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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세상' 이야기

고요2 0 343 2018.11.24 05:56

 도시 가운데 ‘문답의 광장’이 있었습니다. 토요일마다 누구든지 나와서 도(道)나 진리(眞理)나 깨달음에 대해서 발표를 하면 청중들이 듣고 질문했습니다. 그날은 김(金) 선생이 발표를 했습니다. “... 천도(天道)가 유행(流行)하여 조화(造化)가 발육하니 무릇 성색(聲色)과 모상(貌象)이 있어서 천지 사이에 가득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모두 물(物)이라 합니다. 이렇게 물이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이 물들이 있게 된 당연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뜻하고, 이렇게 물이 있게 된 당연한 법칙은 각각의 물들이 스스로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물이 있게 된 까닭 = 당연한 법칙)은 모두 하늘에서 받은 것이요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마음(心)이라는 물은 실로 몸(身)의 주인이 되는데, 마음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성품(性)이 있고, ‘측은지심수오지심공경지심시비지심’의 정(情)이 있어서, 마음은 느낌에 따라 응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느낌에 대해서 주체적인 입장이라서 참된 마음을 느낌이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또 예를 들면 마음이 몸의 각 감각기관에 이르면 이목구비와 사지(四肢)를 사용하여 보고 듣고 움직이게 됩니다. 또 예를 들면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이르면 군신부자부부장유의 떳떳함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다 반드시 물(物)에는 당연한 법칙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고 물 자체가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당연한 법칙을 리(理)라 합니다. ...” (책에서 인용하되 글쓴이가 많이 변형함) 

 

사람들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무엇인가 그럴 듯 하기도 하고, 어려운 한자 용어가 나와서 무슨 뜻인지 잘 모르기도 하여 말없이 듣고만 있었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누가 용기를 내어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무엇입니까? 어떤 것을 세상이라고 합니까?” 
김 선생이 말했습니다.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온갖 물(物)들이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도 있고, 강과 바다와 산과 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의 오륜을 매개로 하여 살아갑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요즘은 인심(人心)이 도심(道心)을 회복하지 못하고 바깥 물에 부림을 당하여 물욕(物慾)이 드세지는 세상입니다.”

 

일주일 후 이(李) 선생이 발표했습니다. ‘아주 옛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브라흐마께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거기에서 살아갈 온갖 생명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을 믿고 따르며 살아가는 삶에는 복이 있습니다. 창조주 브라흐마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생명에 대해 자애로운 자는 복이 있어 범천에 태어날 것이고, 모든 생명에 대해 연민하는 자는 복이 있어 범천에 태어날 것이고, 모든 생명에 대해 함께 기뻐하는 이는 복이 있어 범천에 태어날 것이고, 모든 생명에 대해 평온한 이는 복이 있어 범천에 태어날 것입니다. ...“

 

발표가 끝나자 어떤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때 누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창조주를 말씀하시고 범천을 말씀하시니,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저 세상이란 무엇입니까? 세상은 이 세상 말고 저 세상도 있습니까?”

 

이 선생이 말했습니다. “세상은 이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납니다. 악행을 한 사람들은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선행을 하는 사람은 죽어서 인간의  좋은 곳이나 욕계 천상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자비희사 사무량심을 닦은 사람은 범천에 태어납니다. 범천은 창조주 브라흐마께서 계신 곳이며, 그곳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범천에 태어난 이들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삽니다. 범천이 세상의 끝입니다.”   

 

어느 토요일 오전 햇볕이 따뜻했습니다. 전기수는 문답의 광장에 가서 박(朴) 선생의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박 선생은 불교 재가신자로서 교학에 아주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박 선생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만약 여기에 ‘나는 진리를 알고, 도를 알고, 깨달았습니다.’ 하고 선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분에게 어떤 질문을 하여, 그분이 진짜로 깨달은 분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청중들은 ‘진리란 무엇입니까?’ 또는 ‘도는 무엇입니까?’ 또는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박 선생이 말했습니다. “예, 여러분, 그런 물음도 훌륭합니다. 저라면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자기 존재로 여기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므로, ‘자기 존재란 무엇입니까?’ ‘세상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겠습니다. 만약 진리를 알고 도를 알고 깨달은 분이시라면 ‘자기 존재’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완전하게 설명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그럴 듯하다고 동의해주었습니다.

 

박 선생이 계속 말했습니다. “참고로 불교신자는 배워서 이렇게 이해합니다. 세상이란 이 사회, 이 국가, 이 지구가 전부가 아니라고, 또 세상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인간과  짐승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지옥, 아귀, 천상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지옥, 축생, 아귀, 인간, (욕계) 천상). 그리고 세상은 이런 욕계뿐만 아니라, 욕계를 넘어선 색계, 무색계도 있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또 불교신자는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죽기 마련이라고 배워서 알기 때문에 범천에 태어난 존재라도 영원히 살지 못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불교 이야기가 나오자 어떤 사람들은 자리를 떠났습니다. 박 선생이 말했습니다. “성자의 율에서 세상이란 ‘색, 성, 향, 미, 촉’을 말합니다.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세상이란 ‘안, 이, 비, 설, 신, 의’와 ‘색, 성, 향, 미, 촉, 법’이라고. 여러분,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기에 아주 빠른 우주선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타고 저 멀리 우주 끝까지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우주와 같은 그런 세상은 (신통을 부려) 걸어서(우주선을 타고)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 이, 비, 설, 신, 의>와 <색, 성, 향, 미, 촉, 법>이라는 세상은 눈이 색을 보는 세상이고, 귀가 소리를 듣는 세상이고, 코가 냄새를 맡는 세상이고, 혀가 맛을 보는 세상이고, 몸이 닿아 감촉하는 세상이고, 마음(마노, 意)이 법(法)을 분별하여 아는 세상이라서, 이런 세상은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라면 세상의 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표가 끝나자 누가 로히땃사 경(S2:26)에 나오는 “도반이여, 상(想)과 함께 하고 의(意)와 함께 하는 한 길 크기의 이 신체 위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나는 선언합니다.”는 말씀의 뜻을 물었고, 박 선생은 여러분 모두 함께 생각해보자고 하여 전기수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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