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거슬림(byābajjha)을 전후한 세 개의 동사
; rajjati-lubbhati-dussati-muyhati와는 다른 자리 즉 rajjati-lubbhati-dussati 이후 그 연장선 위에서 탐(貪)과 진(嗔)의 연장되는 의미를 동사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들입니다. 탐(貪)과 진(嗔)의 머리에 해당하는 것은 간탐(慳貪-abhijjhā)과 진에(瞋恚-byāpāda)입니다. 그래서 치(癡)를 근저에 둔 탐(貪)과 진(嗔)에서 간탐(慳貪)과 진에(瞋恚)로 연결되는 중간 과정에 주목하여 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림 생략)
sārāga 즉 친밀을 생겨나게 하는 과정인 「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물다.」는 sārajjati(친밀하다)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sārajjati(친밀하다)에 대응하여 거슬림을 생겨나게 하는 과정은 byāpajjati입니다.
그런데 byāpajjati는 sārajjati보다 더 넒은 영역에서 사용됩니다. 거슬림을 생겨나게 하는 과정에 더해 거슬림 이후 진에(瞋恚)로 연결되는 과정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때, sārajjati의 측면에서 거슬림 이후 진에(瞋恚)까지의 과정에 대응하는 용어 즉 친밀의 다음 과정을 지시하는 용어는 adhimuccati입니다.
그래서 친밀과 거슬림을 전후하는 동사는 세 개가 있습니다. 망(望)의 성질 위에서 친밀을 생겨나게 하는 sārajjati와 친밀에서 간탐(慳貪)으로 전개되는 과정인 adhimuccati 그리고 진(嗔)의 성질 위에서 거슬림을 거쳐 진에로 전개되는 전체 과정을 나타내는 byāpajjati입니다.
이것은 탐(貪)-망(望)-진(嗔)의 관계와 견주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삶의 전체 영역에 적용되는 즐거운 느낌의 전개에서는 심(心)의 전후 관계를 탐(貪)과 망(望)으로 차별하여 나타내지만, 제한적 삶의 영역에 적용되는 괴로운 느낌의 전개에서는 심(心)의 전후 관계를 차별하지 않고 진(嗔)으로 나타내는 것과 같습니다.
1. byāpajjati의 사전적 의미
PTS본에서는 vyāpajjati로 표기되는 byāpajjati는 사전적으로 이런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근본경전연구회는 교리적 이해 위에서 그 의미를 해석하고, 적절한 번역어를 부여하였습니다.
• vyāpajjati [vi+āpajjati] (instr.) to go wrong, to fail, disagree; to be troubled; also (trs.) to do harm, to injure — pp. vyāpanna. — Caus. vyāpādeti.
; ①잘못되다. 실패하다. 동의하지 않다. 다르다. 일치하지 않다. 고생하다. 애먹다.
②해치다. 가해하다. 곯리다. 상하게 하다. 모해하다. 음해하다. 상처를 입히다. 다치게 하다. 손상하다. 해치다. 화나게 하다. 학대하다.
• vyāpajjanā (f.) [fr. vyāpajjati] injuring, doing harm, ill-will
; ①실패. ②분노. 악의. 가해
• vyāpajjha (adj. — nt.) [perhaps grd. of vyāpajjati; but see also avyāpajjha] to be troubled or troubling, doing harm, injuring; only neg. avyāpajjha (& abyābajjha) (adj.) not hurting, peaceful, friendly; (nt.) kindness of heart Cp. byāpajjha & vyābādha etc.
; ①괴롭히는. ②해치는.
※ vyāpajjati의 사역형은 vyāpādeti인데 용례는 없습니다. 대신 byābādheti(pl. byābādhenti)의 용례가 발견되는데, vyāpajja-vyāpajjha-vyābajjha가 같은 단어인 점을 감안하면, byābādheti가 vyāpajjati의 사역형이어서 ‘거슬리게 하다’의 의미를 가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vyāpatti (f.) [fr. vyāpajjati] injury, harm; doing harm, malevolence
; ①해. 가해. ②악의(悪意). 진해(瞋害)
• vyāpanna (adj.) [pp. of vyāpajjati] spoilt, disagreeing, gone wrong; corrupt; only with citta, i. e. a corrupted heart, or a malevolent intention; adj. malevolent See also byāpanna & viyāpanna.
; ①잘못된. ②악의 있는. 화가 난.
