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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貪)-진(嗔)-치(癡)

제6장 [9] 의성신(意成身)

1 985 2024.07.15 20:48

[9] 의성신(意成身)


한편, 죽음 이후 태어남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 있는데, 의성신(意成身)[의성(意成)의 몸]으로의 태어남입니다. 죽은 뒤에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윤회(輪迴)의 과정에서 찾아가는 새로운 몸 가운데 한 가지여서 중생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일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몸의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AN 5.44-마음에 흡족한 공양을 올리는 자 경)ㅡ 「atha kho uggo gahapati vesāliko aparena samayena kālamakāsi. kālaṅkato ca uggo gahapati vesāliko aññataraṃ manomayaṃ kāyaṃ upapajji.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웨살리 출신의 장자 욱가는 죽었다. 죽은 후에 웨살리 출신의 장자 욱가는 어떤 의성(意成)의 몸으로 태어났다.」


• (AN 5.100-까꾸다의 경) ㅡ 「tena kho pana samayena kakudho nāma koliyaputto āyasmato mahāmoggallānassa upaṭṭhāko adhunākālaṅkato aññataraṃ manomayaṃ kāyaṃ upapanno. tassa evarūpo attabhāvapaṭilābho hoti — seyyathāpi nāma dve vā tīṇi vā māgadhakāni gāmakkhettāni. so tena attabhāvapaṭilābhena neva attānaṃ no paraṃ byābādheti. 


그때 꼴리야 출신의 까꾸다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시자였는데, 방금 죽어서 어떤 의성(意成)의 몸으로 태어났다. 그는 예를 들어 둘 혹은 셋의 마가다의 마을에 있는 밭 크기의 몸을 얻었다. 그는 그 몸을 얻어서 자신도 괴롭히지 않고 남도 괴롭히지 않았다.」


• (AN 5.166-소멸의 경) ㅡ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idha, bhikkhave, bhikkhu sīlasampanno samādhisampanno paññāsampanno saññāvedayitanirodhaṃ samāpajjeyyāpi vuṭṭhaheyyāpi — atthetaṃ ṭhānaṃ. no ce diṭṭheva dhamme aññaṃ ārādheyya, atikkammeva kabaḷīkārāhārabhakkhānaṃ devānaṃ sahabyataṃ aññataraṃ manomayaṃ kāyaṃ upapanno saññāvedayitanirodhaṃ samāpajjeyyāpi vuṭṭhaheyyāpi — atthetaṃ ṭhānan”ti. idamavoca bhagavā. idaṃ vatvāna sugato uṭṭhāyāsanā vihāraṃ pāvisi.


그리고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했다. ㅡ “여기, 비구들이여, 계(戒)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가 상수멸(想受滅)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다. 만약 지금여기에서 무위(無爲)의 앎을 얻지 못하면 덩어리진 자량(資糧)[단식(段食)]을 먹는 신(神)들의 동료를 넘어서 어떤 의성(意成)의 몸으로 태어나 상수멸(想受滅)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다.”라고.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에 선서(善逝)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갔다.」


• (AN 11.13-난디야 경) ㅡ 「puna caparaṃ tvaṃ, nandiya, devatā anussareyyāsi — ‘yā devatā atikkammeva kabaḷīkārāhārabhakkhānaṃ devatānaṃ sahabyataṃ aññataraṃ manomayaṃ kāyaṃ upapannā, tā karaṇīyaṃ attano na samanupassanti katassa vā paticayaṃ. seyyathāpi, nandiya, bhikkhu asamayavimutto karaṇīyaṃ attano na samanupassati katassa vā paticayaṃ; evamevaṃ kho, nandiya, yā tā devatā atikkammeva kabaḷīkārāhārabhakkhānaṃ devatānaṃ sahabyataṃ aññataraṃ manomayaṃ kāyaṃ upapannā, tā karaṇīyaṃ attano na samanupassanti katassa vā paticayaṃ. iti kho te, nandiya, devatā ārabbha ajjhattaṃ sati upaṭṭhāpetabbā. 


