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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取)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며 2

고요2 0 219 2018.09.29 07:29

이곤이는 욕계(慾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욕계는 까마(慾)를 특징으로 하는 세계였습니다. 까마는 색성향미촉을 내 것 하려고 사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욕계의 존재들은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형상들, 귀로 들리는 아름다운 소리들, 코로 맡아지는 아름다운 냄새들, 혀로 맛보아지는 아름다운 맛들, 몸에 닿는 아름다운 감촉들을 내 것 하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밖의 대상들을 가질 때 나쁘고 악한 방법으로 얻으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위 하면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 등의 나쁜 세계에 태어나고, 정당한 방법으로 얻고 절제하며 보시하면서 살면 인간이나 하늘 세상에 태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욕계 범부인 이곤이는 마음에 드는 사랑스러운 색성향미촉을 어떻게 소유할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유적 사유를 붙잡아서 놓지 않으면 다른 것에는 별로 마음 쓰이지 않고 오직 그 소유적 사유만 자꾸 취하게 되고 그쪽으로만 계속 행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곤이는 욕취(慾取)란 ‘저기 바깥에 있는 색성향미촉에 대해, 그것에 끌리고 그것들을 <내 것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 내 것 하려는 그 생각을 강하게 거머쥐는 것’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욕취하게 되면 그는 욕계 수준 만큼의 탐진치에 오염된 마음으로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욕취가 있으면 그런 사람은 욕계에 보(報)를 초래하는 업(행위)을 지어서 장차 욕계의 존재가 있게 되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욕취(慾取)가 있으면 욕계의 존재(慾有)가 있고, 유가 있으면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이 있으면 노사가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다음으로 이곤이는 견해에 대한 집착(見取)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습니다. ①배우지 못한 범부는 저기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다운 색성향미촉에 대해서는 : 그것들이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니까 좋은 것이라고 즐거운 것이라고 보게 되고,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언제나 소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②배우지 못한 범부는 ‘저 세상은 없다’거나, ‘화생하는 중생은 없다’거나, ‘업에는 과도 없고 보도 없다’는 견해를 가집니다. ③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신이 배우고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만 옳다고 보고 바른 견해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④배우지 못한 범부는 죽음 이후나 제사에 대해 이상한 견해가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죽어 화장하고 난 후 그 유골가루를 그냥 아무 데나 뿌리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떠다니다가 아무에게 씌기 때문에 꼭 봉분을 하라는 것이거나,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의 나열은 반드시 어떤 규정을 지켜야 하고 제사 지내는 시간은 꼭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경험하고 알고 보고 배우고 사색하여 생긴 견해를 꽉 붙잡는 것이 견해에 대한 집착(見取)이라고 이곤이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많이 배운 범부는 이렇게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①저기 아름다운 색성향미촉은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라고 했습니다. ②‘저 세상은 있다, 화생하는 중생은 있다, 업에는 과와 보가 따른다.’고 했습니다. ③바르게 잘 배운 범부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보고 배우고 듣고 경험한 것들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④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들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바로 다음 생을 받지 죽은 후에 영혼이 있다거나 얼마 간 어디에 머물다가 다시 태어난다거나 제사 음식의 나열과 제사 지내는 시간을 꼭 그 방식대로 그 시간에 해야 한다든가 하는 그런 견해는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면 이것도 견해에 대한 집착(見取)이라고 이곤이는 생각했습니다. 집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바른 견해에도 집착하면 자신이 집착한 것만 보여 남과 다투고 언쟁하면서 칭찬이나 비난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야 했습니다.

 

나라에서도 큰 일이 몇 개 있었습니다. 왕비(원경왕후 민씨)는 이방원(태종)이 왕이 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했고(위기 때마다 이방원을 도와 주고, 사병 혁파 때 무기를 숨겨두고 정도전과의 싸움에 활용, 박포의 부추김으로 방간이 방원을 치려할 때에도 결단을 요구함 ...), 왕비의 동생들도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왔습니다(1차-민무구, 민무질이 무기와 병사로 이방원을 도움, 2차-이때도 민무구, 민무질이 가세하여 이방원을 도움). 그런데 왕이 되자 태종은 후궁을 들이는 문제로 왕비와 불화하더니, 처남들이 세자와 가깝게 지내면서 장차 왕권에 위협이 될 까봐서(태종이 세자에게 양위하려 할 때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고, 태종이 병이 나서 병석에 누웠을 때 몰래 병세를 엿보며 어린 세자를 왕으로 세우고 그 틈을 타서 권력을 잡으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의심하여 민무구 민무질을 잡아 가두고), 또는 그물을 쳐서(?) 처남들을 걸려들게 하여(또 다른 처남들인 민무휼, 민무회를 심하게 고문함) 여지없이 제거했습니다. 그래서 왕비 가문이 멸문지화에 버금가는 큰 화를 당했습니다. (민무구, 민무질은 유배지에서 자살하게 함, 아버지 민제는 자식들을 걱정하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남, 민무휼과 민무회를 유배 보냈는데 유배지에서 두 사람이 자결했다는 보고가 옴, 어머니 송씨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남) 

 

뿐만 아니라 상왕으로 물러난 뒤에 이방원은 사돈(세종대왕의 장인)인 심온을 사사하고 심온의 부인은 노비로 보냈습니다(세종의 장인 심온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많은 신하들이 전별하러 와서 분에 넘칠 정도였고 이때 태종은 심온이장차 권력을 빙자할 까봐서 귀국하는 대로 제거함). 그후 세종은 장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관작을 복귀하고 시호를 내렸습니다. (kbs 역사저널 그날 등을 보고)  

 

어느 날 이곤이는 ‘취착 • 집착 • 잡음’이라고 번역되는 취(取) 중에서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인 계금취(戒禁取)에 대해서 그동안 생각한 것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①많은 사람들은 계율에 대해 저마다 스승을 따라 배우거나 책에서 가르침을 듣고서는, 그것을 자신들의 삶의 지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따라 배우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행하다가, 게으르고 사띠하지 않고 지혜롭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 새 그만 자신이 지키는 계율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①-1 바른 가르침을 배웠다면 거기에 의지해서 계율을 잘 지켜서 자신의 몸의 행위와 말의 행위를 잘 제어하면 되는데, 이제는 그 계율만 강하게 거머쥐고 고집하면서 취착하게 되어, 도리어 계율에 얽매이고 지엽적인 것에 신경 쓰는 경향이 늘어났습니다. ①-2 바르지 않은 스승을 만난 사람들은 그릇된 계율에 집착하여 마치 개처럼 소처럼 행위하고 의식을 행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천상에 태어난다고 믿고서는 기어서 걷거나 핥아서 먹거나 개 울음소리나 소 울음소리를 내는 식이었습니다.

 

②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의례의식에 집착했습니다. 이 의례의식을 잘 거행하면 천상에 태어날 것이라면서 음식을 올릴 때나 제사를 지낼 때나 종교적인 행사를 할 때 복잡한 형식과 절차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의례의식에 집착한 사람들은 천상에 태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 의례의식을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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