• vyāpāda [fr. vyāpajjati. See also byāpāda] making bad, doing harm: desire to injure, malevolence, ill — will — Cp. avyāpāda.
; ①가해. 위해. ②악의(悪意). 분노. 성냄. 진에(瞋恚).
2. byāpajjati의 번역어 선택
byāpajjati는 네 가지 형태로 용례가 나타납니다.
1) 사랑스러운 것과 사랑스럽지 않은 것의 대응 ㅡ ①거슬리다
• piyarūpe rūpe sārajjati, appiyarūpe rūpe byāpajjati ㅡ mahātaṇhāsaṅkhayasuttaṃ (MN 38)
사랑스러운 색(色)에 대해 친밀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색(色)에 대해 거슬린다.
2) 사랑스러운 것과 사랑스럽지 않은 것의 대응 ㅡ ② (?) → 「5. byāpajjati의 번역어 선택 – 2)」 참조.
• piyarūpe rūpe adhimuccati, appiyarūpe rūpe byāpajjati ㅡ lohiccasuttaṃ (SN 35.115), avassutapariyāyasuttaṃ (SN 35.196), dukkhadhammasuttaṃ (SN 35.197), chappāṇakopamasuttaṃ (SN 35.200),
사랑스러운 색(色)에 대해 (?)고, 사랑스럽지 않은 색(色)에 대해 (?)다.
3) 기타
• abhisajjati kuppati byāpajjati patiṭṭhīyati kopañca dosañca appaccayañca pātukaroti. 화를 내고, 동요하고, 짜증내고, 저항한다. 성급함과 진(嗔)과 의혹을 드러낸다. ㅡ cūḷakammavibhaṅgasuttaṃ (MN 135), vajirūpamasuttaṃ (AN 3.25), jigucchitabbasuttaṃ (AN 3.27), mallikādevīsuttaṃ (AN 4.197), dukkathāsuttaṃ (AN 5.157),
• haññati byāpajjati 죽임을 당하고 실패한다. ㅡ paṭhamayodhājīvasuttaṃ (AN 5.75)
기타의 용례는 거슬림이 좀 더 표면화되고 확장된 상황을 적용해 ‘짜증내다’ 또는 ‘실패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byāpajjati의 의미는 사랑스러운 것과 사랑스럽지 않은 것의 대응 관계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랑스러운 색(色)에 대해서는 탐(貪)의 연장선 위에서 친밀합니다(sārajjati). 반면에, 사랑스럽지 않은 색(色)에 대해서는 진(嗔)의 연장선 위에서 거슬립니다(byāpajjati). 그런데 이 문장은 sārajjati를 adhimuccati로 대체하여 다시 나타납니다. 탐(貪)의 연장선 위에서 sārajjati와 다른 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진(嗔)의 연장선 위에서는 byāpajjati가 이 두 동사와 모두 대응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견주어 보았듯이, 경은 전반적으로 탐(貪)과 관련한 삶의 과정을 자세히 구분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sārajjati 이후 adhimuccati는 ‘기울다’로, 여기에 대응하는 byāpajjati는 ‘거부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세 개의 동사가 byāpajjati에 의해 중첩된 연결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세 개의 동사는 모두 그 의미를 검토해야 합니다.
3. sārajjati의 용례
; 거슬림과의 대응 관계 또는 매력(魅力)-위험(危険)-해방(解放)의 측면에서 염오(厭惡)와의 대응 관계가 주목됩니다. 그 외에는 대응 관계 없이 나타나는 몇 개의 용례가 있습니다.