다시 난디야여, 그대는 다음과 같이 천신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덩어리진 자량(資糧)을 먹는 신들의 동료를 넘어서서 어떤 의성(意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신들은 자신에게서 더 이상 해야 할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미 한 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를 보지 못한다. 마치 확실하게 해탈한 비구가 자신에게서 더 이상 해야 할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미 한 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덩어리 음식을 먹는 신들의 동료를 넘어서서 어떤 의성(意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신들은 자신에게서 더 이상 해야 할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미 한 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를 보지 못한다. 난디야여, 그대는 이처럼 천신을 대상으로 안으로 사띠를 확립해야 한다.」


1. 의성신(意成身)은 manomaya[의성(意成)]과 kāya[신(身)]의 결합입니다. 이때, maya는 1. made of, 2. consisting in이어서 manomaya[의성(意成)]은 ‘의(意)로 만들어진’ 또는 ‘의(意)로 구성된’입니다. 의(意)는 식(識) 또는 심(心)이 몸과 함께한 상태이므로 몸과 마음이 함께한 상태로 구성되거나 그것에 의해 만들어진 몸이란 의미가 될 것입니다. 「kāyaṃ … rūpiṃ manomayaṃ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색(色)을 가졌고, 의성(意成)이고, 수족을 완전히 갖추고, 기능[근(根)]에 결함이 없는 몸」이라는 정형구로 보통 나타납니다.


그런데 의성신(意成身)은 신(神)의 몸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의 아(我)는 ①색(色)을 지녔고 사대(四大)로 구성되었고 덩어리진 자량(資糧)을 먹는 거친 아(我), ②수족을 완전히 갖추고, 기능에 결함이 없는 의성(意成)의 아(我), ③무색(無色)을 지녔고 상성(想成)인 아(我)의 세 가지로 설명되는데, 의성신(意成身)은 덩어리진 자량을 먹는 신(神) 즉 욕계(慾界)의 여섯 하늘의 신(神)을 뛰어넘은 자리이면서 무색(無色)인 상성(想成-saññāmaya)의 아래 영역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의성(意成)은 색계(色界)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경들은 색계(色界) 제이선(第二禪)에 속하는 광음천(光音天)과 초선(初禪)에 속하는 범천(梵天)에 태어난 존재들은 의성(意成)이라고 직접 설명해 줍니다. 또한, ‘둘 혹은 셋의 마가다의 마을에 있는 밭 크기의 몸’이라고 그 크기가 묘사되기도 하고, 의성신(意成身)으로서 상수멸(想受滅)을 증득할 수 있다고 설명되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이때, 상성신(想成身)이란 용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rūpī manomayo[색(色)을 가졌고 의성(意成)인]으로 색계(色界)의 몸을 말하듯이, arūpī saññāmayo[무색(無色)을 가졌고 상성(想成)인] 역시 무색계(無色界)의 몸을 말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럴 때, 거친 아(我)는 거친 몸으로 살아가는 욕계(慾界)의 존재, 의성(意成)인 아(我)는 의성(意成)의 몸으로 살아가는 색계(色界)의 존재, 상성(想成)인 아(我)는 상성(想成)의 몸으로 살아가는 무색계(無色界)의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성신.jpg

 

이런 이해는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중생 세상에 대한 이해와 괘를 같이 합니다. 마음과 몸으로 구성된 내가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로의 삶에서 마음-몸-세상 모두에 대한 집착과 경향[욕상(慾想)]으로 살아가는 질적 세상이 욕계(慾界)이고, 물질 세상 즉 kāmaguṇā(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 : 밖의 색(色)]에 대한 집착과 경향을 극복하고 마음과 몸[안의 색(色)]에 대한 집착과 경향[색상(色想)]으로 살아가는 질적 세상이 색계(色界)이며, 몸[안의 색(色)]에 대한 집착과 경향을 극복하고 마음에 대한 집착과 경향[무색상(無色想)]만으로 살아가는 질적 세상이 무색계(無色界)이므로, 거친 아(我)와 욕계(慾界)의 존재, 의성(意成)인 아(我)와 색계(色界)의 존재, 상성(想成)인 아(我)와 무색계(無色界)의 존재라는 각각의 대응은 타당합니다.


2. 의성신(意成身)으로의 존재 상태는 외도들도 이미 알고 있던 내용입니다. 무아(無我)를 보지 못하는 외도들 가운데 단멸론자(斷滅論者)들은 7가지 경우의 아(我)로써 단멸하는 중생들의 존재 상태를 설명하는데(DN 1.15-범망경(梵網經), 단멸의 주장),


•아(我)① - 색(色)을 가졌고, 사대(四大)로 이루어졌으며, 부모에서 생겨난 아(我)(attā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아(我)② - 하늘의 색(色)을 가졌고, 소유의 영역[욕계(慾界)]이고, 덩어리진 자량을 먹는 아(我)(attā dibbo rūpī kāmāvacaro kabaḷīkārāhārabhakkho)


