짐의 법이고, 이탐(離貪)의 법이고, 소멸(消滅)의 법이다. 그것의 소멸이 소멸이라고 불린다. 


소멸이라는 법에 대한 안(眼)-지(知)-혜(慧)-명(明)-광(光)의 생김은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을 설명하는 vipassīsuttaṃ (SN 12.4-위빳시 경)~gotamasuttaṃ (SN 12.10-고따마 경)에서는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열두 지분의 소멸 과정으로 나타나고, mahāpadānasuttaṃ, bodhisattābhiniveso (DN 14.11-대전기경, 보살의 희망)과 nagarasuttaṃ (SN 12.65-도시 경)에서는 십지연기(十支緣起)의 열 지분의 소멸 과정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열두 지분의 소멸 과정으로의 소멸은 무명(無明)의 소멸로부터 시작합니다. 무명(無明)의 조건인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중간의 지분들의 소멸 과정의 끝에서 이어집니다.


“iti hidaṃ avijjānirodhā saṅkhāranirodho;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 pe ...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i. ‘nirodho, nirodho’ti kho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ī”ti. 


이렇게 이것 무명(無明)의 멸(滅)로부터 행(行)들의 멸(滅)이 있다. 행(行)들의 멸(滅)로부터 식(識)의 멸(滅)이 있다. 식(識)의 멸(滅)로부터 명색(名色)의 멸(滅)이 있다. 명색(名色)의 멸(滅)로부터 육입(六入)의 멸(滅)이 있다. 육입(六入)의 멸(滅)로부터 촉(觸)의 멸(滅)이 있다. 촉(觸)의 멸(滅)로부터 수(受)의 멸(滅)이 있다. 수(受)의 멸(滅)로부터 애(愛)의 멸(滅)이 있다. 애(愛)의 멸(滅)로부터 취(取)의 멸(滅)이 있다. 취(取)의 멸(滅)로부터 유(有)의 멸(滅)이 있다. 유(有)의 멸(滅)로부터 생(生)의 멸(滅)이 있다. 생(生)의 멸(滅)로부터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소멸한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고온(苦蘊)]의 멸(滅)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소멸, 소멸’이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다. 지(知)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명(明)이 생겼다. 광(光)이 생겼다.”


그런데 sammādiṭṭhisuttaṃ (MN 9-정견(正見) 경)은 무명(無明)과 번뇌의 서로 조건 됨을 말합니다. 번뇌가 자라나면 무명(無明)도 자라나고, 번뇌가 소멸하면 무명도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āsavasamudayā avijjāsamudayo, āsavanirodhā avijjānirodho … avijjāsamudayā āsavasamudayo, avijjānirodhā āsavanirodho


번뇌[루(漏)]의 집(集)이 무명(無明)의 집(集)이고, 루(漏)의 멸(滅)이 무명(無明)의 멸(滅)이고 … 무명(無明)의 집(集)이 루(漏)의 집(集)이고, 무명(無明)의 멸(滅)이 루(漏)의 멸(滅)입니다.


그런데 번뇌는 2차 인식에 공동 주관으로 참여하는 상(想)의 병든 상태이고, 무명(無明)은 2차 인식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삶의 순환 구조에 의해 결과인 무명(無明)이 다시 번뇌를 자라게 하지만[상(想)의 잠재], 1차적 조건 관계는 ‘번뇌를 조건으로 무명이 생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조건 관계의 출발점에서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하는 염오(厭惡)-이탐(離貪)에 이어지는 소멸(消滅)은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은 「도반이여, 죽은 자에게 신행(身行)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구행(口行)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심행(心行)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생명력은 다하고, 체열은 식고, 기능들은 부서집니다. 상수멸(想受滅)을 증득한 비구에게 신행(身行)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구행(口行)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심행(心行)은 그치고 진정됩니다. 생명력은 다하지 않고, 체열은 식지 않고, 기능들은 아주 깨끗합니다. 도반이여, 죽은 자와 상수멸(想受滅)을 증득한 비구 ― 이들에게는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상수멸(想受滅) 즉 상(想)과 수(受)가 멸(滅)한 수행자는 죽은 자와 다르게 기능들 즉 안근(眼根)~의근(意根)의 인식 접점이 부서진 상태가 아니라 아주 깨끗한 상태라고 알려줍니다. 살아 있고 기능들이 작용하므로 인식작용이 진행되는 것인데, 기능들이 번뇌 또는 그 연장선 위에 있는 것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깨끗한 상태로 작용한다는 설명입니다. 즉 삶 또는 수행의 과정에서 염오(厭惡)-이탐(離貪)에 이어지는 소멸(消滅)은 번뇌의 소멸 즉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오온(五蘊)의 소멸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온(蘊)의 해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온(蘊)에 대한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이외에 nirodhasuttaṃ (AN 9.60-소멸 경)은 구차제정(九次第定)에 의한 단계지어진 소멸[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과 단계지어지지 않은 소멸[상수멸(想受滅)]을 설명하는데, 소멸에 대한 같은 이해 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멸(消滅)은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Comments

대원행 2025.05.07 22:12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10&wr_id=15 참고 (윤회책 강의 250506) (제1부 제1장) Ⅰ. 윤회는 무엇입니까④[윤회 정리③ 윤회 이후 & (DN 11-께왓따 경)의 게송(명색의 멈춤 ↔ 식의 소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