1)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사랑스러운 색(色)들을 친밀하고(piyarūpe rūpe sārajjati), 사랑스럽지 않은 색(色)들에게 거슬린다(appiyarūpe rūpe byāpajjati). (MN 38-애(愛) 부서짐의 큰 경)
2) [매력(魅力)-위험(危険)-해방(解放)] 매력이 없다면 중생들은 친밀하지 않을 것이다(na sārajjeyyuṃ). 매력이 있기 때문에 중생들은 친밀한다(sārajjanti). ~ 위험이 없다면 중생들은 염오하지 않을 것이다(na nibbindeyyuṃ).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염오한다. (nibbindanti).(SN 14.33-만약 없다면 경)/(SN 14.34-오로지 괴로움 경)/(SN 22.28-매력(魅力) 경3)/(SN 22.60-마할리 경)/(SN 35.17-만약 매력(魅力)이 없다면 경1)/(SN 35.18-만약 매력(魅力)이 없다면 경2)/(AN 3.106-매력(魅力) 경2)
3) 비구들이여, 안(眼)-색(色)들-안식(眼識)-안촉(眼觸)-안촉(眼觸)의 조건으로부터 생기는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의 수(受)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할 때(ajānaṃ apassaṃ yathābhūtaṃ) 안(眼)-색(色)들-안식(眼識)-안촉(眼觸)-안촉(眼觸)의 조건으로부터 생기는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의 수(受)에 대해 친밀한다. (sārajjati).(MN 149-육처(六處)에 속한 큰 경)
4) 비구들이여, 그 쓸모없는 자는 ‘어머니는 아들에 대해 친밀하지 않아야하고, 아들은 어머니에 대해 친밀하지 않아야 한다(na mātā putte sārajjati, putto vā pana mātarī).’라고 생각하는가?(AN 5.55-어머니와 아들 경)
5) 그러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색(色)들을 참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좋아하기 마련인 색(色)에 대해 친밀한다(rajanīye rūpe sārajjati). 심(心)이 삼매에 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색(色)들을 참지 못한다. (AN 5.139-참지 못함 경)
6) 비구들이여, 긴 노랫소리에 의해 법을 말하는 자에게 다섯 가지 위험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자신도 그 소리에 대해 친밀하고, 남들도 그 소리에 대해 친밀한다(attanāpi tasmiṃ sare sārajjati, parepi tasmiṃ sare sārajjanti). 장자들도 ‘우리가 노래하듯이 고따마의 아들인 사문들도 노래를 한다.’라고 짜증을 낸다. 노래와의 어울림을 갈망하는 자에게 삼매가 깨어진다. 후대의 사람들이 견해를 뒤따른다. 비구들이여, 긴 노랫소리에 의해 법을 말하는 자에게 이런 다섯 가지 위험이 있다. (AN 5.209-노랫소리 경)
4. adhimuccati의 용례
• adhimuccati: (adhi + muc + ya)
1. to be drawn to(끌리다), feel attached to(붙들려있다) or inclined towards(기울어진), to indulge in(탐닉하다)
2. to become settled(정착하다), to make up one's mind as to (마음을 정하다/결정하다/결심하다), to become clear about(명료해지다/분명히 안다)
3. to take courage(용기를 내다), to have faith(믿음을 가지다)
4. of a spirit, to possess, to enter into a body
1) ‘기울다’의 용례
• piyarūpe rūpe adhimuccati, appiyarūpe rūpe byāpajjati 사랑스러운 색(色)에 대해 기울고, 사랑스럽지 않은 색(色)에 대해 거부한다. (SN 35.115)/(SN 35.196)/(SN 35.197)/(SN 35.200),
; 의업(意業)에 속한 간탐(慳貪)과 진에(瞋恚) 또는 불간탐(不慳貪)과 부진에(不瞋恚)로의 전개를 보여줍니다.
• 기타 adhimuccamāno/adhimuccitvā/anadhimucchito 등의 격변화/활용을 통해 여러 경들에서 그 용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들에 따라 여러 형태로 번역할 수 있지만, 근본적 의미는 ‘심(心)이 그 대상에게로 기울다/가까이 가다’입니다.