•아(我)③ - 하늘의 색(色)을 가졌고, 의성(意成)이고, 수족을 완전히 갖추고, 기능[근(根)]에 결함이 없는 아(我)(attā dibbo rūpī manomayo sabbaṅgapaccaṅgī ahīnindriyo)


•아(我)④ - 색상(色想)을 완전히 초월하고 저항의 상(想)을 내려놓고 다양함의 상(想)을 위해 작의하지 않고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도달한 자의 아(我)(attā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ūpago)


•아(我)⑤ -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도달한 자의 아(我)(attā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ūpago)


•아(我)⑥ -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아무 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도달한 자의 아(我)(attā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ūpago)


•아(我)⑦ -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라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도달한 자의 아(我)(attā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ntametaṃ paṇītametan”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o)


입니다. 아(我)①은 인간, 아(我)②는 욕계육천(慾界六天)의 신(神), 아(我)③은 색계(色界)의 신(神), 아(我)④~아(我)⑦은 무색계(無色界)의 신(神)으로의 분류인데, 아(我)①과 아(我)②는 ①색(色)을 지녔고 사대(四大)로 구성되었고 덩어리진 자량을 먹는 거친 아(我)와, 아(我)③은 ②수족을 완전히 갖추고, 기능[근(根)]에 결함이 없는 의성(意成)의 아(我)와, 아(我)④~아(我)⑦은 ③무색(無色)을 지녔고 상(想)으로 구성된 아(我)와 대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렇게 의성신(意成身)은 색계(色界)의 신(神)들의 존재 상태이지만 인간들에게도 경험될 수 있습니다. 삼매 수행을 통해서, 마치, 칼을 칼집에서 끄집어내듯이 사람의 몸 안에서 만들어내는 다른 몸입니다(imamhā kāyā aññaṃ kāyaṃ abhinimmināti).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는 쭐라빤타까가 제일 잘하였다고 나타납니다. 


경들은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물면서 삼매를 닦을 때 의성신(意成身)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거친 아(我)의 입장에서 의성신(意成身)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성신의 영역 즉 색계의 꼭대기에서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성신(意成身)을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삼매를 닦아서 색계(色界) 세상에 닿는 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색계(色界)의 신(神)들과 직접 만나는 것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색계(色界)의 신(神)들과 직접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몸 즉 의성신(意成身)을 가져야 하고, 거친 몸을 가진 인간이 의성신(意成身)을 가지기 위해서는 색계(色界)의 꼭대기에서 마음을 기울일 때 가능하다는 이해입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상성(想成)의 몸도 경험될 수 있을 것인데, 무색계(無色界)의 꼭대기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물 때 상성(想成)의 몸을 만들어 무색계(無色界)의 신(神)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가능하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신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경에서도 언급되는데, 「그 신들과 함께 머물고, 대화하고, 토론했다(tāhi ca devatāhi saddhiṃ santiṭṭhāmi sallapāmi sākacchaṃ samāpajjāmi).」라고 말하는 (MN 79-사꿀루다이 짧은 경)과 (MN 127-아누룻다 경) 그리고 「비구들이여, 나중에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문 나는 ①빛의 상(想)을 상(想)하기도 하고, ②색(色)들을 보기도 하고, ③그 신들과 함께 머물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④그 신들을 ‘이 신들은 이런저런 신들의 무리에 속한다.’라고 알고, ⑤그 신들을 ‘이 신들은 이런 업(業)의 보(報)에 의해 여기에서 죽어서 거기에 태어났다.’라고 알고, ⑥그 신들을 ‘이 신들은 이런 업(業)의 보(報)에 의해 이런 음식을 먹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라고 알고, ⑦그 신들을 ‘이 신들은 이런 긴 수명을 가지고, 이렇게 오래 머문다.’라고 알고, ⑧그 신들을 ‘내가 이 신들과 예전에 함께 살았었는지, 예전에 함께 살지 않았었는지’라고 알았다.」라고 여덟 단계로 상세히 설명하는 (AN 8.64-가야시사 경)이 있습니다.


4. 한편, 의성신(意成身)에 대한 이런 이해는 수행(修行) 또는 깨달음과 관련한 중요한 교리를 설명하는데,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와 혜해탈자(慧解脫者)의 차이입니다.


