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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愛)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며 3

고요2 0 265 2018.10.06 07:24

 김학이는 다래가 들려준, 감각기관의 문을 지킨다는 말뜻을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눈으로 볼 때 안식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의 문을 통해서 여러 가지 많은 마음들이 함께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유익한 마음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해로운 마음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볼 때 정신 차리고 있지 않으면 해로운 마음들이 마구 일어나 색(色)에 대한 갈애가 증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색에 대한 분노도 일어났습니다. 소리를 들을 때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귀의 문을 통로로 해서 해로운 마음들이 일어나, 때로는 소리에 대한 갈애가 되고 때로는 소리에 대한 분노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이나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노(意)의 문을 통해서 해로운 마음들도 일어나 법에 대한 갈애가 증장하기도 하고 법에 대한 분노도 일어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감관의 문을 지키는 일이 정말로 중요했습니다.

 

어느 날 김학이는 다래에게 또 물었습니다. 그동안 ‘~를 조건으로 하여’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조건>이 과연 무슨 뜻인지를 물었습니다. 다래는 조건이란 ‘이것을 의지하여(기대어) 결과가 온다’고 해서 조건이라 한다 했습니다. 또는 ‘이것으로 인해 저것이 일어날 때 이것을 저것의 조건이 된다’고 했습니다.(아~, p.650) 김학이가 그럼 조건은 ‘~한 상황 아래’라는 말과 같은지를 물었습니다. 상황은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이나 모양’을 뜻하므로 이것과 저것의 관계를 나타내는 조건과는 다른 말이라고 했습니다.

 

김학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그럼 이것이 저것의 조건이 된다고 할 때 결과로 생긴 저것에는 조건이 되는 이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물었습니다. 즉 이것은 소멸되고 저것만 있게(생기게)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다래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조건으로 생겨난 결과는 앞의 조건이 되는 것을 내포하여 있다고 했습니다. ‘애(愛)를 조건으로 하여 취(取)가 있다’고 할 때 취에는 취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애도 내포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행복하고 보람된 나날이 지나갔습니다. 김학이는 이과(貳過) 선생님 밑에서 벗들과 학문을 배우고 행실을 닦았고, 다래는 이과 선생님이 빌려주신 서책들을 독학하며 집안일을 돌보았습니다. 다래의 유교적 학식과 법(法, 담마)에 대한 혜안은 김학이보다 몇 배나 앞섰고, 김학이는 그런 다래가 고맙고 믿음직스러웠습니다. 큰 학자들과 스님들이 이과 선생님을 방문 하실 때마다 나중에 그분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청을 드려 다래와 학문을 논하게 하고 법을 논하게 했습니다. 다래는 그분들의 말씀을 새기며 더욱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몹시 궁금해 했고, 그럴 때마다 다래는 김학이에게 누가 될까봐 신경이 쓰였습니다.

 

하루는 김학이가 그날 이과 선생님을 찾아 온 스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갈애가 무엇이냐고 물으셨고 제자들이 여섯 가지 갈애로 대답했더니 다른 설명을 들려주셨다며 다래에게 그 뜻을 물었습니다. “...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고집성제(苦集聖諦)]이니, 다시 존재로 이끌고 즐김과 탐(貪)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자(者)」인 갈애 즉 소유의 갈애[욕애(慾愛)], 존재의 갈애[유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의 갈애[무유애(無有愛)]이다. ...” (S56:11)

 

다래는 이 말씀이 갈애를 정의하는 또 다른 방법 같다며 우선 이렇게 이해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습니다. ‘업은 들판이고 식(識)은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저열한 [욕]계에 식을 머물게 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재유(再有)]하게 된다 ...’는 가르침을 숙고하면서 갈애는 ‘다시 존재로 이끄는 것’이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보고.
또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적 사유를 짝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이 일어난다. 즐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나는 말한다.’(또는 ‘... 만일 비구가 형색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그의 식(識)은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취착(取)한다. 취착이 있는 비구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한다.’는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즐김과 탐(貪)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자(者)’인 갈애의 뜻을 이해해 보자고 했습니다. 김학이는 그러겠다고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이윽고 자신이 며칠 전 스님으로부터 배운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①소유의 갈애[욕애(慾愛)]는 저기 몸 밖의 색, 성, 향, 미, 촉에 대한 갈애를 가지고 →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마노(意)로 법을 인식하는 것이고,
②존재의 갈애[유애(有愛)]는 천상이나 신들의 존재에 대한 갈애를 가지고 ‘그 오온은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다 ’라는 식으로 상견을 가지고 →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마노(意)로 법을 인식하는 것이고,
③존재하지 않음의 갈애[무유애(無有愛)]는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를 가지고 ‘오온은 부서지고 파멸되어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와 같이 단견을 가지고 →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마노(意)로 법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 故 □□ 법우님의 댓글에서 인용)

 

그러면서 스님은 몇몇 수행자는 존재하지 않음의 갈애(무유애(無有愛))를 가지고 스스로 깨달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나의 것이다’고 갈애에 의해 거머쥐고, ‘이것은 나다.’는 자기화에 의해 거머쥐고, ‘이것은 나의 자아다.’고 견해에 의해 거머쥔다고 들려주셨다고 다래가 말했습니다. (故 □□ 법우님의 댓글에서 인용) 김학이는 이렇게 법을 잘 해설해주는 다래가 참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부님이 오셔서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아마 혼사 일로 오신 것 같았습니다. 점심상을 올리자 백부님은 김학이가 한사코 다른 규수와는 혼인을 하지 않겠다 하니 어디 정인이라도 있는 게야 하면서 누구인지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다래가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못하자 김학이는 얼른 다래를 물러나게 하고 다시 백부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학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주고 목숨을 여러 번 구해준 다래에게 아버지는 글을 가르치셨고 어머니는 귀중품과 패물을 물려주셨는데, 그 뜻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백부님을 설득했습니다. 마침내 백부님이 다래를 불러 평생 김학이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래는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이라며 황송하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며칠 뒤 김학이와 다래는 혼례를 치렀고, 친척의 한 아이를 양자로 들였습니다. 두 사람은 아이를 훌륭하게 길러 혼인시키고, 모두 계를 지키고 보시를 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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