; (SN 22.55-감흥 경)/(AN 7.16-무상(無常)을 이어 보는 자 경)/(AN 7.17-고(苦)를 이어 보는 자 경)/(AN 7.18-무아(無我)를 이어 보는 자 경)/(AN 7.19-열반 경)/(AN 7.95-96-622-공양 받을만함 품)/(MN 120-행(行)에 의한 태어남 경)/(MN 127-아누룻다 경)/(MN 101-데와다하 경)
2) ‘명료해하다/분명히 안다’의 용례
• na kaṅkhati na vicikicchati adhimuccati sampasīdati 불확실해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분명히 알고, 기뻐한다. (MN 16-심(心)의 황폐 경)/(AN 10.14-심(心)의 황폐 경)
• evametaṃ, bhikkhave, netaṃ aññathā. saddahatha me taṃ, bhikkhave, adhimuccatha, nikkaṅkhā ettha hotha nibbicikicchā. esevanto dukkhassā”ti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렇다. 그것은 다름이 없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나의 말을 믿고,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기에 의심하지 말고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끝이다. (SN 12.51-완전한 조사 경)
• yo ime dhamme evaṃ saddahati adhimuccati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분명히 아는 자 (SN 25.1~10)들어감 상윳따의 경 열 개
• tassa evaṃpaṭipannassa tabbahulavihārino āyatane cittaṃ pasīdati. sampasāde sati etarahi vā (āneñjaṃ) samāpajjati paññāya vā adhimuccati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taṃsaṃvattanikaṃ viññāṇaṃ assa (āneñj)ūpagaṃ. 이렇게 실천하고 거기에 많이 머무는 그에게 심(心)은 그 경지에 대해 분명해진다. 안정이 있을 때 여기에서 흔들림 없음을 증득한다. 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그의 식(識)이 흔들림 없는 세상에 태어남으로 이끌릴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고 지혜로써 분명히 안다. (MN 106-흔들림 없음에 적합함 경)
3) ‘믿음을 가지다’의 용례
• cittaṃ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adhimuccati 심(心)은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하고 믿음을 가진다. (MN 28-코끼리 발 비유의 큰 경)/(MN 121-공(空)에 대한 작은 경)/(AN 4.178-마을 입구에 있는 연못 경)
•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parassa vaṇṇe vā avaṇṇe vā bhāsiyamāne taṃ khippaññeva adhimuccitā hoti. evaṃ kho, bhikkhave, puggalo ādheyyamukho hoti.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남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을 즉시 믿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입으로 받는다. (AN 5.141-멸시 경)
4) ‘결정하다’의 용례 ㅡ 변하게 하는 신통(神通)
• atha kho āyasmā pilindavaccho rañño māgadhassa seniyassa bimbisārassa pāsādaṃ suvaṇṇanti adhimucci. so ahosi sabbasovaṇṇamayo. 그러자 삘린다왓차 존자는 마가다의 왕 세니야 빔비사라의 성(城)이 황금이 되라고 마음을 정했다. 그 성은 모두 황금으로 이루어진 것이 되었다. (pārājikapāḷi, 4. nissaggiyakaṇḍaṃ, 3. pattavaggo, 3. bhesajjasikkhāpadaṃ-율장 제1권 상실죄법, 3.발우 품, 3.약품에 대한 학습계율)
• “bhagavatā kho, bhante,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ākaṅkhamāno ca, bhante, bhagavā himavantaṃ pabbatarājaṃ suvaṇṇaṃ tveva adhimucceyya suvaṇṇañca panassā”ti.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사여의족(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계속 유지하고, 실천하고, 철저히 대응했습니다. 그래서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산의 왕 히말라야가 황금이 되기를 바라면서 결정하기만 하면 황금의 산이 될 것입니다.” (SN 4.20-통치 경)
• ākaṅkhamāno, āvuso, bhikkhu iddhimā cetovasippatto amuṃ dārukkhandhaṃ pathavītveva adhimucceyya. 도반들이여, 신통이 있고 심(心)의 힘을 성취한 비구는 바라기만 하면 이런 나뭇더미를 단지 땅이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AN 6.41-나뭇더미 경)
5. byāpajjati의 번역어 선택 – 2)「거슬리다 → 거부하다」
3개의 단어에 대한 용례에 의하면, byāpajjati는 sārajjati(친밀하다)에 의한 sārāga(친밀)의 과정에 대응하여 ‘거슬리다’의 의미를 가지고 byābajjha(거슬림)의 과정을 진행합니다. 그러고 나면 이어서 adhimuccati(기울다)에 의한 abhijjhā(간탐)의 과정에 대응하여 byāpāda(진에)의 과정을 진행하는데, ‘기울다’의 의미를 고려하여 ‘거부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림 생략)
그러면 앞의 ‘1) 사랑스러운 것과 사랑스럽지 않은 것의 대응’은 이렇게 번역됩니다.
• piyarūpe rūpe sārajjati, appiyarūpe rūpe byāpajjati ㅡ mahātaṇhāsaṅkhayasuttaṃ (MN 38)
사랑스러운 색(色)에 대해 친밀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색(色)에 대해 거슬린다.
• piyarūpe rūpe adhimuccati, appiyarūpe rūpe byāpajjati ㅡ lohiccasuttaṃ (SN 35.115), avassutapariyāyasuttaṃ (SN 35.196), dukkhadhammasuttaṃ (SN 35.197), chappāṇakopamasuttaṃ (SN 35.200),
사랑스러운 색(色)에 대해 기울고, 사랑스럽지 않은 색(色)에 대해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