(AN 9.44-혜해탈자 경)은 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물면서 지혜로써 그것을 꿰뚫어 아는 자를 단계 지어진 혜해탈자라고 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해 머물면서 지혜로써 보아 번뇌들이 다하고 지혜로써 그것을 꿰뚫어 아는 자를 단계 지어지지 않은 혜해탈자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DN 2.20-사문과경)에 의하면, 초선(初禪) 등을 성취해 머무는 것은, 초선(初禪)의 예를 들면,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합니다. 온몸 어디라도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라고 하여 성취해 머무는 삼매의 상태가 온몸 가득 경험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huṭa: pervaded; permeated; spread with. (pp. of pharati)


(AN 9.45-양면해탈자 경)은 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물고, 그와 같은 그 경지를 거듭 몸으로 닿아 머물면서(yathā yathā ca tadāyatanaṃ tathā tathā naṃ kāyena phusitvā viharati), 지혜로써 그것을 꿰뚫어 아는 자를 단계 지어진 양면해탈자라고 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해 머물면서 지혜로써 보아 번뇌들이 다하고, 그와 같은 그 경지를 거듭 몸으로 닿아 머물면서, 지혜로써 그것을 꿰뚫어 아는 자를 단계 지어지지 않은 양면해탈자라고 정의합니다. 


• phusitvā: having touched; having reached; having attained. (abs. of phusati)


※ In this meaning[to attain, to reach] it is very closely related to ‘pharati’ ~


이렇게 phuṭa(pp. of pharati)로써 설명되는 혜해탈과 phusitvā(abs. of phusati)로써 설명되는 양면해탈에서 pharati와 phusati의 두 단어는 구분되어야 하는데, 그 의미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불교계의 형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혜해탈자와 양면해탈자 사이에는 삼매를 성취하여 머묾에 속하는 phuṭa(pp. of pharati)의 한 면에 더해 그 머묾 가운데 진행되는 phusitvā(abs. of phusati)의 차별되는 다른 한 면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혜해탈자와 양면해탈자를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혜해탈자에 속하는 phuṭa(pp. of pharati)는 어떻게 설명됩니까? (DN 2.20-사문과경)은 사선(四禪)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는데, 각각의 삼매를 성취해 머물 때 몸에 의해 경험되는 느낌입니다.


• 초선(初禪) ㅡ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합니다. 온몸 어디라도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 제이선(第二禪) ㅡ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합니다. 온몸 어디라도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기쁨이 가라앉은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합니다. 온몸 어디라도 기쁨이 가라앉은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ṃ hoti).


•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이 몸을 청정하고 아주 깨끗한 심(心)으로 미치게 하고서 앉아 있습니다. 온몸 어디라도 청정하고 아주 깨끗한 심(心)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ṃ hoti).


반면에, 양면해탈자를 설명하는 phusitvā(abs. of phusati)는 무엇이길래 phuṭa(pp. of pharati)와는 다른 한 면을 설명하는 것입니까? 혜해탈자는 삼매를 닦을 때 각각의 단계 지어진 삼매를 성취해 머물면서 그 상태를 느낌의 측면에서 몸으로 경험하고, 그 단계 지어진 만큼에 해당하는 번뇌를 부숩니다. 그래서 번뇌가 부서지는 만큼 번뇌로부터 해탈(解脫-vimutti)합니다. 그렇다면 양면해탈의 경우는 번뇌가 부서지는 해탈(解脫-vimutti)과 다른 한 측면을 수반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면해탈자와 혜해탈자를 설명하는 경으로는 (MN 70-끼따기리 경)도 있는데, 사쌍팔배(四雙八輩)의 성자를 일곱 부류의 사람으로 다시 분류합니다. ㅡ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 혜해탈자(慧解脫者), 몸으로 실현한 자, 견해를 성취한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


(MN 70-끼따기리 경)은 양면해탈자와 혜해탈자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 ㅡ ‘색(色)을 넘어선 무색(無色)의 평화로운 해탈들을 몸으로 닿아 머물고,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이 다한다(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 혜해탈자(慧解脫者) ㅡ ‘색(色)을 넘어선 무색(無色)의 평화로운 해탈들을 몸으로 닿아 머물지 못하지만,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이 다한다(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우선 해탈(解脫)로 번역한 단어가 vimutti가 아니고 vimokkha라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해탈(解脫-vimutti)과 해탈(解脫-vimokkha)의 차이는 잘 설명되지 않았는데, 혜해탈자의 해탈(解脫-vimutti)과 양면해탈자의 다른 한 측면으로의 해탈(解脫-vimokkha)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혜해탈자는 해탈(解脫-vimokkha) 없이 해탈(解脫-vimutti)한 한 면의 해탈자이고, 양면해탈자는 해탈(解脫-vimokkha)의 측면과 해탈(解脫-vimutti)의 측면을 모두 갖춘 양면의 해탈자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해탈(解脫-vimokkha)은 의성(意成) 또는 상성(想成)과 연결됩니다. 의성신(意成身) 즉 의성(意成)의 몸을 가진 의성(意成)의 아(我)는 거친 아(我)로부터의 벗어남 즉 해탈이고, 상성(想成)의 아(我)는 의성(意成)의 아(我)로부터의 벗어남 즉 해탈이라는 이해입니다. 이때, phusitvā: having touched; having reached; having attained. (abs. of phusati)의 의미를 닿음(having touched)으로 해석하지 않고 성취-실현(having reached-having attained)으로 해석하면 이런 이해는 더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다시 번역됩니다.


