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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取)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며 1

고요2 0 217 2018.09.22 20:32

이곤이는 다음 말씀들의 뜻을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유(有)를 조건으로 생(生)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존재(有)인가? 비구들이여, 세 가지 존재가 있나니 욕유(慾有), 색유(色有), 무색유(無色有)(욕계의 존재, 색계의 존재, 무색계의 존재)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존재라 한다.’(S12:2)
‘아난다여, 욕계(慾界)의 보(報)를 가져오는 업(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욕계의 존재를 천명할 수 있는가?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식(識)은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저열한 [욖]계에 식을 머물게 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再有)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중간의 [색]계, 수승한 [무색]계도 그러함)’(A3:76)
‘비구들이여, 만약 식식(識食)에 대한 탐(貪)이 있고 난디(즐김)가 있고 갈애가 있으면 그때 식(識)의 머묾과 증대가 있다. 식의 머묾과 증대가 있을 때 명색(名色)의 참여가 있다. 명색의 참여가 있을 때 행(行)의 증장이 있다. 행의 증장이 있을 때 미래에 다시 존재(有)가 되어 태어남(生)이 있다. 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이 있을 때 미래의 생(生)과 노사(老死)가 있다. 미래의 생과 노사가 있을 때, 비구들이여, 슬픔과 함께하고 고뇌와 함께하고 절망과 함께하는 그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S12:64)

 
그러던 어느 날 이곤이는 ‘취(取)가 있을 때 유(有)가 있으며, 취를 조건으로 하여 유가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취가 무슨 뜻인지를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취에 대해 물었습니다. 누구는 ‘올바르지 못한 집착’이 취라고 했고, 누구는 ‘애(愛, 갈애)가 더 진행되어 심화된 것(갈애는 갈애인데 아주 강력한 갈애)’ 또는 ‘강하게 거머쥐는 것’이 취라고 했고, 누구는 ‘대(對)하는 모든 경계에 대해 집착하여 가지려 하는 것’을 취라고 했고, 또 누구는 ‘좋아하면 취하고 싫어하면 버리는데,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자꾸 하여 집착하게 된 것(좋아하면 자꾸 하게 되어 집착함)’을 취라고 하면서 노름에 빠지거나 술꾼이 되거나 ‘~광’이 되는 것이 다 취의 한 유형이라고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
 
이곤이는 사람들이 들려준 말을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들려준 사람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자꾸 하게 되어’ 나쁜 일에 빠지는 경우를 자주 보았습니다. 한두 번만 했을 때는 ‘아차, 이러면 안 돼.’ 하면서 노름이나 술 마시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좋아해서 자꾸 하게 되면 습관으로 굳어져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곤이는, 사람들이 나쁜 쪽의 일을 좋아해서 자꾸 하게 되어 습관으로 굳어지는 것, 이것이 취가 아닐까 하고 그쪽으로 계속 뜻을 생각했습니다.
 
나라에서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정도전과 이방원은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려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고 서로 협력하는 정치적인 동지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을 건국 하고나서는 두 사람 사이가 멀어져 갔습니다. 개국 공신을 책정할 때 많은 신하들이 공신이 되어 토지와 노비를 하사받았지만 민심이 좋지 않아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은 한 사람도 공신에 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태조 이성계는 11살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서열로 보나 덕으로 보나 공으로 보나 방석이 세자가 될 수가 없었는데도 ... (반면 이방원은 고려에서 과거를 보아 문과에 급제했고 관리가 되어 중앙 정계 소식에도 정통했고 조선을 세우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왕자였음) 그리고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왕은 존재하되 재상의 역할이 막강한 국가 체제’를 이루려는 원대한 포부, 모든 국정은 재상이 담당하는 정치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원은 정도전의 이런 꿈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고려에서 권력이 신하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폐해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재상 중심의 국가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정도전은 요동 정벌을 위해 왕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병을 모두 한 군데 모아놓고 진법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왕자와 공신들이 진법 훈련에 참여하지 않자 정도전이 본보기로 태형을 쳤는데, 이방원에게 직접 치지는 못하고 이방원의 휘하에게 매질을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 – 개국 공신에서 빠짐, 방석이 세자로 책봉됨, 정도전이 재상 중심의 국가를 꿈꿈, 왕자들의 사병을 혁파함 – 을 겪다가 마침내 정도전을 제거해야 헸다고 결심하고는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고, 방석과 방번을 죽였습니다. 태조는 왕자들이 서로 죽이는 것 등을 보고는 왕위를 방과(정종)에게 물려주고 자신이 자랐던 함경도 함흥으로 갔습니다. 그 사이에 방간이 이방원을 치려다가 오히려 진압되고 방간은 유배 갔습니다. 이방원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내가 전면에 나서야겠다.’ 하여 정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제3대 왕이 되었습니다. (kbs 역사 저널 그날 등을 보고)
 
어느 날 ○○사에서 열리는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법사님이 경을 읽었습니다.
“...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취(取)인가? 비구들이여, 네 가지 취가 있나니,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취라 한다.” (S12:2)
“... 그러면 도반들이여, 무엇이 집착이고, 무엇이 집착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집착의 소멸이고, 무엇이 집착의 소멸로 이끄는 길걸음입니까? 도반들이여, 네 가지 집착이 있나니 소유적 사유의 집착[욕취(慾取)], 견해의 집착[견취(見取)], 계율과 의례의식의 집착[계금취(戒禁取)], 자아의 교리의 집착[아어취(我語取)]입니다. 갈애[애(愛)]의 집(集)이 취(取)의 집(集)이고, 애(愛)의 멸(滅)이 취(取)의 멸(滅)이고, 이러한 성스러운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도(道)가 취(取)의 멸(滅)로 이끄는 길걸음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ㅡ 정견(正見) … 정정(正定). .,.” (M9)
 
이곤이는 집에 돌아와서 이 말씀들의 뜻을 알려고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먼저 욕취(欲取)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욕(慾)은 까마를 번역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까마는 ‘저기 대상들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색(形色)들, 귀에 들리는 소리들, 코로 맡아지는 냄새들, 혀로 맛보아지는 맛들, 몸에 닿는 감촉들이 있습니다. 까마는 그런 대상들을 <나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사유입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욕취(慾取)란 ‘까마(慾)를 강하게 거머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곤이는 까마를 강하게 거머쥐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했습니다. ‘눈으로 보아 마음에 드는 여인이나 저택이나 옷이나 물건들을 내 것 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가집니다. 귀로 들어서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목소리나 음악소리를 내 것 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 소리를 가집니다. 코로 맡아서 아름다운 음식 냄새나 향기 향수의 냄새를 내 것 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 냄새를 가집니다. 혀로 맛보아서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음식 맛을 내 것 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 맛을 가집니다. 몸에 닿는 아름다운 부드러움과 기분 좋은 감촉들을 내 것 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 감촉들을 가집니다.’ 이렇게 생각해나가다 보니 ‘소유적 사유를 강하게 거머쥐는’ 욕취란 배우지 못한 대부분의 욕계 중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바로 일상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곤이도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좋아하는 색성향미촉을 내 것 하려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가지려고 아등바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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