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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愛)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며 1

고요2 0 270 2018.10.06 07:14

 12살인 다래는 할머니와 함께 어느 고을의 양반 댁에 사는 노비였습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를 따라 집안 청소와 밭일을 배웠는데 똑똑하고 초롱초롱하고 야무지게 일을 해냈습니다. 주인댁에서는 그런 다래가 대견스러워 아들의 동무로 함께 놀게 해주었습니다. 그 사이 다래는 주인댁의 7살 난 아들 김학이(金學而)를 여러 번 구해주었습니다. 우물에 빠진 것을 구해주고, 장독에 빠진 것을 구해주고, 시장에서 길 잃은 것을 찾아오고, 큰 나무에 올라가서 못 내려오는 것을 안전하게 내려오게 하고, ... 주인댁 마님은 다래를 더욱 예뻐하여 좋은 옷감이나 맛있는 음식을 따로 두었다가 다래 할머니에게 주곤 했습니다. 주인댁 아들도 다래가 고맙고 믿음직스러워 서당에서 무엇을 배워올 때마다 다래에게 그 내용을 들려주고 글자도 알려주었습니다.

 

마님은 다래가 방을 청소하러 올 때마다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전날 서당에서 배운 것들을 어머니 앞에서 말해보라고 했고, 그러면 아들은 훈장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그대로 들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다래는 노비 신분이었지만 글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마님이 다래에게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지금 이 마음 변치 말고 잘 지켜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래는 깜짝 놀라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는데, 마님께 누가 찾아왔다는 기별이 와서 다래는 종종 걸음으로 물러났습니다.

 

또 하루는 다래가 할머니와 함께 밭일을 하고 있는데 웬 노인이 배가 고프다면서 다가왔습니다. 할머니가 다래를 시켜 주먹밥과 물을 드리게 하니 노인이 다 먹고 나서 다래에게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서로 사귀면 그리움이 생기고, 그리움에서 괴로움이 생기네.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집착이 생기고, 집착으로 인해 나를 해치고 남을 해치네.” 알쏭달쏭한 말을 듣고 다래는 할머니에게 무슨 뜻인지를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누구를 사모하는 사람은 그를 그리워하면서 애태우는데 그것은 탐과 즐김이 함께 한 마음(갈애)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하고 애태우면 자연스러워할 사이인데도 어색해지고 또 그런 자신을 책망하는데, 그러면 그것을 보는 남도 신경이 쓰이고 서먹서먹해져서 나와 남 둘 다를 해치게 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은 김학이가 서당에서 돌아오고 있는데, 어제 다래에게 나타났던 그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얘야, 너는 이런 말을 들어보았느냐? ‘취(取)를 조건으로 유(有)가, 유를 조건으로 생(生)이, 생을 조건으로 노사(老死) (등의 수비고우뇌) 가 일어난다.’ 집착(취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있게 되고, 존재를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있게 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과 죽음을 비롯한 온갖 괴로움이 일어난다.” 김학이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고 너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그러면 ‘애(愛)를 조건으로 하여 취(取)가 있게 된다. 즉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집착이 일어난다.’는 말도 듣지 못했겠구나. 그러나 얘야, 이 말들을 잘 기억했다가 틈틈이 그 뜻을 생각해보아라.”고 했습니다. 김곤이는 참 이상한 할아버지시다고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저 말의 뜻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는 세종대왕님께서 잘 다스렸습니다. 후반부에는 세자(문종)가 아버지 세종을 도와 많은 일을 했습니다. 세종이 4군 6진을 개척할 때 세자는 당시에는 신무기였던 화차를 개발하고 실질적으로 활용한 실무자였으며, 측우기의 발명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후 세자가 문종으로 즉위하여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했는데, 그만 병약하시어 2년 4개월 만에 승하하시고, 12살의 단종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단종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셔서 외톨이였습니다. 조정은 문종의 유언을 받은 김종서 황보인 같은 고명대신들과 수양대군을 중심으로 한 종친 세력이 서로 견제하는 중에 김종서가 안평대군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고, 안평대군을 유배 보냈다가 사사했습니다. 단종은 아무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수양대군 세력들의 압력으로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한 단종복위 운동이 일어나 실패하자 단종은 금성대군의 집에 유폐되었고, 그러다가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복위 운동을 하려다가 발각되어 단종은 영월 청령포로 유배 갔습니다. 그러다가 신하들의 요구로 세조는 사약을 내렸고 단종은 사사되었습니다. (kbs 역사저널 그날 등을 보고)
 
그 사이 마님 집에서도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학이가 큰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습니다. 의원도 치료하지 못했고 굿을 해도 낫지 않아서 손쓸 도리가 없었는데, 다래가 노스님에게서 얻은 약이라고 하면서 달여 먹였더니 김학이 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얼마 후에는 다래 할머니가 수명을 다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외톨이가 된 다래를 위해 대감마님은 아들에게 사서를 가르칠 때 함께 배우도록 했습니다. 다래는 똑똑해서 김학이보다 진도가 두 배 빨랐습니다. 몇 년이 지나 다래의 학문이 깊어지자 대감마님은 나중에 김학이를 어느 고을의 ☆☆ 선생에게 데려다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노비문서를 태우고 노비들에게 논 몇 마지기 씩 주면서 풀어주었습니다. 다래에게는 마님의 귀중품과 패물을 주었습니다. 며칠 후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대감마님과 마님이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는 김학이 백부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삼 년 상을 치르는 동안 다래는 곁에서 옛 주인댁 일을 도맡아했습니다.

 

삼 년 상을 치른 얼마 후, 백부님이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김학이가 마중을 갔습니다. 오후가 되자 집안에 있던 다래에게 마을 사람들이 이런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김학이가 풍기단속에 걸려 관군에게 쫓기다가 그만 관군을 살해하고 도망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래는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세 사람, 열 사람이 모두 김학이가 관군을 살해하고 도망쳤다고 했습니다. 다래는 정신없이 김학이를 찾으러 갔습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이리저리 한참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때 웬 노인이 나타나서 평소 그의 행동과 말과 마음 씀이 풍기단속에 해당할 만했는지, 그가 누구를 살해할 만한 사람인지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의 고사 배경 이야기를 응용함)

 

다래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자신이 아는 김학이는 풍기단속에 걸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춘기 때 도련님만 보면 안쓰러워 잘 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도련님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단다. 네가 정답게 웃는 낯으로 대해도 도련님은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어서 고맙구나.’하실 분이란다. 우리 신분이 천하다하여 다르게 대하지 않으신단다.” 했습니다. 이 일이 생각나자 다래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졌습니다. 김학이는 개미 한 마리도 밟지 않으려고 아래로 눈을 뜨고 다닌 사람이었습니다. 다래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옛 주인댁으로 달려갔습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김학이가 백부님을 모시고 와 있었습니다. 백부님은 그동안 대감마님의 부탁으로 이곳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여 ☆☆ 선생이 계시는 곳에 집도 사고 논과 밭도 사놓았다고 했습니다. 백부님께 하직인사를 드린 후, 김학이가 자신은 미숙하니 함께 가주겠는지를 묻자, 다래는 대감마님과 마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게 되었다며 분부를 받들겠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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