•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 ㅡ ‘색(色)을 넘어선 무색(無色)의 평화로운 해탈들을 몸으로 실현하여 머물고,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이 다한다(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 혜해탈자(慧解脫者) ㅡ ‘색(色)을 넘어선 무색(無色)의 평화로운 해탈들을 몸으로 실현하여 머물지 못하지만,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이 다한다(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마찬가지로 ubhatobhāgavimuttasuttaṃ (AN 9.45-양면해탈자 경)도 


• 단계 지어진 양면해탈자 ㅡ 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물고, 그와 같은 그 경지를 거듭 몸으로 실현하여 머물면서(yathā yathā ca tadāyatanaṃ tathā tathā naṃ kāyena phusitvā viharati), 지혜로써 그것을 꿰뚫어 아는 자


• 단계 지어지지 않은 양면해탈자 ㅡ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해 머물면서 지혜로써 보아 번뇌들이 다하고, 그와 같은 그 경지를 거듭 몸으로 실현하여 머물면서, 지혜로써 그것을 꿰뚫어 아는 자 


라고 수정됩니다. 그러면 양면해탈자는 해탈(解脫-vimutti)의 측면에 더해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 살고 있는 신(神)들의 존재 상태[saññāmaya-상성(想成)]를 몸으로 실현하여 머묾 즉 무색계(無色界) 신(神)들과 같은 몸을 만들어 무색계(無色界) 세상을 직접 경험한다, 그들과 직접 만난다는 의미로 잘 설명됩니다. 이것이 양면해탈(兩面解脫)이 가지는 해탈(解脫-vimokkha)의 측면입니다. 그래서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는 ①구차제정(九次第定)의 삼매 위에서 번뇌를 부수는 해탈(解脫-vimutti)의 과정과 ②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높은 세상을 직접 몸으로 찾아가 만나는 해탈(解脫-vimokkha)의 과정을 양면으로 닦는 수행자라고 설명됩니다.


한편, 해탈(解脫-vimokkha)은 여러 용례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 의미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경우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걸쳐 몸으로 실현해야 하는 팔해탈(八解脫)의 용례로 나타나는데, 여기의 의미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이런 이유 때문에 양면해탈자의 해탈(解脫-vimokkha)이 무색계(無色界)뿐만 아니라 색계(色界)의 실현을 포함한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이런 이해는 (MN 70-끼따기리 경)의 일곱 부류의 사람을 설명해줍니다.


• 몸으로 실현한 자(kāyasakkhī) ㅡ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는 몸으로 실현하였지만, 번뇌가 다하지 못해 아직 깨닫지 못한 수행자


※ 기존의 해석[kāyasakkhī: he who has realised the final truth (through the body). (adj.)]에서 kāyasakkhī(몸으로 실현한 자)는 아라한에 포함하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해탈(解脫-vimutti)의 미비로 아직 아라한을 성취하지 못한 수행자입니다.


• 견해를 성취한 자(diṭṭhippatta) ㅡ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몸으로 실현하지 못한 자들 가운데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의 일부가 다하고, 여래가 선언한 법들을 지혜로써 충분히 이해하고 꿰뚫는 수행자


• 믿음으로 해탈한 자(saddhāvimutta) ㅡ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몸으로 실현하지 못한 자들 가운데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의 일부가 다하고, 여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고, 뿌리내리고, 확립된 수행자


• 법을 따르는 자(dhammānusārī) ㅡ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몸으로 실현하지 못한 자들 가운데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의 일부가 다하고, 여래가 선언한 법들을 지혜로써 웬만큼 이해하는 수행자로서 다섯 가지 기능을 갖춘 자


• 믿음을 따르는 자(saddhānusārī) ㅡ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몸으로 실현하지 못한 자들 가운데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의 일부가 다하고, 여래에 대한 믿음이 웬만하고, 사랑이 웬만한 수행자로서 다섯 가지 기능을 갖춘 자

의성신과 양면해탈자.jpg

5. 의성(意成)의 기타 용례


1) (SN 35.77-길들이지 않고 보호하지 않음 경)


papañcasaññā itarītarā narā,

papañcayantā upayanti saññino;

manomayaṃ gehasitañca sabbaṃ,

panujja nekkhammasitaṃ irīyati.


희론(戱論)의 상(想)을 가진 이런저런 인간들은

희론(戱論)으로 접근하는 상(想)을 가진 자들이다.

세속과 연결된 모든 의성(意成)을 떨치고

출리와 연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 


2) 진화하는[=소멸하는] 세상과 퇴보하는[=자라나는] 세상 ㅡ (DN 1-범망경), (DN 24-빠띠까경), (DN 27-처음에 대한 앎 경), (AN 10.29-꼬살라 경1)

 

“hoti kho so, bhikkhave, samayo, yaṃ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ayaṃ loko saṃvaṭṭati. saṃvaṭṭamāne loke yebhuyyena sattā ābhassarasaṃvattanikā honti. te tatt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ṃ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ṃ dīghamaddhānaṃ tiṭṭhanti.


비구들이여, 긴 세월이 지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이 진화하는[=소멸하는] 때가 있다. 진화하는[=소멸하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으로 이끌린다. 의성(意成)인 그들은 거기서 희열이 음식이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hoti kho so, bhikkhave, samayo, yaṃ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ayaṃ loko vivaṭṭati. vivaṭṭamāne loke suññaṃ brahmavimānaṃ pātubhavati. atha kho aññataro satto āyukkhayā vā puññakkhayā vā ābhassarakāyā cavitvā suññaṃ brahmavimānaṃ upapajjati. so tattha hoti manomayo pītibhakkho sayaṃpabho antalikkhacaro subhaṭṭhāyī, ciraṃ dīghamaddhānaṃ tiṭṭhati.


비구들이여, 긴 세월이 지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이 퇴보하는[=자라나는] 때가 있다. 퇴보하는[=자라나는] 세상에 비어있는 범천(梵天)의 하늘 궁전이 나타난다. 그때 어떤 중생이 수명의 부서짐 때문이거나 공덕의 부서짐 때문에 광음천(光音天)의 무리로부터 떨어져 비어있는 범천(梵天)의 하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 의성(意成)이고, 희열이 음식이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3) 범천의 세상에 가는 두 가지 방법 ㅡ (SN 51.22-쇠 구슬 경)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신통(神通)에 의해 의성신(意成身)으로 범천(梵天)의 세상에 가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아난다여, 나는 신통(神通)에 의해 의성신(意成身)으로 범천(梵天)의 세상에 간 것을 기억한다.” “또한,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이 몸으로 신통(神通)에 의해 범천(梵天)의 세상에 가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아난다여, 나는 신통(神通)에 의해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이 몸으로 범천(梵天)의 세상에 간 것을 기억한다.”


4) 의성신(意成身)에 의해, 신통(神通)으로 오심 ㅡ (AN 8.30-아누룻다 대인의 생각 경)


;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접은 팔을 펴거나 편 팔을 접을 것이다.」


“mama saṅkappamaññāya, satthā loke anuttaro.

manomayena kāyena, iddhiyā upasaṅkami.


나의 사유를 아신 뒤에 세상의 위 없는 스승은

의성신(意成身)에 의해, 신통(神通)으로 오셨다.


“yathā me ahu saṅkappo, tato uttari desayi.

nippapañcarato buddho, nippapañcaṃ adesayi.


나에게 있었던 사유와 관련해서 그것을 넘어선 것을 말씀하셨다. 

희론 없음을 좋아하는 부처님은 희론 없음을 말씀하셨다.


“tassāhaṃ dhammamaññāya, vihāsiṃ sāsane rato.

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ṃ buddhassa sāsanan”ti.  


그런 나는 법(法)을 안 뒤에 가르침에 대해 기뻐하면서 머물렀다.

삼명(三明)을 성취하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성하였다.


Comments

대원행 2024.07.16 22:04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1_04&wr_id=60 참조 (상윳따 니까야 제1권 ― (SN 4.18-탁발 음식 경)[탁발 음식을 얻지 못한 부처님 - 희열을 음식으로 행복하게 머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